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고향

2016 대전효문화뿌리축재 퍼레이드 모습(얼의신)

오토산 2016. 10. 11. 21:45

2016 대전효문화 뿌리축제 퍼레이드 모습

 

대한민국 유일무이한 각 성씨 문중들의 고귀한 가문의 특징을 담은 

2016년 제8회 대전효문화뿌리축제 문중 입장 퍼레이드가 대전 뿌리공원에서 었다. 

  전국 문중 퍼레이에는 축제 대표 깃발, 축제 캐릭터, 문중대표기, 문중 대표, 

제32보병사단 군악대,  대전시 효지도사협회, 평양백두한라예술단,

중국 용정시 예술단 등  162개 문중이 퍼레이드 참여했다. 

 문중의 다양한 숭모현창의 퍼레이드 모습을 여기에 소개한다.  

  

대전 뿌리공원에서 열린 2016년 대전효문화축제 에드벌륜(9월 23일)


축제 대표 깃발 



 문중 대표기

 


 문중 대표단 20명 



퍼레이드 상징 지희부 
 


 참여한 제32보병사단 군악대


문중입장 순서 

 대전 뿌리공원에는 224개의 성씨비가 조성되어있는데 그중 162개 문중이 퍼레이드 참여했다. 

 

1. 충주 박씨 관조는 고려시대 부정을 지낸 박영으로, 조선시대에 20명의 문과 급제자와 1명

상신, 대제학 그리고 3명의 청백리를 배출하였고, 대표 인물은 청백리에 오른 박효함,

박우, 박상과 대제학과 영의정을 역임한 박순, 임란의병장 박이용, 박동형,

박래원이 있으며, 박병배 외 5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2. 광주 정씨 시조 정신호는 고려 충선왕과 충숙왕에 걸쳐 상호군과 봉은사진전직을 지내고 삼중대 광문하찬성사에 추봉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광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습니다. 고려 말에는 정세운이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고, 조선 최고의 화가로 일컬어지는 겸재 정선이 입향조의 5세손이며, 3.1운동 때 민족 대표 가운데 한 사람인 정춘수도 그 후손입니다. 


3. 강릉 유씨 시조는 한고조 유방이며, 유방의 41세손인 유전은 송나라 사람으로 한림학사와 병부상서를 지냈고, 고려 문종 때인 1082년 고려에 들어와 정착하였습니다.

유전의 12세손 유창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옥천부원군을 지냈으며,

근세 인물로는 고려원종때 대장군을 지낸 유존혁, 한말 선각자 유대치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8명, 무과 급제자 21명을 배출하였으며,

현대인물로는 국무총리를 지낸 유창순, 국방장관을 지낸 유재홍 등 학자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유승민, 탁구감독 유남규, 방송인 유동근, 유재석 등

국내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이 있는 문중입니다.

4. 금산 김씨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인 김신 장군으로 원나라에 들어가 요양성참정이

되어 고려를 위해 많은 공을 세웠고, 김신의 맏아들 김세유는 부원수까지 지냈습니다.

이조참의와 예조정랑을 역임한 12세손 김감 장군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곡성에서

 의병장이 되어 아들과 함께 우국충정의 눈부신 활약으로 백성들을 지켜낸 문중입니다.

총무과 최상훈 6 고부 이씨 고부 이씨의 시조 이경조는 고려 문종 때 최충이 설립한

 사학의 효시인 구재학당 출신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경조의 손자인 양빈이

서북병마사로서 예종 때 윤관과 함께 여진족을 토벌했으며, 그의 동생 양승은

고려 명종때 상장군으로서 연주에 침입한 거란병을 격파하고 위주성에서

순절한 충신이 있는 문중입니다. 

 

6. 고부 이씨 시조 이경조는 고려 문종 때 최충이 설립한 사학의 효시인 구재학당 출신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경조의 손자인 양빈이 서북병마사로서 예종 때 윤관과

함께 여진족을 토벌했으며, 그의 동생 양승은 고려 명종때 상장군으로서 연주에

 침입한 거란병을 격파하고 위주성에서 순절한 충신이 있는 문중입니다. 

10. 임씨 도시조중국 당나라 때 신라로 귀화한 한림학사 임팔급 어르신입니다.

임씨는 비록 관향은 다르게 사용하고 있으나 동근혈족으로 화합하며

의리와 청렴을 종훈 삼아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 되었습니다.

고려 때 침략한 여진족을 몰아내고 왕실을 지킨 임연 장군,

제주 안무사로 왜구를 몰아낸 임난수 장군, 「

국순전」등 가전문학의 선구적인 작품을 남긴 임춘 선생,

병자호란 때 큰 공을 세운 임경업 장군,

조선중기 700여수 한시를 남긴 명 문장가인 임제 선생,

구한말 임병찬 의병장 등이 임씨 문중을 빛내신 분들입니다.

 현대에는 임병직 외무부 장관, 임방현 청와대 대변인, IMF외환위기 극복의 주역인

 임창열 경제부총리, 햇볕정책 임동원 통일부장관, 임대홍 미원그룹 회장,

세계적인 거장 임권택 영화감독 등 각계각층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문중입니다. 

11. 여산 송씨 시조 송유익은 약 900여 년전 고려 16대 예종 때 태어나신 분으로 고려에서

 진사벼슬을 하셨고, 그의 증손자 정렬공 송송례는 고려의 무신정권 말기에

 권신 임유무를 제거하는데 큰 공을 세워 벼슬이 문하시중에 이르렀으며,

송문을 크게 번창시켰습니다.

송씨는 16본으로 전국에 약 65만 명 정도이며, 많은 현신과 석학을 배출하였는데,

거의가 여산, 은진에서 나왔으며, 그중 여산 송씨는 약 40%인 26만 여명으로

그 수가 가장 많고 소수의 송씨들은 여산에서 분파하였다고 합니다. 


12. 영산 김씨 시조는 1세 김알지입니다. 고려말 김영이는 전객 시령으로 벼슬을 싫어하고,

고려가 망함에 따라 영동에 3명의 사위를 데리고 내려와 후세 교육 에 전념 하였습니다. 중시조는 45대 신무왕 4자 익광이 신라 백제 싸움에서 금강변 영동에서 전사하여,

영산김씨 중시조로 영동 양강에서 묘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 인물로는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으로 김용헌씨가 있는 문중입니다. 

13 . 가평 이씨 시조는 태종때 무,갑과에 올라 동지중추원사겸 부총관을 역임하고,

순충적덕 보조공신 병조판서 가평군으로 봉해져 본관이 되었으며,

이후 중시조로 모시고 있는 신라 완산 호장 이인보입니다.

