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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루와 삼구정을 다녀와서
소산마을에 대하여는 "충절과효친의본향 소산리"로 2013.7.12.소개드린바가 있다.
오늘 안동문화바로알기로 소산마을에서 청원루와 삼구정을 다시 찾았다.
소산마을은 조선후기 세도를 부렸다고 전해지는 안동김씨의 동성마을이다.
'영가지'에서는 금산촌(金山村)이라 기록되어 '현의 서쪽 오리쯤에 있는데
남쪽으로 넓은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토지는 기름지고 넉넉하여 백곡이
모두 잘된다'고 적고 있고
'경북마을지'에는 '마을뒤의 정산(鼎山)과 서쪽의 관산(冠山)의 모두 높이100m
구릉이며 앞과 동쪽은 확 트인 벌판이다. 마을전체의 모양이 소가누운형국'이라
하여 쇠미 또는 금산으로 불리었다'고 적고 있다.
원래 금산리던 마을이 1636년 병자호란때 낙향한 청음 김상헌이 '김가가 사는곳을
금산이라 하면 이것은 너무 화려하고 사치스럽다. 모름지기 검소하다는 소산으로
바꿔야 한다'라고 하여 마을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한다.
임금의 장인으로 김조순(영안부원군 순조의장인),김문근(영은부원군 철종의장인)
김조근(영흥부원군 현종의장인)
임금의 사위로 김현근(순조부마 제1녀),김병주(순조부마 제2녀)가 있었으며
영의정8명(김수향.김수홍.김창집.김좌근.김홍근.김병서.김병학.김병국)
좌의정4명(김상헌.김이소.김홍근.김병덕) 우의정3명(김상용.김이교.김달순)과
대제학7명,제학15명,부제학16명,직제학14명과 관찰사46명,유수31명을 배출하고
묘정배향6명(김상헌,김수향,김창집,김이교,김조순,김수근) 원.사배향16명이 있고
시호를 받은인물이49명.육조판서가51명등이다.
靑遠樓는 중종때 평양서윤을 지낸 김번(1479~1544)이 여생을 보내기위해 지었고
병자호란시 인조의 굴욕적인 강화에 반대한 척화주전론의 거두였으며
예조판서였던 김상헌이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1643(인조21)에 중건하고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당호를 붙였다고 한다
三龜亭은 김영전(1439~1522)이 88세 노모인 예천권시를 즐겁게 하려는
효심에서 아우 영추.영수와 함께 1495년(연산군원년)에 건립한 정자이며
이곳에 거북모양의 돌이 세개 있어 삼구정이라 불렀다.
오늘도 소산마을에서 성현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왔다.
오늘도 반가운 사람들과 즐거운시간을 보냈다.
세상사 한마디
성실성은 성공의 첩경이다.
성실하지 못하면 불성실이고 불성실은 실패의 근본요인이다.
성실의 반대는 실성이고 실성하면 신뢰를 잃고
사람을 잃고 일을 잃고 자신의 인생도 송두리채 잃는다.
성실하게 살면서 성공을 일궈나가는것이 올바른 인생이다.
안동시청사
동서남을 향한 거북바위
삼구정에서 내려다본 소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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