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평민의병장 신돌석장군유적지

오토산 2014. 11. 25. 06:34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7531

 

평민의병장 신돌석장군유적지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시행 <제6기 시민을 위한 국학아카데미>에서

2014 마지막 현장답사로 영덕에 있는 신돌석장군유적지를 찾았다.

 

신돌석의병장은 1878년(고종15)11,3,영덕군축산면도곡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산신씨 자는 순경이고 본명은 태호이고 돌석은 그의 이명이다.

 

1895을미사변이후 명성왕후살해사건과 단발령으로 대일감정은 극도로 악화됐다.

1896신돌석은 19세의 나이로 1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영해에서 항일운동전개

1905 영릉의병장이름으로 4월에는 울진 장흥관에서 일본군선 9척을 파괴하고

6월에는 원주.삼척.강릉.양양.간성등에 주둔한 일본군들의 전선가설작업을 공격

1907울진수동에서 의병을 증모하여 영덕의 관공서를 습격하고 청송.진보.경주.

포항.영해등을 공격하였고

 

907.12.의병 1000명을 모아 양주에서 이니여이 주도한 13도의병 서울공격에 참여

의병재편과정에서 평민출신이란 이유(당시 의병은 양반.유생출신들이 지휘)로 제외

1908.1~3.영해로 돌아와 영양수비에서 안동.울진.삼척.강릉동지와 결합 세력강화

춘양.황지.평해한곡.희암등에 일본군을 격파한후 겨울이되어 의병들을 귀가시키고

눌곡에 있는 부하의병인 김상열의 집에 칩거중 이들 형제들이 신돌석을 타살하였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평민출신의 의병장으로 국가의 위기를 구하려는 큰활약으로

1962년 건국훈장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옥황상제앞에갔는데 필요한 세가지금을 이야기하면 금덩이를

주겠다고 하여 아버지는 지금.조금.소금을, 아들은 황금.만금.현금을 얘기하여

아버지는 '지조소'로 아들은 '황만현'으로 이름을 받아 다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돌석장군유적지 답사를 끝으로 오늘의 답사를 마치고 돌아 왔다.

 

친절한 안내를 하여주신 유적지 해설사님께 감사드리고 답사에 수고하신

관게자분들과 .회장님.총무님. 함께하신 회원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성게는 아름다우나 가시가 있고 험한 가시덩굴속에서도 아름다운 장미는 피어난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같은 공간에 있고 행복과 불행도 한장소에 살고 있다.

세상만물과 현상은 보는 시각에 따라 변한다.

아름다운 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꽃동네만 보이고

불만스런 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오염된 도시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