과거 청주대첩을 이끈 의병장으로 이조판서를 증하고 보은 후을사에 모시고 있는 명백과 현재 식약청장을 역임한 이희성 차장 등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14.  진주 강씨 시조는 고구려 강이식 병마원수이며 고려시대 현종조 문하시중동평장사

강감찬 장군과 강창희 전 국회의장, 강영훈 전 국무총리, 강경식 전 부총리, 강길부,

강창일, 강기정, 강석호 국회의원등이 있으며, 넥센 타이어 강병중 회장,

린나이 코리아 강성모 회장, 호서대학교 강일구 총장,

국립발레단 강수진 예술 감독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17. 전씨백제의 개국공신이었던 환성군 전섭을 도시조로하고,

그의 8세손으로 통일신라 성덕왕때 전법판서를 지내고,

 정선군에 봉해진 전선을 득관조로 하는 정선 전씨에서 분파되어 나간 것으로 보며,

정선을 대종으로 하고, 그 밖에 천안, 용궁, 경주 등 17본이 갈라져 나간 것으로 보며,

성씨 인구 중 2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고려 시대에 벼슬을 하였습니다.

 천안 전씨 유명인사는 구한말 동학 농민운동의 지도자인 녹두장군 전봉준,

완산 전씨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한국노동운동의 전환기를 가져온 전태일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20 .무송 유씨고려 시대 정1품인 태사 충절공 유금필을 시조로 합니다.

유금필은 고려 때 태조를 도와 삼한 통일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통합삼한익찬공신에

봉해지고 태사에 오른 인물입니다.

 4세 유장신은 평산 유씨의 중시조가 되었고,

5세 유녹숭은 무송 유씨의 중시조가 되었습니다.

유녹숭은 무송 유씨의 중시조이자 고창 입향조이다.

유녹숭은 추밀원사 겸 태자빈객, 상서좌복야를 역임하고,

무송부원군에 봉해지자 평산에서 분적하여 무송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습니다. 


21. 나주 정씨 시조는 고려검교대장군을 지낸 정윤종이며,

조선 명종때 정응두는 좌찬성이었고, 시호는 충정입니다.

숙종때 우담 정시한은 유명한 성리학자로 우담집을 남겼고,

영정조때 해좌 정범조는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일대 문장가로 해좌집을 남겼습니다.

정조때 다산 정약용은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유명한 실학자로 500여권에 달하는

문집 여유당전서를 저술한 인물 등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22. 사천 목씨 시조는 고려조에 무관을 지내신 낭장동정공 이시고,

2세 합문지후공은 고려 원종 10년에서 북방면 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하다

순국하시어 수정 일등으로 영주군에 봉해지신 분이며,

3세 직제학공은 비서성판사, 보문각직제학을 지내신 분입니다.

목문은 고려조부터 가문이 융성하여 중앙관계에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조선조에서도 많은 정치가와 인재를 배출하였습니다.

시조부터 6세까지의 묘소는 북한에 모셔져 있기 때문에,

현재 7세조가 모셔져 있는 서울 도봉구 방학동 선영내에 단비를 모시고 있습니다. 

 

4. 봉화 금씨는 경상북도 봉화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서 봉화 금씨가

봉화에 세거한 시기는 10세 금우공대 이후 부터로 알려지고 있으며,

1세조 휘(諱) 의(儀)께서는 고려 명종에서 고종까지 오대조를 역사하신 명신으로,

고종 칠년에 태보의 지위에 추록되었으며, 나라에서 시호를 영렬이라고 내리셨습니다.

특히, 1세조이신 휘 의께서는 시문에 능했으며, 성품이 강직하고 흔들림이 없어

백성들로부터 철상공이라 불리셨으며,

「한림별곡」에 나오는 금학사가 바로 이분 이십니다.

조선조에서 맨 처음 벼슬길에 오른 금유는 태조조에 대사성에 올랐으며,

노태우 대통령 시절 금진호 상공부 장관, 임진왜란 당시 봉화에서 공을 세운 휘 난수,

회인에서 의거해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신 휘 응신,

일제에 항쟁한 독립유공자도 많이 배출한 문중 입니다. 


25. 용인 이씨휘 길권을 시조로 하여, 고려조와 조선조를 거치면서 영의정 문간공 이의현, 영의정 인릉군 이재협 등 문과 86인, 무과 170여인, 생원진사과 197인이 급제하여

정승 3인과 판서 17인 등 고관대작을 배출한 명가로 신사임당의 어머니도 용인 이씨로

삼강 행실 통달 인격과 덕행으로 신사임당을 훌륭히 키워 현재까지 현모양처의 표본이

되고 있으며, 이진삼 전 국회의원, 이한빈 부총리 등 각계분야에서 고관들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26. 경주 이씨 시조는 초기신라 양산촌의 촌장인 이알평이며 조선조에 상신 8명, 대제학 11명, 공신 11명의 명문거족으로 이항복, 이완, 이상설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근대 인물로는 초대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재계의 거목이었던 삼성 이병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는 문중입니다. 


27. 청주 송씨 시조는 송유충으로, 고려 충숙왕 때 공을 세워 청원군에 봉해졌고,

손자 송훤은 조선 개국에 공헌하여 개국삼등공신 서원군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청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28. 온양 방씨669년 신라문무왕 9년에 당나라 한림학사인 방지께서 문화 사절로 동래하여 방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방지의 6대손인 방운을 중시조로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많은 분들이 벼슬을 하였고, 특히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 선생과

덕수 이씨인 이순신장군은 현충사를 기증한 방진 부사의 사위이며,

현재 인물로는 방상훈 조선일보사장과 방열 대한농구협회 회장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31. 함양 여씨 시조 여어매는 당나라 한림학사로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신라로 동래하였고, 이후 성주군 벽진면에 정착하고 고려시대 전서를 지냈습니다.

여어매는 여임청과 여광유 형제가 있는데, 이들의 후손들이 함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으며,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33명, 무과 급제자 27명을 배출하였고,

대표적 인물로는 예조 참판, 공조 참판,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조선 중기의 문신

여이징과 숙종 때 우의정, 영의정을 역임한 여성제, 독립운동가 여운형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32. 고성 남씨경상남도 고성을 본관으로 한 명문가로 남민의 7대 손 남진용의 3째아들인

남광보 선생이 고성에서 관적하여 시조가 되었습니다.

주요 인물로는 조선시대 병조판서를 지낸 남금, 직제학을 지내고 고려사절요를

초고한 남수문, 임진왜란 때 통정대부를 지낸 남수일 선생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33. 풍양 조씨고려초 개국공신 조맹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로,

 대표적인 인물로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로 효종 때 좌의정에 올랐던 조익이 있습니다. 풍양 조씨는 고려시대부터 명문가로 자리 잡았으며,

조선시대 때는 대표적인 양반가로 자리매김하여 급제자 181인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34. 대구 빈씨 시조는 송나라 때 한림학사였던 빈우광으로 몽고가 송나라를 점령하자

1만7천여권의 책을 배에 싣고 고려에 귀화하여 고려 유학을 크게 발전시키셨고,

충렬왕은 그 공을 인정하여 수성군에 봉하였습니다.

