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포루투칼 리스본 관광을

오토산 2015. 12. 13. 21:08

 

사진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8800

 

 

포루투칼 리스본 관광을

 

 

8일차(26) 세비야관광을 마치고 포루투칼여행을 떠났으며 리스본으로 가는

길가에는 넓은 들판을 지나가며 들판에서 풀을 뜯는 소와 말,염소들도 볼수

있었고 방목하는 돼지들도 볼수 있었고  와인병 마개를 생산하는

콜크나무들도 많이 있었다.

 

포루투칼은 1인당GDP는 우리나라보다 낮지만 삶의질이 높은나라중 한나라로

유로연합과 유로존,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자연환경과 역사를

바탕으로한 관광산업으로 발전을 하고 있는 나라이다.

 

리스본을 들어가는 입구에는두팔 벌려 테주강을 바라보는 크루스투 헤어라는

거대한 예수상이 있고 강에 놓인다리는  살리자르다리라 불리다가 1974.4.25.

살라자르독재를 무혈혁명으로 몰아낸 기념으로 4월25일다리로 불리어진다

리스본은 3세기 로마, 8세기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오다 12세기 해방되어

수도로 지중해와 북해를 연결 항구로 전성기를 누려오다가 1755년 지진과

화재,쓰나미로 도시 2/3가 파괴되면서 전성기가 끝이 났으나 폼발 후작의

도시재건 계획으로 오늘날의 도시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폼발광장인근서 점심을 먹었으며 식당앞의 도로중앙에 주차장이 위치하였고

주차요금게산대가 인도에 서 있었고 조금을 내려오니 차도에 자동주유기가

설치되어 있는것을 볼수있었고 광장에는 기념탑분수가 설치되어 있었고

잔디광장에는 조경수가 아름답게 가구어져 있었으며 끝부분네는 폼발후작

동상이 있었다.

 

강변 벨렝지구에서는 마누엘1세에 의해 1515년 테주강변에 외국인의 선박을

감사하고 통관절차를 밟았던 벨렝탑이 있었고 이곳은 대항해시대에는 왕이

선원들을 알현하기도 하고 지배시에는 정치범이나 독립운동가를 지하에

가두는 물감옥으로 활용되었다고 하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항해왕자였던 엔리케왕자가 세상을 떠난지 500년 1960년 52m로 세워진탑인

발견의 탑도 있었으며 1498년 바스코다가마가 인도항개척 비단과 향신료가

푸루투칼에 들어온것을 기념하여 마누엘1세가 1502~167지어진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대지진시에 피해가 없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하며 수도원 안에는 

항해사 바스코다 가마 석묘와 시인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 석묘가 있었다.

 

리스본의 여행을 마치고 유럽의 최서단인 까보다로까로 이동하였다.

 

세상사 한마디 

콜크는 포루투칼 콜크(굴피)나무에서 전세계의 60%를 생산하며

물병의 뚜껑으로 사용하던 신부님이 최초로 개발하였다 하고

콜크마개로 탄닌성분이 산화가 이루어지며 숙성이 된다고 하며

수령이 3백년으로 껍질을 벗기면 7~8년만에 회복이 되고

콜크로 지갑,우산등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크라스투 헤어

 

 

 

주차요금 게산기와 주유기

 

1인승 자동차가 장난감 같아요

 

폼발광장의 기념비

 

 

 

 

폼발광장과 광장에서 만난 승마경찰

 

폼발후작 동상

4월25일 다리와 크라스투 헤어

 

 

 

벨렝탑

 

 

발견의 탑

 

투어버스

 

 

 

 

 

 

 

인도항을 개척하여  비단과 향신료를 보급한 항해사 바스코다 다마 석관과

역사와 신화를 엮은 대서사시(포루투칼 국민의 성경)를 쓴 시인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 석관

 

리스본가는길과 휴게소에서 마난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