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비내리는 고모령을 찾아서

오토산 2015. 1. 18. 23:29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7791

 

비내리는 고모령을 찾아서

15.1.18. 영손회 모임에참석하기위해 버스를 타고 대구북부정류장을 거쳐

동대구에 도착하니 시간이 일찍어 망우공원에 있는 '비내리는 고모령'노래비와

영남제일관을 찾았는데 영남제일관은 일요일이라 관람이 불가하여 꽃피는계절에

다시 찾기로 하고 외부만 구경하고 돌아왔다.

 

해방직후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현인씨의 노래 '비내리는 고모령'은

작사가 유호씨가 우연히 지도책을 보다가 대구수성구 '고모'라는 지명을 발견하고

어머니와 이별을 하는 아들을 소재로 '비내리는 고모령'이란 노래를 만들었다.

1992년 수성구의회에서 이곳 망우공원에 노래비를 세우고

 

노래비옆 '김문호기자 불망비'가 있는데  김문호(1963.3.10~1991.9.27)는

안동 태생,안동고등학교 졸업,세종대학교 졸업,공채로 한국일보기자가 되어

가을비내리는 경부선철길에서 고모령노래비 취재에 열중하다 뒤에서 달려온

열차를 피하지 못해 순직하여 노래비옆에 사진기자의 불망비가 세워져있다.

 

고모령은 형제봉 사이를 넘는 고개를 말하는것으로 이를 알리는 비석이

제2작전사령부 안에 세워져 있고 2012년 모명제길이 만들어지면서

고모령구간을 고모령길로 명명하였다.

 

영남제일관은 1590년(선조23) 대구도호부사로 취임한 윤현이 대구읍성을 축성

임진왜란때 없어지고 1738년(영조12) 석성으로 만들어 4개성문과 2개암문이

있었는데 동문을 진동문,서문은 달서문,남문은 영남제일관,북문은 공북문이라

하였으나 일제시대때 1906년 일본상인들이 대구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철거를

주장하자 관찰사 서리로 있던 박중양이 황제의 윤허도 없이 성을 헐어버려서

그 모습이 없어졌고 약전골목과 종로가 만나는곳에 있던 영남제일관을

1988년 망우공원인 현 위치에 새로 지었다.

 

 낙원가든에서 점심식사를 마친후 파티마병원에 문병을 하고 안동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함께 자리를 해주신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요즘 입시철에 내신성적에 학생의 석차를 1/100,2/100~99/100,100/100등으로

표시가 되는데 100/100을 약분하면 '1'이 되므로 1등아라고 하는데

1/100이 1등인지 100/100이 1등인지 분간하기 어렵네요 ㅋㅋㅋ

 

세상사 한마디

모처럼 만난 사람에게 안부를 물으니 절에가면 '지공선사' 교회에 가면 '목사'

성당에 가면 '대부'로 지낸다고 바쁘게 지낸다고 하니, 모두가 부러워 한다.

하철짜로 택된람, 적없이 람, 리로라도 르길 기다리는사람으로

외롭고 처량하게 사는사람을 보고 바쁘게 산다고 부러워하니 할말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