이에 후손들은 시조로 삼아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35. 해평 길씨는 해평백 길 당의 후손에서 1백여년간 계대가 실전되어 고려 때의 성균진사인 길시우를 1세조로 받들어 세계를 이어왔습니다.

낙동강변에 터를 잡은 해평 길씨는 해동의 절신 야은 길재는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등과 더불어 고려말 ‘삼은’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3·1운동의 주역인 길선주는 안창호 등과 함께 독립협회 평양지부를 조직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일생을 바침으로서 충절의 가문 해평 길씨를 더욱 빛냈습니다. 


36 단양 우씨 시조는 우현이며, 역동 우탁 선생은 고려 충렬왕때 향공진사가 되었으며,

사기, 역학에 통달했습니다. 현재 우윤근, 우원식, 우상호 국회의원과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 우호태 전 화성시장, 우건석 전 서울대 교수,

우기혁 수도약품 사장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37 청주 한씨후조선인 기자조선에서 기원하여 마한 왕국을 이은 성씨 문중입니다.

시조이신 휘 란께서는 고려건국, 평양성 축조, 후백제 견훤 정벌 등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문화태위에 올랐고, 위양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대표 인물은 조선국호를 정하는데 기여한 한상질, 세조조의 한명회,

명필가 한석봉 등이 있으며 근현대에는 한규설 참정대신, 독립운동가 한용운 선사,

한글학자 한징 선생, 3연속 국무총리를 배출한 문중입니다. 


38. 여흥 민씨의시조는 민칭도이며, 고려 중엽초에 중국에서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였으며, 관직은 고려 상의봉어입니다. 민씨의 본관은 경기도 여주의 옛 지명인 여흥이며원경왕후, 인현왕후, 명성황후 등 조선시대 여러 왕비가 민씨의 후손이며, 고려말, 조선시대에 많은 개국공신과 청백리 등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39. 행주 은씨 시조는 은홍열 공으로 시호가 정양공이시며, 신라 문성왕 때 당나라에서

동래한 8학사 중 한분으로 정1품인 태자태사를 지내셨으며, 2세손 은 영은 고려조에

현재 총리급인 상대등을 역임하셨고, 8세손 은정은 고려 문종 때 학문이 뛰어나

사학 12도의 하나인 문충공도를 세워 후진 양성에 크게 이바지 하였고,

16세손 은신윤은 성균관 대제학을 지냈으며, 은수미 국회의원,

은택 의정부 지원 부장판사, 은인영 전 국방대학원 교수, 은종혁 대우그룹 사장,

은희경 문예작가, 가수 은지원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40. 상곡 마씨는 정유재란때 명나라 원군의 제독 마귀 장군의 후손이며,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마귀 장군은 명나라 구원병의 제독으로 왜적을 무찔러

국가 위기 회복 큰 공을 세우신 분입니다. 정유재란 이후 나라에 충성하며

뿌리를 내린 상곡 마씨는 경상남도 함천군 봉산면 송림리에 마귀 장군의 묘단소를

설치하고, 선조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영정을 종가에 봉안하고, 숭모제를 올리며

세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41. 남양 홍씨경기도의 옛 지명 남양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당홍의 시조 홍천하는 고구려 영류왕 때 중국 당나라에서 문화사절인 팔학사의 일원으로 건너와 유학을

가르치는 등 문화 활동을 펼치다가 연개소문의 난으로 인해 신라로 피신하였습니다.

 선덕여왕 재위시 유학 발전에 공을 세워 당성백에 봉해졌고, 신무왕 때는 태자태사로

추대되었으며, 이후 당성이 남양으로 개칭되어 후손들이 남양을 본관으로 삼고,

홍은열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42.  전 세계 오씨의 창시조는 중국 춘추시대 이전의 오나라 태백왕이며,

신라 지증왕 원년 서기 500년에 한반도에 처음오신 도시조 무혜공 오첨이계십니다.

고려태조 왕건의 정비인 장화왕후, 압록강 유역의 6진을 개척한 문양공 오연총장군과

거란의 침입을 격퇴한 오현보, 오현좌, 오현필이 계시고,

조선 개국 공신의 한 사람인 오몽을 대장군, 영의정을 지낸 묵재공 오백령과

추탄공 오윤겸도 명재산으로 이름을 날렸고, 병자호란때 3학사 중 한분인 오달제가

있으며, 근현대에 이르러 애국지사 33인 중 오화영, 오세창과

건국초기 반공검사인 오제도, 오명 전 부총리, 오연천 전 서울대총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47. 광산 탁씨고려 선종조 때 한림학사와 태사의 벼슬에 오르신 광산군지엽을 시조로

모신 광산 탁씨는 충해왕조 때 예의판서와 간의 대부를 지내신 8세 광무조와

조선조 세종조대에 대광보국숭록대 부 의정부좌참찬겸 찬성사로 계시던 9세 신 조대에

이르러 가문의 광휘는 절정에 달했으며, 두 어른께서는 학문적으로 높이 추앙받아

안동군 길안면 세덕사에 제향되셨습니다.

병란평정에 공이 크셨던 15세 순창조께서는 가선대부 훈련대장으로 추서되셨고,

17세 상조께서는 임란조께서는 전사하신 부친의 시신을 수습코자 진중에서 적과 싸우다가 순절하여 효자로 명정되셨습니다.

19세 연조께서는 이순신 장군을 보좌해 아우 석원조와 함께 의병을 모아 왜적과

수차례 싸워 공을 세우고 당항포 해전에서 순절하셨습니다. 


48. 면천 복씨중국 성씨로 우리나라 복씨는 신라 때 당나라 한림학사가 오계의 난을 피해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 당진의 옛 이름인 면천에 정착하여 서해안 해적들을 소탕하고

복씨가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면천 복씨의 시조 복지겸은 태봉국의 마군장수로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를 세웠습니다. 이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면천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49. 거창 신씨의 시조는 신수이며, 공은 고려조에서 정일품 수사도의 관직을 지내고,

거창신씨 씨족의 기원을 고려 기족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조선조에서는 승선이 영의정을 지냈고, 수근이 좌의정을 지냈고,

중종비 단경왕후를 배출한 문중입니다. 


50 . 충주 석씨충청북도 충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시조 석린은 고려 의종, 명종 때에 무인입니다.

고려 의종 때의 경인난에 이의방에 의해 서경낭장으로 발탁되었고, 고려 명종 6년 상장군, 동서 북면병마사에 오른 뒤 예성군에 봉해졌습니다.

