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건(乾) [ㅡ, 重天乾, 乾爲天]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 자연의 섭리는 무엇인가?
모든 인생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고 해서 누구나 똑같은 모습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시간과 선택된 공간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은 갖가지로 달라진다.
주역의 <乾>은 이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성공의 3대 요건(시간, 공간, 사람)을
인생의 각 단계에 빗대어 총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乾 元亨利貞
潛龍 勿用
見龍在田 利見大人
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 或躍在淵 无咎
飛龍在天 利見大人
亢龍有悔
見群龍 无首 吉
乾은 크게는 천지창조에서 滅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작게는 한 생명의 잉태, 성장, 활동, 죽음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간에 관계되어 있다. 그 때를 잘 알고 움직여야 한다.
우선 너무 일찍 뜻을 펼쳐서는 안 된다.
설령 때를 만나 실제로 일을 도모하게 되더라도 인맥(人脈)을 얻어야 리도(利道, 이로운 길)를 얻을 수 있다.
무릇 군자는 일을 함에 있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저녁이 되면 다시 반성하고 겆엉하는 법이니
비록 그 일이 험하여도 허물은 없다.
이 정도면 자신의 기량을 힘차게 펼쳐도 허물이 없다.
그러나 역시 조력하는 인물이 있어야 利의 세계를 얻을 수 있다.
한편, 시간이 지나 때를 넘긴 늙은 용은 후회함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기 분수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길하다.
乾 元亨利貞 (건 원형리정)
乾은 元과 亨과 利와 貞의 모든 시절에 해당된다. 곧, 乾은 크게는 천지창조에서 滅의 시기까지, 작게는 한 생명의 잉태, 성장,
왕성한 활동, 죽음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간에 관계되어 있다.
이때의 乾은 한마디로 하늘의 절대성, 혹은 시간의 절대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시간의 절대성이야말로 하늘의 첫 번째 운행 원리이고, 우주만물과 모든 인생사가 이 시간의 절대성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하늘의 첫 번째 운행 원리인 시간의 절대성은 元, 亨, 利, 貞의 모든 시간대에 예외없이 적용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원, 형, 리, 정이 각각 무엇인가?
元은 혼돈의 시절이다. 만물이 생성되기 이전의 혼돈스러운 시절이며, 무극(無極)의 시절이라고도 한다. 우주에 비유하자면 아직 낮과 밤이 갈리기 이전의 때이며, 사람으로 따지면 출생 전의 어머니의 태(胎)안에서 성장하는 임신의 기간이다. 이를 포태양(胞胎養)의 시기라고도 하거니와 아직은 암흑기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야말로 만상(萬象)의 근본이 된다. 생명을 잉태하려는 혼돈의 카오스이다. 카오스가 없으면 새로운 탄생도 없고, 새로운 질서도 없다. 그러므로 이를 으뜸(元)이라 한다.
亨은 다음에 오는 창조의 시기이다. 우주에서는 낮과 밤이 생기고, 한난조습(寒暖燥濕)이 생기며, 만물이 탄생하여 음과 양으로 구분되는 때이다. 인간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밖으로 나와 살아갈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는 시절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는 태극(太極)의 시절이라고 한다. 태극은 처음으로 극이 생겨나는 때를 말한다. 인간의 삶으로 보면, 탄생하여 남녀로 구분되는 시기에서부터 가정과 사회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하여 성년이 되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의학이 발전하여 초음파로 관찰한 결과 어머니 뱃속에서 임신 5개월 후 부터 남녀의 성구분이 생기고 태아가 희미하게나마 빛을 구분 할 수 있는 시기라면 태극의 시절이 바로 그 시기부터가 될 것이다.
利는 왕성한 활동과 결실의 시기를 말한다. 배움을 마치고 때를 얻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장년(壯年)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질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는 시기이며, 이러한 때를 다른 말로는 황극(黃極)의 시절이라고도 한다. 이때에는 세상 만물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다. 우주와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취하게 되는 때이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물질문명의 혜택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利의 시절이라고 한 것이다. 황극이라고 할 때의 黃은 곧 황금의 황이요, 이를 다른 말로 실리주의(實利主義)라고 할 때의 利가 되니, 黃이나 利는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에게는 이 시절은 사회에 나아가 점점 능력을 발휘하는 시절까지에 해당한다.
貞은 소멸의 시기이다. 우주가 수명을 다하여 스러지는 최후의 순간 곧 종말의 시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를 멸극(滅極)의 시절이라고도 한다. 사람으로 따진다면 노쇠하여 병들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시기이다.
