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제4장 몽

오토산 2011. 12. 8. 18:23

 

 

제4장 몽(蒙) [ -- , 산수몽(山水蒙)]

           참교육의 도

 

 

           교육은 모든 시대의 가장 큰 문제요,  결코 놓을 수 없는 화두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원하고 돈과 권력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교육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교육에도 여러 가지 형태와 방식이 있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는 님간이 만든 논리와 기술을 열심히 연마해야 할 터이지만,

            진정한 인간의 도를 깨달아 참다운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지연의 도리를 몸으로 깨닫고 중용의 덕을 쌓아야 한다.

 

            과연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무엇이고,  어떤 방법으로 자녀들을 지도해야 하는가?

            <주역>이 말하는 참교육의 길을 따라가 보자.

 

 

          蒙 亨 匪我求童蒙 童蒙求我 初筮 告 再三 瀆 瀆卽不告

            利貞

            發蒙 利用刑人 用說桎梏 以往 吝

            包蒙 吉 納婦 吉 子  克家

            勿用取女 見金夫 不有躬 无攸利

            困蒙 吝

            童蒙 吉

            擊蒙 不利爲寇 利禦寇  

 

  몽(蒙)은 형(亨)의 시절에 통한다.  참 진리는 인간이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진리가 자연스럽게 나를 찾아오는 법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생명의 순수성이다.  순수성을 잃지 않으면 가르침을 얻게 될 것이나,  수순성을 잃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세상에서 필요한 공부를 열심히 하면 타인에게 형벌을 가하는 지위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공부로는 자신이 억눌림당하는 것을 면할 수 있을 뿐,  궁극적인 삶의 고난과 허무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덕을 익혀 너그럽고 포용력 있는 생활의 도(道)에 충실한 사람이 된다면,  가사(家事)를 부인에게 맡겨도 길하고,  자식 또한 집안을 잘 이끌어 간다.  

 

  그러한 공부의 과정에서는 경계할 것들이 많으니 우선 여인에게 기대지 말라.  여인은 돈 많은 남자를 만나면 쉽게 몸과 마음을주니 이롭지 못하다.

 

  또한 어렵고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면 고난만 많아진다.  그러므로 자연의 섭리에 의한 공부만이 길하다.  한편 모든 국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초 교육도 있으니,  이는 공공의 안녕과 법질서를 세우기 위한 격몽(擊蒙)의 교육이다.

 

 

    蒙 亨 (몽형) 

 

  몽(蒙)은 어린아이, 어리석은, 교육 등의 뜻을 가진 글자다.  대체로 어린아이들의 교육을 뜻하니,  <격몽요결(擊蒙要訣>, <동몽선습(童蒙先習)>에서의 몽과 같은 뜻이다.  이러한 교육은 亨의시절에 주로 이루어진다.  교육이 가장 중요한 시기가 元亨利貞가운데 형의 시기,  곧 청소년기와 젊은이의 시절임을 말한 것이다.  교육은 이때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利와 貞의시절에 쓰이게 된다.

 

 

    匪我求童蒙 童蒙求我 (비아구동몽 동몽구아)

 

  직역하면,  '내(我)가 동몽(童蒙)을 구하는 (求) 것이 아니라, 동몽이 나(我)를 구(求)한다'는 말이다. 

  이때의 '동몽'은 <주역>에서 최고의 경지로 생각하는 교육의 형태 혹은 순수한 도의 경지, 최고의 인격을 상징한다.  얄팍한 재능이나 노력만으로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은 흔히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들이다.

 

  동몽이 누구나 추구해야 할 목표이긴 하지만,  그렇게 쉽게 아무나 도달할 수 잇는 경지가 아님은 분명하다.  하늘이 돕고 자연이 도와야 가능한 경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동몽이 나를 구해야 된다고 말한 것이다.  무릇 참 진리는 인간이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가르쳐 주는 법이다.

 

 

    初筮 告 再三 瀆 瀆卽不告 (초서 고 재삼 독 독즉불고)  

 

   교육의 최고의 경지가 단순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 후에 이어지는 구절들과 <주역>의 기본 사상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면, 인간이라는 자연의 한 존재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었던 순수성, 자연성, 생명성을 최고 경지에 이르는 필요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말해 자연과의 합일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된다는 말이다. 이런 순수성을 잃어버린 세계가 이 구절에 나오는 독(瀆)의 세계이다. 

