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삼현출생지지 서백당

오토산 2015. 9. 12. 17:28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8539

 

삼현줄생지지 서백당

 

 

안동시 행정동우회에서 이달말 열리는 국제탈춤폐스티벌를 홍보하기 위하여

양동마을과 포항지역 홍보에 나서 양동마을을 가기전 (주)풍산의 안강공장을

견학했(주) 풍산은 1973년 설립해 현재 23개국에 수출하여 매출액 33%를

수출에서 확보하는 기업으로 장학사업.사회사업등 많은 나눔을 하고 있었고

(주)풍산을 견학을 마친 우리는 양동마을로 갔다.

 

양동마을은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두 가문이 500년 전통을 이어온 양성마을로

1984.12.24.국가지정문화재 지정, 2010.7.31.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국보 1점, 보물 4점등 국가및 시도지정문화재 22점이 있다.

 

풍수지리로 역수지형(逆水地形)으로 마을이 번창하고 인물이 많이 난다 하며

경주에서 흐르는 형산강의 물이 마을을 향하여 거꾸로 완만하게 흐르고 있어

사람의 마음이 서두르거나 좀스럽지 않게 하고 여유롭고 너그럽다고 하며

마을 형국은 주산인 설창산의 줄기가 뻗어 내려 만든 물(勿)자 모양 능선들이

네 골짜기를 이루고 있고 勿자는 풍수적으로 깨끗하다는 뜻이며 이뜻을 지키려

양동의 종택들은 모두 능선의 가장 높은곳을 피하고 그 바로 아래에 지어졌다.

양동마을 안산인 성주봉은 붓이나 마늘쪽 또는 삿갓처럼 생겨서 사람의 심성을

부드럽게 하여 마을에 범죄가 없고 사람들이 학문에 뜻이 높아 과거합격자와

걸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할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양동마을이 이루어진것은 양민공 손소(1433~1484)가 청송부안덕현에서

풍덕류씨 류복하의 사위로 양동으로 와 처가에서 4년간 살다가 서백당을 지어

분가하였고 손소의 사위가된 찬성공 이번(1463~1500)이 연일에서 장가들어

추가로 양동마을에 정착하면서 손씨와 이씨가 좋은터에 집을지으면서 오랜

세월을 거쳐 살아와  양성마을을 형성하였으며

조선초기에는 유교의 종법질서 보다는 혈연관계를 중시하던 시기로 남자가

결혼을 하면 처가에서 살고고 재산도 남녀에게 같이 분배하는 풍습이었으며

양동마을은 외손들이 잘된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서백당은 경주손씨 대종택으로 양민공 손소가 풍덕류씨 류복하의 사위가 되어

양동으로 이주한 1459년(세조5) 지었고 손소의 첫째 손백돈이 우계이씨와 결혼

아들 손위를 낳았는데 손위가 후사를 이으지 못해 손소의 둘째 손중돈이

집안을 이어 왔다. 1514년(중종9)에 손중돈(1463~1529)이 양동에 관가정을 짓고

손소의 신위와 영정을 사당에 모시면서 서백당은 넷째아들인 손계동의 사제로

대종가의 기능을 잃었으나 1924년다시 서백당에 사당을 지어 손소의 신위를

옮겨 모시면서 현재까지 대종가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서백당은 삼현출생지지(三賢出生之地)로 알려져 있고 양동마을의 명혈자리로

성현이 3명 출생한다는 설, 우재 손중돈(1463출생)과 회재 이언적(1491출생)이

이곳에서 출생하여 명혈중 명혈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세상사 한마디

사랑이란 한개를 주고 한개를 바라는것도 아니고

둘을 주고 하나를 바라는것도 아니며

아홉을 주고 못다준 하나를 아쉬워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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