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오토산 2011. 12. 8. 18:07

 

 

제2장 곤 (坤)   [--, 重地坤, 坤爲地] 

          인간의 길

 

 

   ◆ 평화와 번영을 위한 유일한 원리는 상생

 

            세상 만물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상생(相生)의 도리이다.

            상생의 도리를 어기면 큰 정치인도 덕을 얻지 못해 모리배로 전락하고,

            큰 부자는 돈만 모으는 수전노가 되며,

            아무리 훌륭한 종교라 해도 인류를 전쟁의 고통으로 몰아가게 된다.

 

            坤(곤)은 이처럼 땅 위에 사는 인간들의 복잡다단한 삶을 폭넓게 조망하면서 

            공생의 첫 번째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상생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坤 元亨利 牝馬之貞 君子 有攸往 先迷後得 主利 西南

            得朋 東北喪朋 安貞 吉   

            履霜 堅

            直方大 不習 无不利

            含章可貞 或從王事 无成有終

            括囊 无咎 无譽

            黃裳 元吉

            龍戰于野 其血玄黃

            利永貞

 

   

  땅 위의 존재인 인간은 모두 원(元), 형(亨), 리(利)의 시간을 거치며 살다가 마침내 죽음에 순종하게된다.  이런 과정에서 군자는 나아가 뜻을 펼치는 바, 처음에는 혼미하여도 뒤에는 뜻을 얻어 성공의 주인공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상생의 도리이다.

 

  상생하면 재화와 덕망을 얻을 것이며,  상극하면 이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그 끝을 인식하여 몸과 마음을 편히 가져야 한다.  겉으로는 쉽고 약해 보여도 내면은 어렵고 강한 것이 현실의 세계이다.  삶은 가르치거나 훈련받지 아니해도 자연히 아는 것이니,  인간이 만들고 가르친 학문에만 의지하는 학자라면 혹 정치를 한다 해도 이룸은 없고 끝만 있게 된다.

 

  무조건 아끼고 절약하는 생활 역시 허물은 없으나 명예를 읃지 못한다.  만민과 자연에게 봉사하고 희생하고 박애하는 삶,  그런 삶이라야 근원적으로 길하다.  만약 상생의 원리를 어긴 종교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전쟁은 전 세계로 확대되고,  양쪽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지게 된다. 

 

  하지만 문명의 번영을 누리는 현재의 환경과 삶을 길이 보존하는 데 힘써야 한다.

 

 

    坤 元亨利 牝馬之 (곤 원형리 빈마지정)

 

  坤의 원리는 元과 亨과 利의 시절을 거쳐, 貞의 시절에 이르러 순한 암말(牝馬) 같이 순종하는 것이다란 뜻이다.

   땅(坤)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삶의 각 단계와 결국 죽음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유한성을 설명한 것이다. 

 

  앞에서의 乾은 우주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 되게 원형리정(元亨利貞)의 단계를 똑같이 거친다고 본 반면, 坤은 실존적인 인생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어서 원형리(元亨利)의 단계까지는 건과 마찬가지지만,  貞에 이르면 약해지고 죽음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君子 有攸往 先迷後得 主利 (군자 유유왕 선미후득 주리)  

 

  군자는 나아가(有攸往) 뜻을 펼치매 처음에는(先) 혼미하여도(迷) 나중에는(後) 뜻을 얻으니(得),  利의 주인(主)이 된다.

  앞에서 인생의 큰 줄기에 대해 설명하고 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인간 개개인의 성공적인 삶, 사회와 개인을 연결하는 태도, 미래를 위한 인류의 자세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우선 누구나 뜻을 펼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

 

 

    西南得朋 東北喪朋 (서남득붕 동북상붕) 

 

  서남(西南)쪽으로 가면 벗을 얻고(得朋),  동북(東北)쪽으로 가면 벗을 잃는다(喪朋)는 말이니,  상생(相生)하면 재화와 덕망을 얻게되고,  상극(相克)하면 재화와 덕망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이 부분은 해석하기 매우 난해하고 실재로 연구자들마다 의견도 분분한 구절이다. 이 부분을 보다 깊이 연구하고 알려면 본 블로그 메뉴의 <우주변화의 원리>에 상세히 나와 있다.(집필 중)

 

  이 구절의 해석을 위해서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오행에 관한 기초 지식이 있어야 한다.  오행은 만상의 탄생과 소멸 및 변화를 주관하는 다섯 가지 기초 원소,  다시 말해서 水, 木, 火, 金, 土의 다섯 가지를 말한다.  음과 양을 상징하는 月과 日을 합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일주일의 단위로 사용한다. 