충주 석씨는 문과 급제가 4명, 무과 급제자 20명을 배출했고, 충주 석씨와

 홍주 석씨는 8세조인 석수명과 석여명을 파조로 하여 분파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는 문중입니다.


51. 상산은 지금의 경북 상주를 말하는데 상산 김씨 시조는 고려 보윤과 시중을 지낸 김수이며,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여러 대에 걸쳐 상산에 살았다고 합니다.

상산 김씨는 경주 김씨에서 직계 분적된 본관으로, 이후 상주, 사벌, 영혜, 보은, 흠양,

신주 김씨로 다시 직계 분적 되었습니다.

파명을 살펴보면 보윤을 지낸 김수의 후손과 보문각제학을 지낸

김조의 후손으로 나누어집니다.

현재도 시제가 매년 5월 5일 대종회를 중심으로 후손 2,000여명이 참석하여

상산 김씨 시조 단소인 봉의재에서 성대하게 개최되고 있는 문중입니다

54. 수원 백씨 시조는 백우경이며, 신라 경덕왕 때 중랑장을 지내고

상장군에 증직된 백창직의 증손 백휘가 고려 목종 때 대사마 대장군으로 수원군에

봉해졌고, 그의 9세손 백천장이 원나라에서 금자광록대부 이부상서를 거쳐 우승상을

지내고 귀국하여, 충선왕 때 수성백에 봉해졌습니다. 이에 후손들이

백창직을 중시조로 하고 본관을 수원으로 정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55 .연안 김씨 시조는 고려 명종 때, 국자감 사문박사를 지낸 김섬한으로,

시조의 제5대손 김도가 고려 밀직제학, 그의 아들 김자지·여지·하가 조선시대에

판서를 지냈고, 김자지의 후손에서 영의정 김전·근사, 대제학 김감, 영의정 김안로,

선조의 국구 김제남, 부자 영의정 김익·재찬, 우의정 김유연,

정란공신 판서 김효성 등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58, 대구 서씨 시조는 고려 조봉대부 군기소윤을 지낸 서한으로,

후손들은 사가공파, 봉사공파, 서홍파, 만사공파, 전첨공파, 첨추공파, 도위공파 7개 파로 나뉘고,

대표적 인물은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는 6대 왕조에서 6조의 판서와 대제학 등을 역임하고,

학자로 유명한 서거정과

선조 때 5도의 관찰사와 호조·형조·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서성이 있으며,

조선조에 후손이 크게 번창하여 정승 9명, 대제학 6명, 왕비 1명, 판서 33명, 3대 정승,

3대 대제학, 3대 대학자를 배출하였고, 한말의 개화파인 서광범과 서재필 등을 배출하였으며, 현재 인물로 서청원 국회의원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59.  전주 최씨 시조는 문충공 최군옥으로 고려 선종 때 문하시랑 평장사를 지내신 분이며,

전주 최씨는 고려와 조선을 걸쳐 많은 문과급제자들을 배출했는데

최칠석 정남대장군과 만육당 최양 등이 대표적 인물입니다.

특히, 최양은 정몽주의 생질로 우왕 때 이부상서와 대제학을 역임하였고,

불사이군의 충절과 절개를 지켜 ‘최고집’이라는 별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근현대인물로는 최광수 전 외무부장관, 최주호 우성산업회장,

최일운 철학박사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60. 하남 정씨 시조 정사조의 조상은 먼옛날 중국황제 헌원씨로 황제의 후손 백부가 원조이며, 백부의 45세손 원담이 신안 정씨의 중시조이며,

원담의 31세손인 정우가 하남정씨로 분관하였습니다.

정우의 18세손인 정사조는 원나라 노국공주(공민왕비)가 우리나라에 입국할 때,

공한림 등 20여명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려 충정왕 때, 전중시어사를 지내고

공민왕 원년에 추성보리 공신 벽상삼한 삼중대광으로 한산군에 봉해졌으며

식읍을 하사받았습니다.

이에 후손들은 정사조를 동래시조로 하고 중국 하남정씨의 계통을 그대로 계승 하고

있는 문중입니다. 


64. 신창 표씨고려초 후주에서 귀화한 이부상서공 표대박을 시조로 하고 있으나

문적이 없어, 고려말 좌리공신 창백에 봉해진 표인려를 1세조로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연산군때 대간으로 알려진 양관제학 남계 표연말과 아들 직제학 표빙, 청백리 울산부사 표빈 등이 있고, 어전 통사 표헌과

그의 아들 표정로는 명역관으로 알려져 있는 문중입니다. 

 

65. 담양 전씨시조는 고려시대 벼슬이 좌복야 참지정사를 지낸 충원공 전득시이며,

후손 7세에 이르러 야은 전녹생, 뇌은 전귀생 경은 전조생들 3형제가 태어났으며,

이들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처 많은 문과와 무과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성씨로

대한민국 박사 1호로 응용화학계 원로인 전풍진 공학박사, 전병곤 전남교육감,

전병헌 등 4인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였고,

 올해 한․미․일 메이저 3개 대회를 석권한 신흥 골프 여제 전인지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67. 신안 주씨고대 중국의 신안을 본관으로 하고,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자를 시조로 하는

주자자손이며, 한국의 신안주씨는 주자의 증손자 청계공 주잠이 1224년 고려에 망명하여 조선조 500년간의 사회 문화 발전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아들 여경은 고려 좌승상을 지냈으며, 손자 열은 문절공의 시호를 받은 명재상이며,

11세손 안천군 주인은 이태조의 개국을 도와 한양에 도읍을 주장하여

오늘의 서울이 되었습니다. 31세손인

주원 전 건설부장관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만들었고,

오랫동안 종친회의 회장으로 계시다가 현재는 명예 회장으로 계시는 문중입니다.


68.. 성주 도씨는 경북 성주를 관향으로 고려 명종때 전리상서를 역임한 도순을 기세조로 하고 7대손인 도웅은 고려말 충신으로 불사이군 절의로 두문동칠십이현 중 한 분으로 유명합니다. 성주 도씨는 충·효·열의 가문으로 경북 예천의 도시복 효자마을이 상강행실도

열여편에 수록 되었으며 임난 공신 진위장군 도진민, 도우민이 있는 문중입니다.