<주역>은 이렇게 세상과 인생을 네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건(乾)>에서 사용한 네 종류의 용 비유를 덧붙여 표를 작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시기의 이름 |
특 성 | |||||
주 역 |
오 행 |
식 물 |
동 물(인 간) |
우 주 |
용 | |
원(元) |
水 |
근(根) |
포태양(胞胎養) |
무극(無極) |
潛龍 |
혼돈, 생, Chaos |
형(亨) |
木 |
묘(苗) |
생욕대(生浴帶) |
태극(太極) |
見龍 |
창조, 성, Cosmos |
이(利) |
火 |
화(花) |
관왕쇠(冠旺衰) |
황극(黃極) |
飛龍 |
완성, 장, ...... |
정(貞) |
金 |
실(實) |
병사장(病死葬) |
멸극(滅極) |
亢龍 |
소멸, 사, ...... |
인간 삶의 단계에 관한 논의와 설명은 동서고금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 온 것이다. 예컨데 명리학에서는 인간의 삶을 대략 세 단계로 나눈다. 즉, 생(生, 태어남), 왕(旺< 왕성하게 활동함), 장(葬, 장사지냄)이다.
각 단계마다 드러나는 특성이 다르므로 마땅히 해야 할 역할도 또한 달라져야 한다. 주역은 이를 元亨利貞으로 명리학 보다 세세하게 나누고 각 단계의 특성과 거기에 걸맞는 사유 및 기본 원칙을 제시한다. 따라서 <주역>은 점술서라기보다 삶의 기본 원칙과 큰 방향을 제시하는 철학서이자 실생활의 지침서인 것이다. 거기에는 삶을 위한 철학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인생의 정신적. 물질적 성공을 위한 핵심 열쇠도 함께 들어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역>을 읽어야하는 이유인 것이다.
潛龍 勿用 (잠룡 물용)
潛龍은 쓰지(用) 말라(勿)는 말이니, 곧 인격을 갖추지 못하면 뜻을 펼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잠룡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무극의 시절 혹은 그 시기에 있는 사람을 상징한다. 아직은 음과 양의 구분도 없고, 낮과 밤의 구분도 없으며, 추위와 더위도 따로 나뉘지 않은 혼돈의 시절에 해당한다. 어디에도 쓸 곳이 없다.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스스로가 아직 잠룡의 때에 있는 줄 모르고 일찌감치 나서서 설치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이 구절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으니 더 배우고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려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見龍在田 利見大人 (현룡재전 이견대인)
見龍이 밭(田)에 있으니(在), 대인(大人)을 봄(見)이 이롭다(利)는 말이다.
즉, 밖으로 나아가 밭에서 일을 할 정도가 되더라도 인맥(人脈)을 얻어야 리도(利道)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현룡은 드디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용이니, 사람으로 따진다면 사회에 진출하여 일을 할 준비를 마치는 단계이다. 그 이전에는 부모의 보호 속에 자라고, 열심히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배움의 시기도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용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은 하늘이 비로서 그 기회를 허락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를 만나고 하늘이 허락했다하여 만사가 저절로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때, 즉 시간이 허락 되엇다면, 그 다음은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 이치가 '재전(在田)'이라는 두 글자에 담겨 있다. 현룡이 시간과 하늘, 신과의 교감을 의미한다면 재전은 공간과 땅, 환경의 획득을 의미한다.
하지만 <주역>은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었다고 모든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추가요소가 있으니, 바로 사람(大人)이다. 利의 道를 얻으려면 훌륭한 人士가 모여 서로 조력하고 희생해야 한다. 공동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가 아닐 수 없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혹은 사회적으로든, 무슨 일이든 큰일을 하자면 주변에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주역>은 이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늘, 땅, 사람이라는 天地人 三才의 중요성과 조화를 강조한 <주역>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시간과 공간 못지않게 결국은 사람의 힘이 강조된 문맥을 통해 인본주의(人本主義)사상 역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현룡재전 리견대인'이라는 여덟 글자의 상징과 비유가 상호 어떤 관련을 맺고 있으며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정리해 보았다.
