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문화

선조들의 생활도구..(우받세/지평)

오토산 2013. 11. 8. 03:40

 

 

       선조들의 생활도구와 기술력

 

 홍두깨

   

   둥글고 길게 다듬어 만든 옷감을 감아서 다듬이질 하느 데 쓰는 도구
    

 

 

 명주실잣기

누에고치를 찌면서 손으로 물레를 돌려 명주실을 뽑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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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채

    누에고치를 삶아 실을 뽑아 감는 틀

 

 

   베솔  

  

삼베 또는 무명 등 피륙을 짜기 위해 뻬매기를 할때

 

 실올에 풀을 고루 먹이고 실올들이 서로 붙지 않도록 하는데 쓰는 솔

     

 

 

   씨아

 

 

목화의 씨를 빼는 연장으로 「쐐기·타리개·씨앗이」라고 도 부른다.

가락과 장가락을 귀(헬리컬 기어)에 맞물리고 한 사람이 손잡이로 돌리면

가락이 따라 도는데 가락과 장가락사이에 솜이 물려 들어가면 목화씨만 남는다.

귀가 없는 씨아는 두 개의 장가락을 반대 방행으로 박아 두 사람이 마주보고 돌린다.

한사람이 하루 30~40리터의 목화씨를 뺀다.

     

 

 

곰방대

  

긴 곰방대는 생활에 여유가 있어 하인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었다.

곰방대가 길수록 생활이 여유롭다는 증거였다고 한다.

 

 

 

 

 누에치기      

 

 

이제 찾아볼 수 없는 집에서 누에치는 모습 

수익성에 밀려 모두 사라졌다.

서민들은 짧은 곰방대를 피웠다.

 

   

 

  부엌과 장독대     

가마솥 위 하얀 사발이 바로 정화수를 떠서 조왕신께 바치는 것이다.

 

 

 

시루 

 

 

 

  소쿠리

 

다양한 크기의 소쿠리.

아낙들이 밭에 가서 고추를 딸 때 들고 가기도 하고,

나물 캐러 갈 때도 들고 가는 소쿠리. 

 

 

 

 밥바구니   

농사일이 바쁠 때는 끼니 때마다 밥을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바쁘다.

그럴 때 아침에 밥을 많이 해서 여기에 담아 그늘에 놓아두면 

점심과 저녁도 해결할 수 있다.

그 정도로는 밥이 쉬지 않는다.

 

 

 

   메주틀

메주틀이라고 하는 것.

콩을 삶아 으깬 뒤 여기에 쳐 넣어 메주의 네모난 모양을 잡는다. 

 

 

 

  맷돌과 맷방석

맷돌이다.

맷돌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래는 맷방석이라고 하여 맷돌질할 때  여기 맷돌을 올리고 한다.

혹시라도 밖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겠지.

 

 

 

 

  떡메 

떡을 할 때 쌀을 치는 떡메.

 

 

  도마  

 

 

 

  부여, 농구납당

부여의 농구납당.

삼태기, 지게, 맞두레 등이 보인다. 

 

 

 

  가마솥 

한데 부엌의 모습. 

 

 

 

  옹기장수 

 그때는 지게에 옹기를 잔뜩 지고 여기저기 다니며 팔았다.

 

 

 

  아궁이에 불 때기

밥을 ㅈ시는 것인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는 아주머니.

 

 

 

  이남박

쌀을 씻고 일어 건지는 데 쓰는 나무바가지.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윗지름 30∼70㎝, 깊이 15㎝,

바닥지름 15∼20㎝ 가량이고, 안쪽에는 여러 줄의 골이 가늘게 패어 있다.

따라서 쌀을 씻을 때 골이 진 부분에서 가벼운 마찰이 생겨 깨끗이 씻을 수 있다.

또, 조리로 쌀을 일어 건진 다음,

이남박에 남은 소량의 쌀과 돌부스러기 등 불순물을 분리시킬 때도

이 홈이 효과적인 구실을 한다.

소목제품이므로 새로 만든 이남박은 사용하기에 앞서

표면에 들기름을 발랐다가 잘 마른 다음 행주로 길을 들여서 쓰거나,

주사의 붉은칠이나 진흙칠을 하여 잘 말린 다음 마른행주로 깨끗하게 닦고

그 위에 들기름을 얇게 먹여 약간 홍갈색이 돌게 길들인 다음에 사용하였다.

 

 

 

광주리

 

 

싸리채나 댓가지로 엮어 만든 부엌 세간.

농가에서는 주로 운반구로 쓰인다.

바닥을 판판하게 하여 울타리를 둥글게 엮으며 굽이 있다.

