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림의 미학과 원칙
비단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어른들을 일러 철부지라고 한다. 철부지란 '때를 모른다'는 말이다. 때를 모르니 세상의 통상적인 순리조차 지키지 못하는 바보라는 뜻이 철부지라는 말에 담겨 있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의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밥을 먹을 때가 있고 잠을 잘 때가 있으며, 잎이 날 때가 있고 꽃이 질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마땅히 어떤 일을 하든지 그 때를 알아서 이에 맞추어 추진해야 한다. 공부를 할 때에는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할 때에는 결혼을 해야 하며, 죽을 때에는 순한 암말처럼 죽음에 순종해야 한다. 이 대를 어기면 일이 성사되지 않고 다른 사고가 생기게 된다.
게다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어떤 일을 제대로 성사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일에 적당한 때를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때가 맞지 않으면 일이 성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역>의 가르침은 그 첫 번째 장인 <건(乾)>에서부터 누누이 강조되어 온 것이다. 때를 올바로 살펴 세상에 나아가거나 물러나야 한다는 가르침, 청소년기에는 욕정에 사로잡혀 방황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큰 뜻을 세워야 한다는 가르침들이 모두 이 때를 강조한 것들이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기다림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흔히들 아직 때가 아니라거나, 대가 오기까지 기다리라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때가 오거나 오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면 저절로 때가 온다는 말인가?
<수(需)>는 이러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기다림의 문제들에 대해 몇 가지 경우를 들어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그 놀라운 지혜를 배울 있는 것이다.
우선 때가 무르익기까지 기다리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믿음이다. 기다리면 반드시 때가 올 것이고, 그러면 워낳는 바를 이룰 수 있으며 뜻을 펼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야만 기다릴 수 있다. 왜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기다림을 지속할 수 없다. 현실의 세계에서도 왕왕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건 기다림이 허송세월인 것이다.
기다림에는 그 나름의 미학이 있고 방법론이 있다. <주역>은 이를 기다리는 장소의 문제에 빗대어 몇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기다려야 할 것이 미래의 시간이라면, 지금 현재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주역>의 기다림이 막연한 기대나 기다림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기다리는 적극적인 기다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주역>은 최선의 기다림이란 미래의 때를 기다리면서도 현재의 경제적인 활동을 능률적으로 행하고, 본인과 가족이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최상의 기다림으로 설하였다. 청렴하고 곧게 살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을 둘째로, 제도권 밖에 머무르면서 속으로는 정치 참여를 갈구하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하는 이중적 태도의 기다림을 그 아래에 두었다.
적극적인 기다림을 미래를 위한 투기나 얄팍한 사전 술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미래를 변화시키기 위해 뒤에서 억지로 상황을 조절하거나 음모를 꾸며서는 안된다. 그래서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하거나 범죄요소가 있는 행위를 하면서 기다리는 것은 결국 도적이 될 뿐이고 흉하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성정이 급하고 강한 사람은 기다림을 이루지 못한다고도 했다.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을 가지고 동굴에 들어가 인간이 되기를 꿈꾸었으나 곰은 성공하고 호랑이는 실패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기다림의 미학과 <주역>의 가르침이 다르지 않다.
기다림의 결과 내가 지금 발 디딘 환경 위에 때가 이르면 반드시 나를 도울 인물도 나타나게 마련이라고 <주역>은 가르친다. 앞에서 여러번 언급했던 대인(大人)이 나타난다는 것이고, 비로소 天. 地. 人의 세가지 요소가 갖추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그 귀인을 공경의 마음으로 맞이하여 그 가르침을 실천하면 마침내 대망(大望)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주역>의 최종적인 가르침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기다림의 원칙 세 가지를 정리해 보자.
첫째는 믿음이다.
둘째는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의 자세이다.
셋째는 마침내 도래한 타이밍을 정확히 판단하여 일을 추진하는 능력이다.
이 세가지를 갖추어야 진정으로 기다림의 미학을 깨닫고 때를 만나 큰일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