구 절 내 용 삼 재 의 미 현룡(見龍) 시간(時間) 천(天) 신과의 교감 재전(在田) 공간(空間) 지(地) 환경을 얻음 대인(大人) 인본(人本) 인(人) 인맥을 만남
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 或躍在淵 无咎 (군자 종일건건 석척약 려 무구 혹약재연 무구)
무릇 君子는 항상(終日)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乾乾) 저녁이 되면 다시 반성하고 걱정하는(惕若) 법이니, 비록 그 일이 위태로워도(厲) 허물(咎)이 없다(无). 이 정도로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다면, 혹(或) 좀 무리해서 높이 뛰어도(躍) 연못 속에 있으니(在淵, 용은 물속이 편하다), 역시 허물이 없다(无咎)는 뜻이다. 이는 군자의 일하는 자세와 더불어 큰일을 성취하기 위한 용기와 모험의 필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여기서 군자라 함은 현룡(見龍)의 시기를 지나면서 때를 얻고, 재전(在田)의 노력을 통해 공간 즉 환경을 얻고, 마침내 견대인(見大人)을 통해 자신을 도울 인재를 모두 얻은, 다시 말해서 천지인의 삼재를 모두 갖춘 사람을 말한다. 필요한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사람인 것이다.
혹약재연(或躍在淵)은 기회를 포착하여 안주할 염려가 있는 연못을 과감히 박차고 뛰쳐 나가, 하늘로 승천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렇게 해도 역시 허물이 없다는 것은 실패하여 떨어져도 연못 속이니 재도약의 기반위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허물이 없다는 말이다. 충분히 준비하고 자신을 철저히 갈고 닦았다면 용은 승천하여야 한다. 용문을 뛰어 넘어야(등용문) 황하 상류의 별천지로 나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용감하게 일어 나서야 함을 강조한다. 성공한 정치가나 사업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성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과감한 추진력이다. 혹약재연은 그런 용기와 결단력, 추진력을 강조한 말이다.
飛龍在天 利見大人 (비룡재천 리견대인)
비룡(飛龍)이 하늘에 있으니(在天), 대인(大人)을 만나면(見) 이롭다(利)는 말이다.
즉,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최상의 때를 맞이하더라도 역시 조력하는 인물이 있어야 利의 世界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비룡은 하늘을 나는 용이니 최고의 기회를 만나 최고의 성공을 거두는 전성기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본인의 많은 노력과 하늘의 도우심으로 때와 환경과 인재도 얻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도 필수 불가결한 것이 또 있으니, 바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다. 그만큼 인맥이 중요하고,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주역>은 이와 같이 휴머니즘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亢龍 有悔 (항룡 유회)
항룡(亢龍)은 후회함(悔)이 있다(有)는 말이니, (물러남의) 기회를 놓치고 때를 넘긴 늙은 용은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는 말이다.
물러나는 일 역시 타이밍이 중요하다. 세상에는 물러날 대를 놓치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亢龍(亢: 지나치다)은 비룡의 한계를 넘어선 때를 의미한다. 신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선 인간의 교만함을 의미하는 말이 될 수 도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물질과 기술의 혜택만을 맹신하고,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무한한 욕망만을 좇는 오늘의 인간들을 빗댄 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은 자명한 노릇이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어리석게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많이들 한다.
항룡은 또한 물러나야 할 시기에 이를 거부하고 계속 자리에 연연하는 인간을 상징한다. 창창하게 솟아오르는 현룡이나 비룡 같은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지 않고 끝까지 자기 것을 지키려는 욕심 많은 늙은이를 생각하면 된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그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항룡은 늙은 용이자 운(運)을 다한 용이다. 물러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 항룡은 이처럼 신의 기운이 떠난 은퇴의 시기를 일컫는다. 무릇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見群龍 无首 吉 (견군룡 무수 길)
뭇 룡(群龍)을 보더라도(見) 머리(首)를 그러내지 않으면(无) 길(吉)하다는 말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분수를 지켜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군룡은 잠룡, 현룡, 비룡, 항룡 뿐 아니라 떼를 지어 나타나는 현룡, 비룡 등 한창 전성기의 룡을 만날 수도 있다. 본인 또한 비룡일지라도 뭇 용을 만나면 머리를 내밀지 말란 뜻이니 함부로 나서지 말고 겸손하란 말이다. 그래야만 吉하다.
무수(无首)의 삶은 어떤 것일까? 겸손, 순종, 단결, 협동, 헌신, 봉사 등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통상적인 가치로서 소중히 여기는 작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를 잊지 않고 삶을 끝까지 이끌어가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특히 한때 큰 성공을 거두고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乾은 이런 건강한 민중적인 보통의 삶의 자세. 고결한 인격자의 자기 겸손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