69. 창녕 조씨신라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이 조(曺)자와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는 아들을

낳았고, 동해신룡의 아들 옥결이 이 아이의 아비니 잘 키우라는 꿈을 꾼 것으로

유래가 시작되었고, 이후 진평왕은 창성부원군인 사위에게 조계룡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고려시대 좌정승 조익청, 문하시중 조민수, 조선시대 부제학 조상치,

공조판서 조비형, 세종 때 영의정 조석문, 예조참판 조효문, 대사헌의 조숙기,

해방 후 민족운동가 조만식, 국회의원 조해진, 소프라노 조수미, 가수 조성모,

바둑계의 거성 조훈현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70. 파주 염씨중국 교목 세가의 후손 형명이 신라에 들어와 봉성에 자리 잡은 뒤

대사도를 지내면서 뿌리를 내린 것이 시초가 되었으며,

고려 말 제신이 곡성부원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은 제신을 1세조로 하고 본관을

처음에는 봉성으로 하였다가,

조선 연산군때 파주로 개칭됨에 따라 파주 염씨로 개관 되었고,

현재는 염동열 국회의원, 염태영 수원시장, 염홍철 전 대전시장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71. 연안 차씨 시조는 차효전, 본관은 연안입니다. 국내에는 17여만 명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신라, 고려조에 많은 문무장상이 대를 이어 배출되었고,

조선 세조 13년 이시애 난을 평정할 때, 공을 세운 차운혁, 임진왜란때 평양수복의 전승을 알리는 로포문을 지어 명나라를 놀라게 한 동방의 문장가 차천로,

일제 강점기에 항일청년단 포우단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한 차도선,

대동공보 창간 언론을 통해 독립정신을 앙양하고 애국지사 독립투쟁을 후원한 차석보,

 신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약한 차이석 등이 있으며,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정부 건국 훈장을 받아 문중을 빛내셨습니다.


75. 한산 이씨 시조이신 호장공계의 이윤경 호장의 자손들이 정착하어 8백년 동안 쌓아놓은

고고한 삶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한산이씨의 터전입니다.

한산 이씨가 명문거족으로 등양된 것은 고려 때 원나라 제과 전시 등에

4번이나 급제하신 성리학의 대유종 문효공 가정 이곡 선생과

그의 아들로 문과에 장원급제 하시고 정당문학 대사성 대제학 문하시중에 오르신 문정공 목은 이색 선생이 한산부원군에 봉해진 때에서 연유합니다. 


76. 곡산 연씨황해도 곡산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시조는 연계령입니다.

조선 개국공신 연세종의 10대손인 연최적은 35세의 젊은 나이에 인현황후의 복원을

주창하다 운명을 하게 된 충신과 절개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이후로도 독립운동에 참여한 연병호 등의 애국지사들이 많은 문중입니다.


7. 선산 (일선) 김씨 선산 일선 김씨의 시조는 순충공 선궁이며, 고려 때

『고려개국벽상공신삼중대광 문하시중』으로 선산의 옛 이름인 일선의 백에 봉록되어

선산 일선이 관향되었습니다.

시조 순충공의 첫 이름은 선이었으며, 신라 대보공 김알지공의 30세손이며,

신라 46대 문성왕의 8세손이고, 경순왕의 삼종질인 체의공의 아들로

경북 선산군 해평면 낙산동 부근에서 태어나셨고, 선산(일선)김씨는 18개 분파로 나뉘어 세계를 이어오고 있는 문중입니다.


78. 원주 원씨고구려 보장왕때 동래한 8학사 중 원경을 시조로 중시조를 달리하는 운곡계, 시중공계, 원성백계의 3개 계파가 있으며,

주요 일물로는 고려조 개국공신으로 병부령을 지낸 원극유, 문하시중 원홍필,

충렬왕때 합단의 침입을 격파한 원충갑, 충의와 절의를 지킨 원천석,

조선조에는 생육신 원호, 임진왜란때 여주에서 왜적을 무찌른 경기·강원방어사 원호,

삼도수군통제사 원균, 인조반정공신 원두표 등이 있으며,

현재 인물로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원혜영, 원유철 국회의원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이때 창공에는 펜텁기가 비행하고 있었다. 

  

79. 성주 이씨시조는 신라재상 이순유로 신라 멸망 후 성주로 은거하였고,

고려 충렬왕 34년에 성주 목으로 승격된 지명을 따라 관향을 성주 이씨로 불렀습니다. 

고려때 대제학 이조년, 세종때 영의정 이직, 명장 이여송, 3.1독립선열 이종일 등이 있으며 현재는 법조계, 경제계, 학계 등에 인물등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80. 남평 문씨 시조는 신라 20대 자비왕 때의 사람인 남평백 문다성으로,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동쪽에 장자지라는 큰 바위 위의 석함에서 나왔다고 하는

신화가 있으며, 남평백에 봉해져 남평을 관향으로 하였습니다.

시조의 탄강지인 바위에 문암이라는 비를 세우고 못가에 장연서원을 지어

매년 음력 9월 중정일에 향사하고 있습니다.

문다성의 17세손인 문극겸은 남평 문씨의 중흥지조로 불리며,

제주의 남평 문씨는 시조 문다성의 7세손인 충숙공 문극겸을 정점으로 남제공파와

강성군 충선공하가 인맥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벌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문극겸에게는 벼슬이 대부경에 오른 장자 문후식 충렬공과 참지정사, 판예부사를 지낸

차자 문유필이 있으며, 충렬공 문후식에게는 문탁과 문작 두 아들이 있었는데,

문작이 바로 제주도 입도조로서 남제공파를 형성한 파조가 됩니다.

그리고 충선공 문익점은 툰탄의 6세손이 됩니다.


81. 경주 배씨신라개국 원훈으로 유리왕이 지타공에게 배씨의 성을 하사하셨습니다.

중시조 무열공 배현경은 고려 태조 왕건 옹립에 큰 공을 세워 개국 일등공신에

추대되었고, 배극렴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건국에 크게 기여하였고,

신라, 고려, 조선 3대왕조의 건국 개국원훈의 가문이며 몽고 침략에 끝까지 맞선

배중손 장군을 비롯해 임진왜란에는 80여명의 선무원종공신을 배출하는 등

국가가 외적의 침략으로 위태로울 때 국가와 민족을 수호하는 데 앞장선 문중입니다. 


82, 진원 박씨 시조는 고려시대 대장군 진문으로 그의 현손 첨은 고려시대 시중이 되었고,

조선중기의 문신 박광전이 함열, 회덕 현감을 지냈고,

정유재란 때에는 의병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현재 일물로는 전 통계청장을 역임한 박영수 조세재정연구원장,

 박혜자 국회의원 등의 있는 문중입니다. 


84. 평해 구씨 시조 구대림은 원래 당나라 사람으로 663년 사신으로 일본에 가다가 동해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평해 월송정 근처 도착해 살았으며,

구대림이 살았다는 이곳을 구미진이라 부르며, 고구려 때 벼슬이 좌복야상서에 이르렀고, 고려 공민왕때 민부전서를 지낸 구선혁을 1세조로 하고, 본관을 평해로 하는 문중입니다. 