큰 것은 바닥지름이 65㎝에 달하고,

작은 것은 30㎝ 미만인 것도 있어서 반짇고리로 쓰일 정도이다.

 

광주리는 싸리채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소품에 있어서는 광대싸리 같은 유사재료를 활용하는 지방도 있고

혹은 대나무로도 만든다.

싸리는 그해에 곧게 자란 참싸리를 8월경에 베어 곧 껍질을 벗겨 쓰며,

가을 늦게 벤 것은 쪄내서 벗겨야 하는데 재질이 누런 기를 띠게 된다.

  

 

 

 

 

  강판  

 

생강이나 무·과일 따위를 즙을 낼 때 쓰는 기구.

대개 나무나 양은으로 만들며,

한쪽 바닥이 몹시 거칠거나 잔 톱니가 있어 잘 갈리게 되어 있다.

 

강판이 생긴 시기는 조선시대의 약소주藥燒酒의 하나인 이강고를 만들 때만 해도,

생강과 배의 즙을 낼 때 기왓장 위에서 간 것으로 미루어,

후대의 일이라 생각된다.

강판의 초기 형태는 사기로 네모 반듯하게 만들어져 한쪽 전면이 거칠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양은이 들어온 이후에는,

네모 반듯하게 하되 길이를 좀 길게 하여 양쪽 끝에는 나무를 대고

가운데만 양은을 대어서 양은 부분만 거칠게 만들었다.

현대에는 손잡이와, 강판에 갈린 즙이 밑에서 모아질 수 있도록

받침그릇까지 장치한 플라스틱강판이 있다.

 

 

 

 

  국수틀

가루를 반죽하여 통에 넣고 공이로 눌러서 국수를 뽑아내는 틀.

고려시대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제면업을 하였으므로

이미 국수틀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그 구조나 모양은 전하지 않는다.

국수틀에 관한 기록은 18세기의 ≪임원십육지≫ 섬용지(贍用志)에 비로소 보인다.

 

국수집에서는 큰 솥 위에 국수틀을 걸고,

반죽을 구멍 안에 넣은 다음 공이로 눌러,

솥 안으로 국수가 흘러들어가 삶아지게끔 설치하였다.

 

근래에 말린 밀국수가 시판되면서 국수틀도 기계화되었다.

즉, 반죽을 통에 넣고 손으로 돌리면 압력이 가해져

구멍으로 국수가 빠져나오게 된 것이다.

현재는 전동력으로 압력을 가해서 만드는 틀을 쓴다.

  

 

 

  기름틀

 

참깨·들깨·콩 등의 식물로 기름을 짜는 틀.

기름틀의 구조는 가위다리모양으로 가랑이가 벌어진 나무의 머리 쪽에 구멍을 뚫고

지면과 약 30도의 각도를 이루도록 받침대를 세워,

가랑이진 부분에는 홈을 파고 대롱을 아래쪽으로 향하도록 박아서 

짠 기름이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다.

깨가 든 주머니인 ‘기름떡’을 이 홈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다시 ‘기름채 날’ 너비 30㎝, 길이 2m 정도의 널쪽을 덮고 돌을 실어둔다.

 

또 다른 기름틀은 사다리 모양으로 두개의 세장을 걸어서 짠 머리틀을

지면에서 직각이 되게 세우고 아래 세장에 의지하여

같은 굵은 나무 둘을 약간 벌려놓으며,

그 사이에 홈이 패인 널쪽인 ‘떡판’을 걸쳐둔다.

그리고 이에 기름떡을 올려놓은 뒤에 윗세장에 기름채날을 끼우고

무거운 돌을 실어서 압력을 가한다.

경상남도 진양에서는 팔자(八字)모양으로 벌어진

두툼한 나무 아래쪽에 세장을 끼우고

그 위에 서까래 같은 긴 나무를 좌우로 벌려둔다.

 

기름채날 중앙에는 둥근 구멍이 있어,

거기에 떡밥을 베보에 싸서 넣는다.

그리고 그 구멍에 알맞은 나무토막을 다시 올려놓은 뒤,

긴 기름채날을 끼우고 무거운 돌을 실어서 짠다.

이것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떡밥에 더 큰 압력을 가할 수 있는 합리적인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조립도 간단한 장점이 있다.

우리의 재래식 기름틀로는 하루에 한 말의 기름을 짤 수 있다.

기름떡은 원료를 잘 씻은 다음 볶아서

절구에 찧었다가 다시 체에 곱게 내린다.

그리고 그것을 기름주머니에 담아 솥에 넣고 김을 쬔 뒤,

식기 전에 짜야 한다.

 

 

   엿틀 

엿밥과 엿기름을 섞어 삭힌 것을 자루에 담아 엿물을 짜내는 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