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건과 곤의 관계

오토산 2011. 12. 8. 18:12

 

 

◈ 건(乾)과 곤(坤)의 관계

 

  밝음을 상징하는 양(陽)의 출발점이 건(乾)이라면 곤(坤)은 어둠의 시작이다. 황혼을 지나 어둠이 지배하는 시각으로부터,  날이 밝아오는 여명(黎明)까지가 坤의 시간이다.  곤은 모든 것을 품에 안는 모정의 성품이며 사랑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둠과 습함의 성질을 대표하기도 한다.

 

  건(乾)이 하늘의 뜻과 신의 섭리를 대표한다면,  곤(坤)은 땅의 원리와 사람의 이성이나 감정을 대표하는 개념이다.  곤이 내포하는 이러한 성품으로 인하여 세상에서는 과학이 발전하지만,  폭력과 섹스, 그리고 온갖 비리와 환락이 생기고 소멸한다.

 

  이처럼 坤은 어둠의 세상을 상징하지만, 그렇다고 그 속에 어둠만 있는 것으 ㄴ아니다.  乾의 빛과는 다른의미의 빛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을 교화하여 그 이성의 힘을 키우는 교육이나 종교와 같은 것이 바로 곤의 세계에 속하는 빛이다. 인간의 성품 가운데 감정과 더불어 이성이 병존하는 이치와 같다.

 

  坤은 또한 乾과 마찬가지로 시간적인 흐름이면서도, 멸극\(滅極)인 정(貞)에 이르러 그 시간과 공간이 함께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건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땅 위에 실존하는 모든 만물은 滅極의 순간,  貞의 시기에 이르면 순한 암말(牝馬)과 같이 땅의 섭리에 순종하여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

 

  <주역>의 첫 번째 장인 <乾>이 하늘의 섭리와 인생의 기본 원리를 설명한 것이라면,  두 번째 장인 <坤>은 좀더 구체적으로 인간사회와 삶의 실용적인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관심의 영역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인간사회로 좀더 구체화된 것이다.

 

  이러한 구체성의 획득은 <주역>의 진행과 함께 더욱 강화되고 세밀해지는 경향을 띠게 된다.

 

 

  ● 주역은 인간의 삶을 말한다

 

  坤에 대한 기본 설명에 이어 <주역>은 이러한 곤의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더 평화롭게 서로 번영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의 세계,  곧 곤의 세계에서는 서로 상생하면 재물과 덕을 얻을 것이요,  상극하면 덕망도 잃고 실재(失財)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그 끝을 헤아려 욕심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편히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역>에 따르면 곤은 곧 실존적인 인간의 삶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음(陰)의 세계다.  

   하늘의 섭리와 떨어진 인간의 세계,  서로 싸우고 다투며 목숨을 연명해야 하는 , 그런 실존적이고도 형이하학적인 세계인 것이다.  <주역>의 이러한 사상은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불교의 세계관과 그 궤를 같이한다.

 

  그런데 이런 음의 세계는 겉보기에 건으로 표현되는 양의 세계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약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주역>에 다르면 사장은 좀더 복잡하다.  음의 세계, 곧 곤의 역정에도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와 차고 매서운 인생의 고난들이 무수히 숨겨져 있는 것이다.

 

  <주역>의 '곤(坤)은 이러한 고난의 바다를 건너는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자 작성된 것이다.  그런데 그 가르침이 이성과 합리성,  고학기술로 대표되는  서양 근대의 계몽적 가르침과는 자못 크게 다른 것이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동양적 자연관과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주역>의 가르침이야말로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이다.  아니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발전의 극한을 치닫고 있는 서양 물질문명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동양사상의 정수가 이 <주역>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컨데 <주역>은 우선 자신감을 갖고,  자연에 귀의하라는 말로 그 가름침을 시작한다.  인간에게는 배우지 않고도 살아갈 수있는 원초적인 힘,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타고난 힘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주역>의 설명이다.  그 힘을 믿고 개척해 나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배움이나 교육이 무의미한 것은 물론 아니다.  '건(乾)'에서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배움과 노력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만든 학문, 곧 이성으로 축적된 과학이나 기술만을 과도하게 심봉하는 태도라고  <주역>은 비판한다.  이처럼 자연의 도를 거스르는 학문으로는 학자가 되든 정치가가 되든 진정한 진리의 세계를 이를 수 없고,  결국은 끝장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주역>은 물질과 돈에 대한 가르침이 일반적인 종교나 유교적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즉, 돈과 재물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바탕에 깔고 있다.  책의  여러 곳에서 돈과 재물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상의 맹아가 이 책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맹목적인 자본 숭배에 대한 분명한 경계를 깨우치고 있다.  <주역>의 가르침은 돈과 명예의 상관관계를 분명히 하여서 오늘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특권계층의 도덕적 의무)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 삶은 영원히 이어진다.

 

  인간사회의 기초를 지티기 위한 공생의 도리,  상생의 도리를 말한ㄷ음 <주역>은 그런 사회의 항구적인 지속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영원히 지속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일존의 종말론에 관한 <주역>의 해석이자 가르침이다.  그런데 그 혜안이 실로 탁월하다.

 

  <주역>의 진단에 따르면 인간사회의 종말은 결국 종교전재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용의 전쟁(龍戰)은 바로 이 종교전쟁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들은 그 이면에는 대부분 종교적 분쟁으로 발생한 전쟁이다. 약 3000여년 전에 쓰여진 <주역>이 오늘날과 앞으로의 인류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다.  그런데 <주역>은 오늘날 여러 집단의 지구 종말론과는 분명히 다르게,  그런 종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즉,  인간의 세상,  물질과 부로 표현되는 '리(利)'의 세계에서 종말의 시기인 '정(貞)'의 세계까지는 아직 시간이 길게, 매우 길게(永)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역>은 앞으로 인간이 취할 태도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첫째  상생의 원리에 기초하여 자연의 도를 터득할 것, 

  둘째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누고 봉사할 것, 

  셋째  후손들을 위해 자연과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낙원으로 가꾸어 나갈 것.

 

  이것이 '곤(坤)'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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