85. 제주 고씨고.량.부 삼성의 신화와 탐라왕국 시조 고을나왕의 역사가 있는 자랑스런 왕손입니다. 왕세기는 당뇨갑자에 탐라국이 건국되어 제45대 고자견왕까지 왕치시대를

통치하였으며 상고시대부터 유구한 전통의 기반위에 역대왕을 역임했고

역사적 인물로는 임진왜란때 순절한 의병장 충열공 고경명 삼부자공은 일문삼강

충효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제주에는 매년 역대 선왕위를 봉안 종묘 대제향을

봉행하고 있는 문중입니다. 


86. 경주 정씨도시조는 신라 초기 6부 가운데 본피부의 촌장이던 지백호이며,

《정씨상계세보》에 따르면 경주 정씨의 시조 진후는 지백호의 40대 손입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2명을 배출하였는데, 그중 정희계가 잘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때 장렬하게 전사한 정발장군, 세종때 좌찬성이 추증된 정지년,

명종 때 성리학의 대가 정지운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88,  공주 (공산) 이씨 시조는 이천일로 중국에 가셔서 요동을 정벌하고

대사마 장군작위를 받으셨습니다.

공주 이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4명을 배출하였고, 이건, 이극공, 이기조, 이명덕,

이병덕, 이시온, 이언세, 이여, 이여해, 이원규, 이지온, 이지형, 이진상,

이형태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90.  양주 최씨시조는 최억으로 공민왕 2년 양주군에 훈봉되었습니다.

주요 인물로는 대사헌을 지낸 최정안, 김제군수를 지낸 최정연이 있고,

임진왜란때 최홍개, 병조호란때 최정걸 등은 의병장으로 순절하여 충절의 종문을

더욱 빛냈으며, 시조부터 12세까지 봉안된 안산 선영은 안산시 향토 유적으로

지정되어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91. 시산 경씨시조는 경차를 1세조로 받들고, 아들 경설정을 2세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시조 경차는 태산부원군에 봉해지고, 아들 경설정은 보문각 대제학에 이르고,

북변외적을 무찌른 무공으로 태산군 호를 세습하였고, 태인 시산 경씨가 창성되었습니다. 태인 경씨는 고려 이후 조선조 초에 걸쳐 과환충절과 효행문덕으로 이름 높은 거벽들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92. 김녕 김씨 시조 김시흥은 김알지 시조님으로부터 39세 손이시고,

신라 경순와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9세손이며,

세조 2년 공조판서 도전무이신 백촌 김문기 선생님의 후손입니다.

대표인물로는 고려시대 평장사 김향, 병부상서 김정병 및 판도판서 김광저 등과

조선시대 판서 김익생, 김윤달, 김문기, 좌찬성 김인찬, 한성판윤 김종남·김응수와

방어사 김언공 등을 배출하였고,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95. 광산 김씨시조 김흥광은 신라 45대 신무왕의 셋째 아들로,

고려가 통일하자 신라의 비운을 미리 알고 현재의 전남 담양군인 무진주 서일동에

은거하여 광산김씨의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후손들이 세거지인 광산, 광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으며,

고려시대 그의 후손들 중 정2품인 평장사가 8명 배출되자 그곳을 평장동이라 불렀으며,

 문숙공, 양간공, 낭장공, 문정공, 사온서직장공파로 분파되었으며,

조선시대에 265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고, 정승 5명, 청백리 4명, 왕비1명,

대제학 7명 뮨묘에 배향된분 2명, 의병장 김덕령 등과 현대 인물로는 김수한 추기경,

 김황식 전 국무총리, 김하중, 김경한, 김장수 장관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96. 연안 이씨 시조는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 공을 세운 이무 어른신입니다.

연안 이씨는 문과 250명, 정승 반열 상신 8명, 청백리 6명 등 조선시대 많은 인물을

배출한 가문입니다. 대표 인물로는 김구 선생님께서 가장 존경했다던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이동녕, 시조 문학의 대가 이병기, 한문학의 대가 이정구 등이 있고 현대 인물로는 이치호 전 국회의원, 이석희 전 대우주 회장,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이상수 전 서울대 물리학 교수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98. 재령 강씨황해도 신천과 재령 등지를 본관으로 하는 강씨를 말하며,

시조는 강숙의 둘째 아들 강후의 67대 손이라고 전하는 강호경으로,

고려를 창건한 왕건의 외가 쪽 7대조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고구려 출신 신라의 장군으로 알려져 있고, 강지연의 6세손 강윤성은 고려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 문하찬성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강곤은 세조 때 정란공신으로 중추부사에 이르고 신천군에 봉해졌고,

다시 성종 때 익대공신이 되었으며, 시호는 충무입니다.

강중진으로 연산군때 성주목사를 지냈으며, 그 손자 강유선은 명종때 학자로 이름을 떨쳤고, 그의 아들 강복성은 인조 때 지중추부사를 지냈습니다.

현대 인물로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본명이 강도영인 만화가 강풀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99. 반남 박씨시조는 고려 중엽 반남호장을 지낸 박응주님으로,

과거 벼슬길에는 박상충이 전교시판사를 역임하였고, 아들 박은은 좌의정,

후손으로 인성왕후, 의인왕후, 현목유비와 문묘배향공신 바세채,

종묘배향공신 박규수 등이 있으며, 근세에는 초대 주미공사와 총리대신을 지낸 박정양,

태극기를 처음 제작한 박영효, 상해임시정부 법무장관을 지낸 박찬익,

광복군 지대장을 지낸 박영준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102. 안동 권씨시조는 권행이며, 과거에 권율장군 등 조선시대 문.무과 상신 왕족배출 현황을 보면 문과 급제 359명, 상신 22명, 문형 7명, 왕비 1명, 무과급제 909명, 총 1298명으로 전주이씨 다음으로 문무관 급제를 가장 많이 한 씨족의 성씨의 가문입니다.

현재 인물로는 권정달 한국자유총연맹 전 총재,

전 보건사회부 장관이시던 권이혁 전 서울대총장, 권선택 시장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권률장군 후예답게 말까지 동원했습니다.

  

103,. 고흥 류씨 시조 류영은 고려 때 호장을 하셨고,

그 후손 고려 증평장사 류승무와 도첨의정승 영밀공 류청신 등이 있으며,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치고 도첨의 정승을 지낸 탁과 조선 태종때

우군원수로 대마도를 정벌한 습이 있으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류관순 열사도

고흥 류씨입니다. 


104. 순흥 안씨시조 휘 자미께서는 고려 회종조에 흥위위 보승별장을 지냈고,

시조 공께서는 1170~1180년 경에 탄생하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순흥안씨는 시조공 휘 자미의 탄생을 기원으로 약 83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조공은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 휘 영유의 후손들은 1파로,

둘째 아들 휘 영린의 후손들은 2파로, 셋째 아들 휘 영화의 후손들은 3파로 구분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파에서는 현인을 배출하였는데 1파는 4세 문성공 휘 향,

2파는 5세 문의공 휘 문개, 3파는 6세 문정공 휘 축 세분이 있습니다.