  

  오행, 우주와 만물 생성의 이 다섯 가지 기본 요소들은 각각 특정한 방위를 나타내며,  또한 상대가 누구냐에 다라 서로 어울리기도 하고 배척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불(火)은 흙(土)을 낳고,  흙(土)은 쇠(金)를 낳는다 해서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이라 하고,  이런 관계를 상생의 관계라고 한다.  반면에 나무(木)는 흙(土)을 뚫고,  흙(土)은 물(水)을 막는다고 해서 이를 각각 목극토(木克土), 토극수(土克水)라 하고 이런 관계를 서로 어울릴 수 없다하여 상극(相克)이라 한다.

 

  오행의 상생 상극관계를 그림으로 나타내 보면 오른쪽 그림과 같다. 

 

   그렇다면 <주역>의 본문에 등장하는 서남(西南)과 동북(東北)은 어떤 관계를 나타내는 걸까?  오른족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西南은 중앙의 土를 중심으로 火生土, 土生金의 相生관계를 나타낸다.

 

  반면에 東北은 木克土, 土克水의 相克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주역>이 점서(占書)로 이용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가 바로 이런 부분인데, 즉 음양오행과 상생 상극 등을 깊이 연구하게 되면 하도 낙서(河圖 洛書)의 복희와 문왕 팔괘도와 오운(五運) 육기(六氣)분야로 흘러가게 된다.  

 

  주역 본문의 서남이나 동북이라는 단어를 단순한 방위를 표시하는 것이 이 아니라 상생과 상극을 의미하는 암시로 이해해야만 뒤의 구절이 일관되게 해석이 가능해 진다. 

 

  그렇다면 붕(朋)이란 무엇인가?

  옛날에는 조개껍데기 10개를 1계(系)라 하고, 10系를 1朋이라 하였다. 조개껍데기 100장이 1붕인 셈이다. 고대사회에서 조개껍데기는 화폐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도 같은 맥락이다.  朋이란 단순한 친구만 의미하는 게 아니고,  친구와 돈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재화와 덕망'으로 이해함이 마땅할 것이다.

 

 

   安貞 吉 (안정 길)         

 

  貞의 시절, 곧 마지막 때를 생각하여 편안(安)한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吉하다는 뜻이다.      

 

 

    履霜(리상 견빙지)     

 

  음(陰)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이 세계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하는데,  <주역>은 이를 '리상 견빙지(履霜 堅冰至)라는 말로 요약한다.  직역하면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에 도달한다'는 말이니,  '서리'는 눈에 보이는 현상이 세계를,  '얼음'은 그 밑에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실제 '곤(坤)의 세계, 곧 '음(陰)의 세계를 말한다.

 

  겉으로는 쉽고 약해 보여도 내면은 차갑고 강한 것이 우리가 발 딛고 선 땅 위의 세계이자 음의 세계임을 표현한 것이다.

 

 

    直方大 不習 无不利 (직방대 불습 무불리)

   

  겉은 서리 같지만 속은 얼음인 이 坤의 세계,  이 음습한 고통의 바다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주역>은 우선 '너 자신을 믿으라'고 말한다.  삶과 인생에 대한 대폭적인 지지이자 희망의 선언이 아닐 수 없다.

 

  직방대(直方大)는 자연히 스스로 본능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삶은 기본적으로 누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면서 누구나 삶을 위한 준비가 저절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따로 익히지 않아도(不習) 특별히 불리할 것이 없다(无不利).  이는 개개인의 처세에 관한 조언이 아니라, 우주와 인생의 기본 성질에 관한 규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처세 원칙에 관하여는 <건(乾)>에서 이미 상세히 설명하였거니와,  여기서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된다' 고 말한 것은 우리의 삶도 기본적으로 우주와 자연의 섭리에 포함되어 있는 바,  이를 학문이나 과학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알아 순응하는 것이 옳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含章可貞 或從王事 无成有終 (함장가정 혹종왕사 무성유종)

 

  삶의 기본 도리에 관한 언급에 이어 <주역>은 인간의 과도한 합리주의, 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 대해 경고한다.  

  이 부분은 앞에서도 업급한 것처럼,  서양의 절제를 모르는 물질문명과 인간성을 상실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자 대안으로도 읽잏 수 있는 부분이다.

