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발 묶인체 삼베로 만든 수의 입고 棺속에 들어 누워보니...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나는 지금 죽음 체험 수련 중이다. 지난 5월 12일 죽음체험수련원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지구별여행자’(구 ‘아름다운 삶’·대표 김기호)가 진행하는 행사에 16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지구별여행자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능인선원 내 방 한 칸을 빌려 사용하고 있었다.
이날 체험 참석자는 50~60대가 대부분이고, 30대 초중반의 젊은 여성 두 명과 30대 후반 부부도 있었다. 자서전 쓰기, 죽음 명상, 유언장 쓰기, 묘비명 쓰기, 입관 체험 등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4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지구별여행자는 매달 한 번씩 죽음 체험 수련을 한다. 개별 신청자도 있고, 기업이나 관공서 등 단체 체험도 한다. 2002년부터 총 1만5000명이 죽음 체험을 거쳤다고 했다.
내가 취재를 위한 체험을 한 이날 미국의 인터넷 매체 VICE라는 곳에서 촬영단이 찾아왔다. 지구별여행자 김기호 대표는 “입관 체험 문화는 한국에만 있어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신기해 한다. CNN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피에서도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자신이 촬영되길 원치 않는 참가자는 미리 얘기를 해 달라고 했다. 최대한 죽음 체험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오후 4시50분. 조용한 음악과 함께 자서전 쓰기가 시작됐다. 출생에서부터 초·중·고등학교 입학과 졸업, 결혼과 출산, 회사 입퇴사 등 내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만나는 시간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이력서가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들. 빈 여백을 한 자 한 자 채워 가며 내 인생을 슬라이드처럼 돌려본다. 두 번째 자서전 양식이 놓여 있다.
‘내 인생의 3대 뉴스는?’
‘내 인생 최고의 목표는?’
‘이번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이번 삶에서 내가 배운 교훈은?’
‘만약 나에게 삶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면 꼭 하고 싶은 것은?’
수련도우미이자 자원봉사자 하지원(여·50대)씨가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2년 전 이맘때 임종 체험을 했다고 했다.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강력한 동기 때문에 자살시도를 했고, 불행 중 다행으로 1차 시도에 실패한 후 이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죽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지구별여행자 김기호 대표는 “한번 죽어 보십시오”하고 죽음 체험을 권유했다. 하씨는 죽음 체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정말 소중한 것들을 다 놓치고 죽으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죽음 체험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간호학을 공부한 그는 전공을 살려 뒤늦게 웰다잉 프로그램 보조강사로 일하는 중이다. 그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고 했다.
오후 5시30분. 50대인 김기호 대표의 강연이 시작됐다. 일명 죽음학 강의. 그는 “죽음도 하나의 여행상품”이라고 했다. 우주적 존재가 되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이 체험을 ‘지구별 여행’이라고 불렀다. 그는 100장이 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넘겨가며 차분히 강연을 이어갔다. 흥미로운 동영상과 애니메이션, 사진과 통계 자료를 적절히 활용한 강연은 흥미로웠다.
“2차원에 사는 개미들에게 3차원에 사는 우리의 존재가 안 보이듯, 죽음은 현실의 너머에 있고 죽음 체험은 시공간을 초월한 우주 여행과 같다”는 것이 요지다. 또한 죽음은 부정적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죽음은 괴물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을 가르쳐주는 시간이다. 사테크(死tech)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오후 6시30분. 수의를 갈아입는다. “수의는 아래부터 입으십시오.” 금색 보자기를 풀어 수의를 보자 죽음 체험을 한다는 게 실감난다. 태어나 처음 만져보는 수의를 내가 직접 입는 기분, 묘하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달려 있지 않다. 죽은자는 갖고 갈 게 없다. 양쪽 발목을 묶고, 허리까지 꽁꽁 동여맸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참석자들에게 촛불을 하나씩 나눠 주고 형광등을 끈다. 나의 부고 일지, 유언장, 묘비명을 쓰라고 했다. 하나씩 써 나갔다.
“묵언하십시오. 죽는 날인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유언장 쓰면서 99%는 웁니다. 통곡하고 싶으면 하십시오. 휴지는 많이 준비돼 있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쓰십시오.”
속으로 ‘진짜 유언장도 아니고, 가상 체험인데 설마 99%가 울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나의 부고 일지를 먼저 쓴다. ‘나는 오늘 ( )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 )했던 사람이었다고 기억할 것이다. 나의 죽음을 가장 슬퍼할 사람은 ( )일 것이다.’
이어서 유언장을 쓴다. 내 앞에는 편지지 두 장이 놓여 있다. ‘진짜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상상해 본다.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이 하나둘 스친다. 버킷리스트에 적어둔 여행지들이 좌르르 떠오른다. 한 자 한 자 적어 나간다. 담담하게 시작한 유언장 반 장이 채워지면서 점점 감정이입이 돼 간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에게 이 생의 마지막 말을 남기면서 코끝이 시큰해진다.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참으려 하는데 눈물이 줄줄 흐른다. 도우미가 조용히 다가와 휴지를 한 움큼 뽑아 놓고 간다. 어느새 콧물까지 흘리며 울고 있다.
오후 7시30분. 입관할 시간이다. 산 중턱에 내가 들어갈 관이 입을 떡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저승사자를 따라 500미터 정도의 숲길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영혼의 거리는 3미터입니다. 앞사람과 거리를 유지하십시오.” 한 손에는 촛불을, 한 손에는 나의 묘비명과 유언장을 들고 산으로 향한다. 어느새 어둑신하다. 서쪽하늘에 주황빛 노을이 서려있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그리고 나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0.34485평의 공간에 누워, 나는 언젠가 내가 가야할 길을 이렇게 먼저 가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20분? 30분? 시간 개념이 무화됐다. 누군가 꺼내 주지 않으면 나는 도대체 관에서 나갈 수도 없었다.
“자 이제, 당신은 다시 태어날 시간입니다.”
관 뚜껑이 열린다. 먼발치 도시의 조명에 눈이 부시다. 일어나 앉는다. 봄밤 바람이 피부에 확 닿았다. 새롭다. 바람에 풀꽃들이 한들거리는 것도 새삼스럽다. 나는 가장 짧은 시간에 먼 여행을 다녀왔다. 너무나 강렬한 체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