근세에 와서 도산 안창호, 안중근 의사는 우리 민족사에 길이 빛날 애국자들이시고,

조국광복과 민족해방을 위하여 평생을 바친 백산 안희제 선생, 민정장관을 지낸

안재홍 선생, 애국가를 작곡한 세계적인 음악가 안익태 선생 등 많은 자랑스런

인물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105. 진주 류씨시조는 고려개국 삼한공신 대승공 류차달이며

10세에 판시사 제학 진산군 류인비께서 이봉 득관, 진주 류씨의 중시조가 되었습니다.

진주 류씨는 국난이 있을 때마다 충신열사가 많아 고려 말 예문관 대제학 정평공 류구,

문간공 류염, 중종반정 정국공신 영의정 문성공 류순정, 임진정유난에 선무공신 류형과

서파 류희 등이 진주 류씨이며 오늘에도 입법, 사법, 행정부와 경제계, 문화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 있는 문중입니다. 


106. 파평 윤씨 시조 태사공 윤신달은 파주시 파평산 기슭의 용연에서 신라 진성여왕 7년 8월 15일에 윤노파의 도움을 입어 탄강했습니다.

신라 경명왕 2년에 신숭겸, 홍유 등 장수들과 후고구려군을 무찌르고 왕건을 도왔고,

태사공의 현손 윤관은 30만대군을 동원하여 여진을 축조하였습니다.

또한 여섯 분의 왕비에게서 여섯 분의 국왕을 탄생시켰고,

매헌 윤봉길 의사는 대한독립과 조국애를 전 세계에 크게 떨친 파평 윤씨 인물입니다. 

107. 평산 신씨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이시며 조선에 상신 8명, 대제학 2명,

판서 20여 명과 많은 무장을 배출한 집안이며,

주요 인물은 임진왜란때 명장 신입, 정국공신 신경진, 신경유, 신경인 3형제,

한시의 대가 신위, 여류문인이며 현모양처의 귀감으로 추앙받는 신사임당 등이 있으며,

 현재는 전 국회의장 신익희, 서양화가 신현국, 앉은굿 보존회 신석봉님 등이 계시는

 문중입니다. 




5만원 지폐에 나오는 신사임당 프랑카드를 들고 참여라고 있습니다.



96. 연안 이씨 시조는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 공을 세운 이무 어른신입니다.

연안 이씨는 문과 250명, 정승 반열 상신 8명, 청백리 6명 등 조선시대 많은 인물을

배출한 가문입니다.

대표 인물로는 김구 선생님께서 가장 존경했다던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역임

한 이동녕, 시조 문학의 대가 이병기, 한문학의 대가 이정구 등이 있고 현대 인물로는

이치호 전 국회의원, 이석희 전 대우주 회장,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이상수 전 서울대 물리학 교수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연안 이씨는 말을 동원하여 퍼레이드를 하고 있군요.

 


교자타고 입장도 하고 .....

.

대단합니다. 


110. 경주 김씨시조는 김알지이며, 과거 김알지의 7세손 신라 13대 미추왕부터

김알지의 28세손인 신라 마지막왕 경순왕때까지 총 38명의 왕이 재위한 유명한 집안이며, 현재 유명 인사는 김문수, 김두관 전 광역단체장과 김신호 전 교육부차관,

김창수 전 국회의원, 김원식 중도일보 대표 등 많은 인사가 있는 문중입니다. 


111.  청송 심씨 시조는 고려조 청기군 휘 심홍부이시며, 지금으로부터 약 750년 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 해 현재 후손의 수는 20여만명이 됩니다. 

조선조 500년을 통하여 10대 문벌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많은 인재들이 사회발전에 적극 활동하고 있는 명문성씨라 할 수 있습니다. 


112. 영산 영월 신씨 시조는 고려 인종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들어와 귀화한 후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 문화시랑평장사를 지낸 신경입니다.

현재 신씨 종인은 18만명에 불과하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인재와 충신을 배출하여 나라의 동량 구실을 하였으며 현재에도 정・제계에서 많은 인물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문중입니다. 


113. 곡부 공씨 시조는 공자이시며, 공자님은 인을 이상의 도덕이라 하여 효제와 충서,

치국의 도를 설파하였고, 육경을 산술하여 유교의 시원을 이루었고, 

그의 언행을 적은 책이 논어로 현대철학사상의 지침서이자 윤리 도덕 덕치의

교과서로 인류최고의 보물을 탄생시킨 문중입니다. 


115. 무안 박씨 시조는 고려초 성종때 문신이며, 국립대학의 총장격인 국자좨주에 등용되신

진승이 중시조이시며, 1세이시고, 2세 섬은 고려 현종때 안북도호부사,

 7세 문오는 면성무원군, 10세 의룡은 태조를 도와 개국공신으로 호조, 병조, 형조 3판서에 올라 영중추부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많은 문.무 급제자를 배출하였고, 

충.효 열사가 있으며 그중 서기 1555년에 태어나서 오늘의 경주 유적을 보존해주셨고,

 임란때 경주부윤을 지낸 박의장이 돋보입니다. 현재는 4성 장군이신

박세환 전 재향군인회장, 박석무 전 국회의원, 박성효 전 대전광역시장등이 있고,

특히 근세에 송암 박두성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를 창안하여 많은 추앙을

받았습니다. 


117.  양씨시조는 탐라국왕 양을나입니다.

신라 내물왕 때 어질 양(良)에서 나라 양(梁)자로 사성받았고,

이후 제주 본관에서 남원양씨, 충주양씨가 분적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영의정 양여공, 대학자 양성지, 양팽손, 임진왜란때 의병장 양대박,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을 무찌른 양헌수 장군, 독립운동가 양전백 양한묵,

문학박사 양주동 등 문중을 빛낸 분들이 많으며 현재 유명인사에는 전 대법원장 양승태, 감사원장 양건, 국회의원 양승조, 연예인 양현석, 체육인 양학선 등이 활약하고 있는

 문중입니다. 


118. 안동 김씨 범 신라김씨로 계림의 금괴 안에서 탄강하신 알지를 비조로

신라 경순왕과 고려왕건의 낙랑공주 소생의 후손이며,

왜국정벌을 강행한 고려명장 첨의령, 도원수, 김방경을 중시조로 모시는 명문 안동김씨는 문무대신을 수 없이 배출하여 국가에 공헌하였으며, 연기대첩의 영웅 김흔 장군,

진주 대첩의 영웅 충무공 김시민장군, 충무공 김응하 장군 등 많은 무인들을 배출하고,

겨레의 큰 스승 김구 선생님이 안동 김씨 후손입니다. 현재 국내외 70만명의 후손들이

국가에 기여하며 대종회 조직을 통하여 숭조돈목을 행하는 양반 안동김씨 가문입니다. 


