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란 무엇인가?
수행하고 공부(蒙)하여 때를 기다리다가(需), 마침내 그 경륜을 펼쳐 보이니 이때를 송(訟)이라 한다. 그동안의 공부와 수행, 깨달음의 결과를 현실에 적용해 보는 시기다. 때를 얻어서 공공(公共)에 참여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하자면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다. <송(訟)>은 이처럼 정치의 길에 들어선 사람에게 과연 정치란 어떤 것이고, 누가 정치를 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정치의 남다른 특성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주역>에 따르면 정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자신이 실력을 믿고 윗사람이 나에게 소신이 있는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신뢰를 주어야 하며, 아랫사람도 믿고 따르도록 덕을 갖추는 것이 정치인의 첫 번째 요건이라는 것이다.
둘째, 정치인은 사리사욕을 버려야 한다. 사사로운 욕심으로 대사를 운용하면 걱정이 떠날 날이 없고 중용의 도리를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도 버려야 하고, 나는 항상 옳고 반대파는 항상 그르다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자신을 항상 저울의 중심에 두어야 하는데, 이를 일러 중도(中道)라 한다.
셋째, 조언을 해주고 길을 가르쳐 주는 대인(大人)의 충고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언로(言路)를 막아서는 안 되며,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대인은 인민이니 인민의 소리인 민심에 복종해야 한다.
넷째, 정치인은 자기 혼자만의 안위를 생각하여 움직이는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라 만인의 목숨을 담보로 큰일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욕심이나 기분에 따라 함부로 모험을 해서는 안된다. 모홈정신은 정치인이 아니라 사업가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정치를 하다보면 청탁을 받는 경우가 흔히 생긴다. 이를 거절하면 처음에는 무정하고 의리 없는 사람이라고 싫은 말을 듣게 되지만, 세월이 지나면 모두 이해하고 칭송하게 된다.
무능하거나 부패한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사람은 하루빨리 정치팜에서 떠나야한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 한 사람이 떠나면 만인이 행복해 진다.
그렇다면 누가 정치를 해야 하는가? <주역>은 이 문제에 대해 다소 파격적인 답을 내놓는다. 한마디로 정치인의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역시 정치를 할 확률이 높다는 설명도 이채롭다. 정치가 염치나 중도를 소중하게 여기는 보통사람들의 일이 아닌 것을 보면, 정치인의 자질이 남달라야 한다는 설명 정도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의 집안에서 태어나 조상의 음덕(蔭德)으로 정치에 입문한다고 해서 만사가 쉽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자기 그릇에 맞지 않아 고통을 겪기 일쑤라고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을 하게 되고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정치로는 참다운 정치를 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주역>의 최종적인 평가다.
한편 정치에는 항상 실패와 성공이 교차하는 만큼,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한 사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실패 뒤에는 윗사람을 찾아가 더욱 겸손하게 명을 기다려야 한다. 실상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런 겸손과 공경이 지극하면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나 성공할 수도 있다. 정치는 이처럼 복잡하고 오묘한 것이다.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하여는 앞서 열거한 몇 가지 기본 요건 외에, 나를 이끌어 줄 윗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조건도 따라붙는다. 그런데 이 윗사람이라는 지도자 자체가 역시 식언을 밥 먹듯이 하는 변덕스런정치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점을 잘 살펴서, 이런 변덕스러운 지도자 밑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순발력과 인내를 갖추어야 정객(政客)으로 성공할 수 있다.
이상이 <주역>이 <송(訟)>에서 정치에 대해 논한 개략적인 내용이다. 이는 오늘날의 정치 상황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진단들이고, 오늘날의 정치인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조언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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