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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아본 도산서원
8월10일 날싸가 맑아서 도산서원 나들이를 갔더니만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만났다.
휴가기간이고 방학시즌이어서 방문객이 줄을 이었다.
陶山書院은 퇴계 이황선생이 명종16년(1561)에 도산서당을
세워서 후학 양성을 하여 왔으며 선생의 사후 4년만에
선조7년(1574)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고 선조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현판을 사액(賜額)하였다.
현재 세계문화유산등록을 위하여 준비중이다.
退溪선생은 연산군7년(1501)에 도산면온혜리에서 출생하여
선조3년(1570)에 돌아가셨으며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단양군수.풍기군수.공조판서.예조판서.우찬성.
대제학을 지냈으며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70여회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연구.인격도야.
후진양성에 힘써 우리나라 교육및 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었고 만대의 정신적 사표(師表)가 되었다.
주요저서로 계몽전의.성학십도.도산십이곡.주자서절요.
심경후론.예안향약.자성록등이 있다.
시사단(試士壇)은 정조16년(1792)에 정조임금이
평소 흠모하던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하여 어명으로
특별과거인 '도산별과'를 보인장소이며
응시자7228명중 임금이 11명을 선발하였다.
요즘도 매년 한시백일장이 여기서 열린다.
입구의 버드나무가 무성하게 자랐으며 그 그늘밑에서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늘도 도산서원을 둘러보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세상사 한마디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고
제후가 참으면 큰나라를 이룩하고
벼슬아치가 참으면 그 지위가 올라가고
형제가 참으면 집안이 부귀하고
부부가 참으면 일생을 해로할수 있고
친구가 참으면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고
가족이 서로 참으면 가정이 편안하다.
기둥의 부식을 방지하기위한 선조들의 지혜
도산서원 유물관
성학십도
혼천의
시사단의 모습
서원앞광장의 버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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