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인량마을에서 재령이씨 종택을찾아서

오토산 2016. 10. 1. 04:58

사진이 잘 보이지 ㅇ낳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9841

 

인량마을에서 재령이씨 종택 찾아서

 

 

인량마을에는 영양남씨, 대흥백씨, 재령이씨, 무안박씨, 안동권씨가 세거해왔으며

재령이씨는 황해도 재령을 본관으로,

 시조는 고려충신 이우정(문하시중, 재령공)이 경주이씨에서 사성 받았다고 한다.

 

충효당은 재령이씨 입향조 이애선생이 마을에 들어와 영해신씨가 살던터 짓고

  손자인 이함 1604년(선조37)에  현위치로 옮겨짓고 충효당이라 명명하고

또 자손의 교육을 위해 만여권의 책을 모으고

 종이를 마련하기 위해 수십마지의 밭에 닥나무를 심었다고 하며

현판은 명나라 주원장글씨를 집자하여 제자한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에는 사랑채가 있고 오른쪽에는 안채가 자리하며 현재 보수중이었고

사랑채뒷쪽에 운학 이함선생의 사당이 있었으며

 종손님이 유래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우계종택운학의 차남 우계 이시형선생이 지은 살림집으로

이애선생이 초창한 고택을 철거하여 1606년 새로 지었다고 하고

전면에는 우계정이 있었으며

갈암종택은 숙종때 문신이자 퇴계학통을 이어 영남학파의 거두

갈암 이현일선생종택으로 1910년 진보면 광덕리에 건축했던것을

임하댐 건설로 인해 1992년 이곳으로 이전하였으며

원래 건물은 갈암의 8세손 이수악 9세손 이회발 항일운동의 거점으로

활용하였던 것으로 역사성이 있는 종택이다.

 

유명한 석학과 인물이 많 배출하여 전통이 있는 양반마을로 소문난

인량리에서 전통가옥과 넓게 펼쳐진 들판에서 풍성함을 느끼면서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충효당 종손님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는 원구마을을 찾았다.

 

세상사 한마디

'근'이라는 무게단위는 기원전 230년경 중국 진나라에서 쓰기 시작하였고

황종음을 내는 피리(黃種官)에 기장을 넣으면 1,200개가 들어갔는데

이를 12수로, 두개를 합친무게(24수)를 1냥(兩), 16량을 1근으로 약속했다.

 

가격높은 고기.한약재는 '근'단위로,  가격낮은채소는 '관(백냥)'단위로 거래

1관은 100/16=6.25근을 계산 편하게 10근으로, 1근이 10냥으로 변해왔고

고기한근 16냥, 채소한근 10냥으로 쓰다가 1905년 도량형법이 시행되어

금붙이를 1돈 3.75g, 1냥을 37.5g으로 되고, 고기는 1근 16냥(600g)이 되었고

채소 1근 10냥(375g)이 지역별로 375, 400, 300g, 과일 1근 400g등 다양하다.

 

 

 

 

 

 

 

 

 

 

 

 

 

 

 

 

 충효당에서 보이는 영해평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