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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시마을 목은기념관을 찾아
괴시마을은 원래 호지촌(濠池村)인데 이곳에서 출생한 목은선생이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 고향이 중국 槐市와 비슷하다 하여 괴시로 부르면서
괴시마을이 되었다.
1260년(고려 고종46)경 창함김씨가 터전을 잡은후 수안김씨, 영해신씨를 거쳐
1360년(인조8) 영양남씨가 정착하면서 영양남씨 집성촌이 되었으며
마을은 서쪽으로 영해평야가 펼쳐졌고 뒷편으로 낙동정맥이 병풍처럼 솟아있고
주봉인 望日峰 아래 八자 형국으로 자리잡고 100여호 300명이 살고 있고
이중 30여호가 조선시대 양반가옥을 유지하고 있다.
고려말 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키신 3은(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중 한분
정치가, 대학자이며 대문호이었던 목은 이색(1328~1397)은 가정 이곡 선생과
함창김씨로 부터 무가정에서 태어나 20세에 아버지따라 원나라로 유학하고
26세급제, 40세성균관 대사성, 64세 백상공신삼중대광 한산부원군, 영예문춘추관사,
65세 고려가 망하자 69세때 여강(여주) 청심루아래 연자탄에서 세상을 떠났다.
목은기념관을 돌아보니 옆에 생가터(무가당지, 달팽이 지형의 중심) 표지석이 있고
그 뒷편에는 파손된 稼亭 牧隱 兩先生遺墟碑가 보관되고 있었으며
기념관에서 내려오면서 보이는 평해들의 황금들판은 풍성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입구에서 파다듬는 할머니를 보고 해설사님이 한국 남자분들은 불쌍하단다
"시집동네 할머니들은 시금치농장에 가면 하루 4만원씩을 벌고 재미도 있는데
할배들은 그 돈 얻어서 경노당에서 막걸리만 마신다" 하여 한바탕 웃고
우리는 괴시마을의 답사를마치고 평해의 분희네집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세상사 한마디
길이를 잴때 손가락, 발, 팔의 길이등 신체의 일부를 기준으로 삼았으나
피트(1feet=30.48㎝)는 발길이, 인치(1inch=2.54㎝)는 엄지손가락폭으로,
프랑스혁명이후 북극점에서 적도까지 거리의 천만분의 1을 1미터로 정해
측량사들이 자오선을 걸은 길이를 백금과 이리듐 합금으로 '미터원기' 제작
1960년 크림톤원자에서 나오는 주황색빛파장을 측정 '1m'를 새로 정하고
1983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빛이 진공중에 진행되는 거리'기준으로 정의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파다듬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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