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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가 근무하던곳 충주 관아공원

오토산 2015. 9. 3. 14:01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8508

 

관찰사가 근무하던곳 충주 관아공원

 

 

관아공원은 충주읍성이 있던 터에 조성한 도시공원으로 동헌으로 사용하던 청녕헌,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제금당, 수직청인 산고수청각이 있었다.

 

충주읍성은 임진왜란때 파괴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1866년 병인양요를 격은뒤 전국

성첩과 군기를 보수하여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조칙이 내려오자 1969년 충주목사

조병로에 의해 벽돌로 둘레 3,950척(1.817m) 증축되었고 1871년 개축하여 조병로

목사의 품계가 높아졌고 1896년 유인식의병 충주성 전투중 북문을 제외한 3개문과

서문수문청을 제외한 3개수문청이 불타는 피해를 입어 1907년 성벽을 헐어 버렸다.

 

청녕헌은 1870년 화재로 소실뙤어 충주목사 조병로가 중건 1895년(고종32)

충주부 관찰사가 사용하였고 이듬해 충청북도 관찰사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다가

1907년(순조2).5.23.도청이 청주로 이전되면서 충주군수의 정청으로 이용되었다.

 

제금당은 동헌 동쪽에 위치하며 왕실과 관련된 인물이 왔을때 머물던 별관으로

단청이 화려하며 정면 7칸,측면 3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출입문 내삼문은

1871년(고종8)에 솟을대문형식으로 만들었고 '예성별관'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뒤쪽에는 수직청(지금의 비서실)으로 사용하던 산고수청각이 있다.

 

산고수청각은 제금당의 수직청으로 동헌은 남서향하고 제금당과 산고수청각은

정남향을 하고 있으며 청녕헌은 지방관의 아사(衙舍)이고 제금당과 수직청은

왕부(王府)이기 때문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공원안에는 순교자 현양비와 읍성 축성사적비가 있었으며

순교자 현양비는 천주교 박해가 있을대 마다 충주부근의 천주교우들이 동헌에

잡혀와 심문을 받았으므로 이곳에  서린 순교자의 억울함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비 이며 축성사적비는 1869년 축성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비이다.

 

관아공원을 돌아보고 오는길에 수안보 물탕공원에서 족욕으로 피로를 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수안보에는 온천수를 공동으로 관리를 하고 있으며

실시간 온천수 사용량이 전광판에 표시가 되고 있는것을 볼수 있었다.

 

세상사 한마디

송사리 다섯마리가 소풍을 갔는데

한참을 놀다보니 여섯마리가 돌아 다녔다.

화가난 송사리들이 끼어든놈을 보고 "너는 누구냐?"하니

그놈의 대답이 "나는 꼽사리다"

어느 모임에나 꼽사리가 있고 꼽사리가 있어야 더 좋을수도

 

 

 

 

 

 

 

 

 

 

 

 

 

 

 

 

눈으로 맛을본 송이버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