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교육은 무엇인가?
<주역>의 네 번째 장에서는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을 이야기한다. 교육의 형태에는 동몽(童蒙), 발몽(發蒙), 포몽(包蒙), 곤몽(困蒙), 격몽(擊蒙) 등 여러 가지가 있음을 열거하고, 이들 여러 형태의 교육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주역>에서 최상의 교육으로 동몽을 설정했고, 포몽을 그 다음에 두었으며, 발몽은 권세에는 도움이 되지만 권장할 교육은 아닌 것으로, 곤몽은 피해야 할 것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격몽은 모든 국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교육인데, 그 목적이 사회생활을 위한 기초 질서 교육에 있음을 부연하여 설명하고 있다.
위와 같은 교육의 형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주역>은 교육의 진정한 목표가 자연과 인간의 완전한 합일에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논리나 기술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 공부로는 권세를 쥐고 흔드는 인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가느이 운명 자체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는 없다고 햇다. 옛 사람들의 교육 이념이 명쾌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렇게 인격을 갈고 닦는 공부는 등한시한 채, 오직 논리와 기술을 갈고 닦는 일에만 매진하면 학문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배운 사람들보다 사회적인 책임감이나 도덕성이 더 희박한 지식인이 생겨난다.
머릿속에 지식만 가득 찬 멍텅구리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동늘 주고 교수자리를 사는 학자가 생기고 박사가 되어서도 인륜의 바탕을 뒤흔드는 파렴치범들이 생겨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주역>은 이런 지식 위주의 교육, 현실 적응력만 뛰어난 공부 대신에 화합과 중용의 덕을 먼저 가르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런 공부로는 비록 출세는 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가정이 화목하고 집안이 대대로 번성할 수 있을 터이니 이 또한 사회의 기포를 올바로 다지는 중요한 교육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주역>은 억지로 하는 공부의 폐해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여건과 환경이 허락되지 않는 공부, 뜻이 없는 공부에 억지로 매달리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해서는 진정한 공부가 될 수 없다. 자연의 진리에 몸을 맡겨, 진리 자체가 나를 찾아오도록 몸과 마음을 열어두는 공부를 해야만 진정한 뜻을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공부를 포기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하늘이 돕는 성인들의 큰 공부, 출세를 위한 피나는 공부, 삶 자체를 사랑하는 군자들의 평생 공부는 하지 못하드라도, 누구나 반드시 기초 교육은 받아야한다. 이를 통해 사회 안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초 질서 교육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런 기초 교육이 그릇되면 사회가 붕괴되고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