 

  초서(初筮)는 점쟁이가 처음 점을 친다는 말이니,  여기서는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아이가 처음 세상을 배워 갈 때의 그 순수성, 그 자연성을 말한 것이다.  그 순수성이 유지될 때는 자연이 필요한 진리를 일러 준다(告).

 

  그런데 질문이 두 번 세 번(再三) 반복되고, 공부가 여러 해 비속되는 동안 순수성은 없어져 버리고 더러움이 기게 마련이다.  이것이 독(瀆)이다. 이렇게 되면(瀆卽) 자연은 더 이상 그에게 그가 원하는 진리를 일러 주지 않게 된다(不告)는 뜻이다.

 

  이처럼 <주역>은 자연과 합일하여 대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과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함을 최상의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자연과 합일함이 몽(蒙)의 도(道)이다.  이를 한마디로 동몽(童蒙)이라 하여 교육의 형태 중 최고의 경지로 설명하고 있다.

 

 

    利 貞 (리 정)

 

  시작 부분의 '蒙 亨'에 이어 지는 구절이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亨의 시절이라면 그것이 쓰이는 때는 利와 貞의 시절임을 말하고 있다.

 

 

    發蒙 利用刑人 用說桎梏 以往 吝 (발몽 리용형인 용설질곡 이왕 린)  

 

  동몽(동몽)에 이어 두 번째 공부의 형태인 발몽(발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발몽은 인간이 만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말하며,  출세를 위한 일체의 공부를 뜻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매달리는 공부가 바로 이것이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하면 利의시절에  형인(刑人)으로 등용됨(用)에 이롭다(利)고 했다.  형인은 형벌을 집행하는 자이니,  노을날의 판검사가 될터이다.  실제로 세상의 학문을 열심히 갈고 닦으면 판검사가 될 수 있고,  판검사는 남에게 구속됨이 없이 오히려 남의 허물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권력자에 다름 아니다.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 권력과 현실적인 명예의 상징이다.

 

  그러나 <주역>은 그래 봐야 별 수 없다고 말한다.  그저 용탈질곡(用說桎梏), 다시 말해 개인적인 질곡에서 벗어날(說=脫)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거나 자기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 정도는 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도 큰 

성취는 될 것이나, 동몽의 목표와 같이 본질적인 성취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끝까지 길하지 못하고 利의 시절이 지나가면서 그 이후로는(以往) 어렵고 곤란하다(吝)는 것이다.

 

  이 구절은 인간이 만든 학문에 매달려 세상의 명리(名利)를 좇는 공부의 한계를 말한 부분이다.  앞의 '동몽'에 관한 얘기와 비교하여, '발몽'으로는 최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고  궁극적인 인간의 고뇌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고 하였다.  이미 얻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부질없는 싸움에 끝없이 매달리는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이 새겨듣지 않으면 안 될 대목이다.

 

 

    包蒙 吉 納婦 吉 子 克家 (포몽 길 납부 길 자 극가)        

 

   포몽(包蒙)은 포용의 공부이다.  인화(仁和)로써 상대를 편안하게 껴안아 다스리는 도리를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도리로 가정을 다스리면 길(吉)할 수 앆에 없다.

 

  납부(納婦)는 부인에게 집안의 운영권을 준다는 말이다.  포몽이 이루어 진 가정에서는 부인이 돈의 출납을 비롯한 일체의 일을 맡아도 역시 길하다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가정에 젊은 아들이 있다면 아버지의 포몽을 보고 배워,  그 역시 가정의 운영을맡아 다스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극가(克家)이다.

 

  <주역>은 질실하고 인자한 마음과 현명한 판단으로 가정을 운영하는 생활인의 도리를 포몽(包蒙)이라 하였다.  포몽의 도리에 충실한 사람은 집안일에 대한 모든 권리를 아내에게 맡겨도 허물이 없으며,  자식 또한 어버이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고 가정을 잘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생활인으로서의 도리에 충실한 삶이,  인위적인 학문에만 집착하여 일상생활을 유기(遺棄)하는 것보다는 참진리에 가갑다는 주장이다.

