지역문화

안동양반 이야기

오토산 2013. 3. 20. 03:44

 

 

안동 양반 이야기
 

 

 

 

 

 

양반의 고장~
선비의 고장~ 하면 떠오르는 곳이 안동(安東)이다.
우리 고장 안동은 옛부터 다른지방에 비해서 과거 급제자가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생원,진사를 포함해서 문,무과 에 급제한사람이 
다른 고을 보다 월등히 많았다.
양반은 배가 고파도 체통을 지켜야하고 스타일을 구겨서는 안된다.
대추 하나로 요기하고, 한 알의 콩도 반쪽씩 나눠 먹어야한다.
모든면에 규범을 잘 지켜야만 하고 그래야만 양반의 체면이 서는 것이다.
양반은 상놈과 대별되는 사람으로 문별 좋고 지체높으신 분을 말한다.
학문을 많이하고 젊잖아 흔히들 선비라고도 불리운다.

양반(兩班)이란 원래 문반<文班(東班)>과 무반<武班(西班)>의 두 개의
반을 의미하다가 나중에는 그에 소속된 사람이나
친인척들을 모두 양반이라 부른다.
요즘은 행동과 행실이 반듯한 사람(젠틀멘)을 양반이라고 한다.


문,무반(文,武班)즉  양반(兩班)은 글 읽고 공부한다는 뜻에서 선비라고 하고
이 선비들의 집단을 선비 사(士)자를 넣어 사림(士林)이라고 한다.
사림들이 중앙정치 무대로 나가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여 사림파(士林派)가 된다.
이 사림(士林)들은 주로 유학(儒學)을 공부한다고 하여 유생(儒生)이라 불리운다.
유생의 집단을 유림(儒林)이하고 한다. 그러므로
<양반=선비=사림=유림>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같은 말이다.
조선초기 조카인 어린 단종으로 부터 왕의 자리를 빼았은
세조(수양대군)는
왕위의 정통성이 결여되어 항상 불안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 주변에는
그에게 절대 충신하는 공신들과 그 가족및 친 인척들로 매워져 있었다.
이들은 정권을 독점하고 사회경제적 특권을 누리며 집단을 형성 했는데
왕위찬탈에 공을 많이 세웠다고 하여 이들을 훈구파((勳舊派)라고 부른다.
세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예종은 갑자기 죽자
성종은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된다. 훈구세력들은 어린 성종을 대신하여
정권을 자기 멋대로 주무른다.성종은 나이가 들면서 훈구세력들의 정권독점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직접 정사를 챙기기 시작 하는데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재야에 묻혀있는 지방 사림을 대거 등용 하는데 이들은 김종직을 중심으로
사림파(士林派)를 형성하여 왕을 보좌하고 훈구세력을 약화시키며
점점 세력을 키워나가며 왕권을 안정시킨다. 그러나 이들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훈구파와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급기야 4대사화가 일어난다.
이후 당쟁으로 변질되고 조선후기에는 예송논쟁등 당파싸움이 끊일날이 없었다.
관료사회는 부패하였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국가에서는 부족한 재정을 메꾸기 위해서

돈 많은 평민들에게 일정한 돈을 받고 양반으로 신분을 상승시켜 주다 보니 관료층이 큰 혼돈에 빠진다.
쉽게 말해 어중이 떠중이도 돈만 있으면 양반이 되는 것이다.
결국은 양반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강원도 정선땅에 어질고 글 읽기 좋아하는 한 양반(선비)이 있었다.
학식 높고 인품있어 언제나 새로 부임한 군수들은 그 선비 집에 몸소 찿아가서
부임인사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양반은 너무 가난하여 관에서 내주는 관곡을 타먹으며 살았다.
여러 해 동안 관곡을 빌려 먹어 그 동안 타먹은 관곡은 천석이나 되었다.
어느날 관찰사가 순찰차 이 고을에 들려 관곡을 조사하게 되었는데
천석이나 빈 관곡을 발견하게 되었다. 관찰사는 군수에게 추궁하여
그 양반을 투옥하라고 명한다.군수는 양반을 투옥하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그 빚을 갚도록 할 방도도 없어서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이에 양반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양반의 아내는 양반의 무능을 질타하였다.
이때 이웃에 사는 동네 상민 부자가 소문을 듣고 양반의 신분을 동경하던 중이라

이 기회에 양반을 사서 양반노릇을 해보겠다고 작정하고 양반을 찾아가서
관곡을 대신 갚을테니 양반신분을 팔라고 한다.
양반은 기꺼이 승낙하고 부자 상민은 관곡을 갚아주고 양반이 된다.
양반이 관곡을 갚았다는 말을 듣자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군수가 양반을 찾아가자

양반은 상인 행세를 하고, 양반신분을 판 자초지종을  군수에게 이야기 한다.
관찰사로부터 난감해 하던 군수도 그 상인을 칭찬하며
군민들을 모아놓고 양반권 매매 계약서의 작성에 들어간다.
양반매매 계약서에는 <양반이 취할 행동거지> 와 <양반의 특권>을 나열 한다.
그 내용을 몇개 추려보면


①양반은 날마다 새벽 오경이면 일어나 등잔불을 밝히고 꿇어 앉아 눈으로
   코끝을 내리보면서 글을 읽어야 한다.
②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맨상투바람으로 밥상을 대하지 말며
   밥을 먹되 국부터 먹지 말고  마실때는 훌훌 소리를 내지 말고

   젓가락을 방아찧듯이 굴려서는 못쓰니느라.

   날파를 먹으면 아니되고 술을 마실때는 수염을 빨지 말것이며

   담배를 빨 때에도 볼이 파일 정도로 몹시 뻘아서는 안되느니라.
③아무리 분이나도 아내를 때려서는 아니되며 성나도 기물을 발로 차지 말고
   아녀자를 주먹으로 구타하지 말고 종을 꾸짖을 때에는 상스러운 욕을 하지말라.
④추워도 화롯불에 손을 쬐지 못하며 말을 할 때 입의 침이 나오면 아니된다.

 

또 양반의 특권으로는

 

이웃집 소를 빌어 먼저 자기 밭을 갈게 하며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김을 매게 하여도 된다. 누가 감히 나를 업신여겨서 말을 듣지 아니할 적에는
코에다 잿물을 부으며 상투를 잡고 수염을 뽑는다해도 원망 할 수 없다.

 

매매계약서를 본 상민양반은 양반은 도둑놈들이라고 하면서
다시는 양반이 안될거라며 줄행량을 치고 말았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 줄거리다.

 

 

 

 

 

 

<사진: 정선 아라리 민속마을>

 <관곡 1000섬을 갚지 못하면 감옥에 갈것 이라고 관찰사가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