 

  함장가정(含章可貞)은 학문이 완성의 경지에 든 학자를 말하는 것이니.  오늘의 기준에서 박사나 대학교수 등의 지식인을 이른다.  이들 모두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들의 특징은 학문, 곧 인간이 만든 논리와 기술에 해박하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와 기술의 우열이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표현되고, 나아가 박사학위나 교수라는 직책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혹종왕사(或從王事)는 간혹 왕의 일  돕는다는 말이니,  함장가정의 학자가 정치에 나선다는 의미이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학문으로 완성을 이룬 학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자주 본다.

 

  무성유종(无成有終)은 정치적으로 성공은 없고 마침만 있다는 말이니, 인간의 학문으로 다스리는 한계를 설명한다.  정치에는 인간의 학문에서 말하는 논리와 기술 이상의 道가 피요한 법인데,  이것이 갖추어지지 않ㅇ느 학자가 나서니 이루어지는 바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括囊 无咎 无譽 (괄낭 무구 무예)

 

  지도자가 되는 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학문을 닦아 정치.사회적 리더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겨엦적으로 큰 부자가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권력과 돈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가끔 권력과 돈이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리에 연루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하지만 <주역>은 권력과 돈이 서로 다른 길에 속해 있음을 명시한다.  앞서 언급한 함장가정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치세(治世)의 道를 깨닫는 것이고,  이것이 되지 않으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적당한 권력과 부만 누리게 되고,  인민을 위한 진정한 통지자로 기록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경제적 리더의 길은 이와는 다르다.  경제적 리더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하 ㄴ가치는 명예여야 한다며, 지나친 인색함 때문에 대부분의 부자들이 이 명예를 얻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괄낭(括囊)은 돈주머니의 주둥이를 꽉 묶는 것이니,  벌어들인 돈을 쓰지 않는 구두쇠를 말한다.  이런 지나친 절약은 그 자체로 허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无咎), 불행하게도 이 때문에 명예를 얻을 수도 없다(无譽)고 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돈 많은 부자들은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고,  그들의 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돈을 쓰지 않는 부자들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돈을 쓰고 안스고는 그들의 자유다. 대신 그들의 명예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의 리더들,  특히 정치와 경제를 책임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주역>의 이런 명명백백한 가르침을 반드시 깨닫고 명심해야 할 것이다.

 

 

    黃裳 元吉 (황상 원길)

 

  황상(黃裳)은 황색치마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직역하면 '황색치마는 근원적으로 길하다' 정도로 출이할 수 있다. 

  황색치마가 무엇인가?  우선 황(黃)은 오행의 방위로 치환하면 중앙에 해당한다.  즉 '중용의 덕'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고,  치마는 아래로 두루 펼쳐지는 것으로서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도움의 상징이다.  따라서 황상이란 중용, 희생, 박애라고 할 수있다.  이것이야말로 성인(聖人)의 길이 아닐 수 없고,  모든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

 

  얄팍한 인간의 학문으로 득세하는 일이나 돈을 벌고도 사리사욕에 집착하여 불미스런 삶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도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이 가장 근원적으로 길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龍戰于野 其血玄黃 (용전우야 기혈현황)

 

  직역하면,  '들판에서(于野) 龍들이 전쟁(戰)을 벌이니 그(其) 피(血)가 검고(玄)고 노랗다(黃)'는 말이다.  이때의 용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  혹은 신의 대리자들을 상징한다.  또한 들판은 세계 전체를 의미한다.  세계 전체를 무대로 벌어지는 용들의 전쟁.  이는 현세적으로 풀이하면 종교전쟁을 상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종교 전쟁인가?  <주역>은 검은피를 흘리는 용과 누런 피를 흘리는 용이라고 말한다.  黃은 대지와 사막을 상징하는 색이고, 玄은 물을 상징하는 색이다.  그러므로 땅을 숭배하는 종교와 물을 숭배하는 종교 사이의 전쟁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利永貞 (리영정)

 

  利의 시절에서 貞의 시절 사이는 매우 길다(永)는 말이니,  문명이 발달된 세상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임을 말한 것이다.  利는 황극의 시절,  그러니까 인류의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하는 시절을 뜻한다.  이러한 利의 시절이 매우 길다는 말은 인류의 멸망이 그렇게 쉬게 오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만큼 먼 미래를 내다보고 세상을 경영해야 하며,  후손들에게 물려 줄 자연환경과 문명의 유산들을 잘 보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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