 

 

    勿用取女 見金夫 不有躬 无攸利 (물용취녀 견금부 불유궁 무유리)

 

  물용취녀(勿用取女)는 글자 그대로 여자를 취하지 말라는 말이다.  견금부(見金夫)는 사내를 돈으로 본다는 말이니,  돈이 없어지면 변심해 버리는 여자의 속성을 말한다.  그런 여자는 제자리를 지키지 않는 법이다. 불유궁(不有躬)이란 이렇게 여인이 있어야 할 장소를 벗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로울게 없다(无攸利).

 

  여자를 경계한 구문을 '몽(蒙)'에서 강조한 이유는 공부와 수행의 탑을 쌓는 중에 제일 방해되는 일이 바로 이성(異性)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장 열심히 정진해야 할 때에 여자에게 빠지면 장차 利의 시절에 성공이 없으리라는 경계이다.

 

  <주역>은 이처럼 절대로 여자에게 의존하지 말라는 가르침으로써 陰의 기운에 기대어 세상을 살아가는 음기경영(陰氣經營)을 몹시 경계하였다.

 

   

    困蒙 吝 (곤몽 린)  

 

  곤몽(困蒙)은 곤란한 공부이니,  어렵고 싫은 공부를 말한다.  이런 공부를 하면 고난이 많다(吝). 하기 싫거나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하는 것,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에 집착하는 것 모두가 곤몽이다.  <주역>에서는 이러한 공부를 계속하면 어려움이 끊이지 않는다고 경계한다.

 

  이 구절은  공부와 교육의 방법론을 말하기도 한다.  달리 해석해 보면,  아이들에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공부를 시키지 말고 자연의 섭리를 먼저 익히고 인간사의 진리를 먼저 고민케 한다면 스스로 깨우쳐 진정한 공부의 세계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 가르침이다.  오늘날 심야 과외나 아이들을 전인 교육시키려는 욕심 등이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童蒙 吉 (동몽 길)   

 

  곤몽은 어렵고 동몽은 길하다는 말이니,  곤몽에 매달리지 말고 동몽으로 나아가라는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동몽은 무엇인가?  

 

  동몽은 문자 그대로 어린아이의 공부다.  목적도 없고 실용성도 염두에 두지 않는 공부, 오직 자연의 이치에 대한 궁금증으로만 가득 찬 순수한 의문의 세계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하는 공부가 동몽이다.  이런 어린아이의 순수함이야말로 자연과 동화되고 신과 교감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티 없이 맑은 아니들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예수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동몽의 완성은 서책이나 인위적인 학문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도리가 스스로 나에게 닥쳐와야 이루어지는 그런 배움이다.

 

  도교나 불가에서 선(禪)을 통해 도인이되거나 성불(成佛)하는 경지,  이 깨달음의 경지가 바로 동몽인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흔히 도사나 성인이라 한다. 이들의 특징은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숨결을 완벽하게 일치시켯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과 타인과 세계를 알고 있으며,  그 움직이는 바가 자연의 원리와 일치하고 어떤 경우에도 욕심을 부리거나 과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유가에서 말하는 중용(中庸)의 덕을 온전히 갖춘 군자의 경지와도 다르지 않다.

 

 

    擊蒙 不利爲寇 利禦寇 (격몽 불리위구 리어구)

 

  앞의 구절까지는 여러 형태의 교육을 말하면서 최종적으로 동몽의 중요함을 설파하였다.  그런데 이들 교육은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동몽을 향해 치열하게 정진하든,  출세를 위해 피땀을 흘리든, 곤몽을 버리든 말든, 모두가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도 있듯이 피교육자 한 사람의 선택에만 맡겨 둘 수 없다.  사회를 유지하고 국가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들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때의 교육이 격몽(擊蒙)이다.  격몽은 인위적으로 행과 열을 맞추도록 하는 교육을 말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목적은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공동체의 규율, 곧 최소한의 법을 지키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법정신을 함양하고 지켜야 항 최소한의 법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  국가 기초 교육의 목적은 이것이 시작이자 끝이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자면 다소 소극적인 의무교육을 말한 것으로 풀이 되지만,  국가의 의무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3000여년 전의 <주역>이 이처럼 국가 공동체 유지를 위한 필수 교육을 논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격몽의 필수 교육을 '도적(寇)'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 도적이 되는데(爲)는 불리하고,  도적을 막는데는 유리하다(利)' 라고 표현하고 있다.  풀어보면,  격몽을 통해 국가 구성원들이 도적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무식함으로 인하여 사리 판단을 못하고 무지막지한 비적이나 역적, 도적등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최소한의 교육인 격몽을 실리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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