엄청난 깃발을 동원하고 임장하고 있습니다.

 

120  동래 정씨는 신라3대 유리왕때 육부촌장으로 정씨 성을 하사받은 지백호의 원손 안일장 회문 어른을 시조로 받들고, 부산 동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습니다.

고려 초에는 보윤공 지원 어른을 1세조, 안일호장 문도 어른을 2세조로 모시면서

성품이 온후하여 이웃과 적을 삼지 않는 가통을 지켜왔으며,

조선조 왕조실록을 보면 열일곱 분의 정승이 배출되었고, 문과에 급제 한분도 200명이

넘었으며, 오늘날에는 정 ․ 관 ․ 군 각 분야에서 국가와 사회 발전에

많은 공헌을 남기고 있습니다. 


17정승 이름을 들고 임장하고 있습니다.


121. 아산 장씨득성 근원은 중국 춘추시대의 주나라 주공의 세째 아들 백령이

하남성 기사현을 장국으로 하사 받아 국명을 성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아산 장씨의 시조 장서는 송나라 때 금자광록대부로 신경위대장군을 지냈으며,

고려 예종 때 금나라가 송을 침입하자 그는 상서, 이강과 함께 항전할 것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배를 타고 망명하여 고려의 아산에 표착하였습니다.

《기미보》에 의하면 장서가 아산에 표착한 사실을 좌복야 박인량과 재보 위계정으로부터 전해 들은 고려 예종이 그에게 아산을 식읍으로 하사하고,

그를 아산군에 봉하였다고 합니다. 시조의 묘소는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에

있습니다.

122. 함창 김씨는 신라 유리왕 18년인 서기 42년 경상남도 김해의 구지봉에 내려온 금합에서

 6개의 금빛 찬란한 알이 부화되어 구지봉에 모였던 9명의 촌주들에 의하여 추대되었는데, 그 첫째가 김수로왕으로 금관가야를 개국하였으며,

번째가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점촌, 가은 등을 영역으로 하는 고령가야의

개국 태조왕으로 추대되었으니 이분이 곧 함창 김씨의 시조이신 고령가야 고로왕이십니다. 신라와는 때로는 적대국으로서 때로는 결혼 동맹국으로서 우열을 다투다가

500여년대에 이르러 주변 소국들을 복속하며 강성해진 신라에게 가야연맹체의

맹주격이었던 금관가야가 신라에 자진 투항 함으로써 그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급기야 진흥왕 23년인 서기 602년에 대가야를 위시한 주변 가야 연맹세력이

신라장군 이사부 등에 의하여 평정되어 멸망한 것으로 역사에 전하고 있다.

현대 인물로 김집 전 국회의원은 88 서울올림픽 한국선수단장으로서

우리나라 체육계에 위대한 공훈의 역사를 남기게 된 문중의 명예로운 역사로

남아있습니다.


123.  청주 이씨 시조는 이능희로 고려 개국공신이며, 주요 인물로는 고려문신 이공승,

조선 초 문신 이거이, 조선 태종의 사위 이백강,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계년 등이 있으며,

현재는 1980년대 최고의 스포츠였던 씨름 선수 중 ‘모래판의 신사’로 불리던 이준희

선수가 있습니다.


124.  한양 조씨에서는 조선 개국공신이 배출되었는데, 태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조인옥과

태종 때 찬성사를 지낸 조온이 있습니다.

대표적 인물은 조광조이며, 고려 공민왕 때 용성군에 봉해진 조돈의

큰아들 조인벽이 낳은 조온, 조연, 조후, 조사 4형제의 후손들이 가장 번창하였습니다.

중종 때 형조판서를 지내고 청백리에 오른 조원기, 중추부판사를 지낸 조혜,

조 때 대제학·이조판서 등을 지내고

《일본기행(日本紀行)》을 지은 조경, 현종·숙종 때 명필로 이름있던 조위명 등이 있으며, 헌종 때 문장과 시의 천재로 알려진 조수삼과 그의 손자로 초상화에 뛰어난 화가

조중묵이 있으며, 현재는 외무부 차관으로 있는 조태용이 있는 문중입니다. 


125. 양주 조씨의 시조는 조잠이고, 고려 때 양주의 정조호장을 지냈습니다.

과거에는 영중추원사 조말생, 현종때 형조판서 조계원, 을사조약때 충의를 다하다

자결한 조병세 등이 있으며, 현재는 조양호 대한항공회장, 조승식 전 인천지검장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경제과 조원배 126 죽산 박씨 박씨의 시조는 혁거세로

중시조는 신라 54대 경명왕 4째 아드님인 죽성대군 기자 오자를 중시조로 하며,

조선조 세조때 영의정을 지내신 원자 형자를 파조로 하여 통훈대부 이상 벼슬을 27명이

되는 명문입니다. 현재에 와서는 10대 국회의원 박형규님께서 한문번역 등 학술 활동을

 하시고 계시는 문중입니다. 


127. 창녕 성씨는 단일본으로 전국에 18만여명이 분포되어 있는 성씨로 시조는 고려 중기의

창녕 호족인 중윤호장 휘성인보이며 본관은 창녕입니다.

시조께서 신년 하례차 지금의 개성인 송경에 가셨다가 갑자기 득병하여 돌아가시니

그 아들 문하시중공 휘 성송국은 시신을 지고 천리를 걸어 고향 창녕에 모시어

‘천리부시’의 효행을 실천하셨으니 자손들이 대대로 흠모하고 있습니다.

그 후 고려조에서 정당문학 성여완, 총부상서 예문제학 성준득, 두문동 72현중의 성사재, 성부, 공신 성사달 등의 인물이 있고,

이조 500년에는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이자 단종복위를 도모하다 동지의 밀고로 실패하여 참화를 당한 사육신의 중추 성삼문, 영의정 성석린, 성준, 성희안, 우의정 성봉조,

좌의정 성세창, 동국 18현의 1인 우계 성혼, 임진왜란 시 장신 성윤문 등이 있습니다.

해방 후에는 국회의원 6명, 장차관, 사업가, 학자, 과학자, 의료인, 고위공무원,

장성급 군인 등이 배출되었습니다. 


128.  청주 곽씨의 시조는 신라 제49대 헌강왕때 시중을 지낸 곽상으로 문장과 시에 능해

명망이 높았으며, 후손으로는 고려 성종때 형부상서를 지낸 곽원, 전법판서 광정대부

판개성부윤을 지낸 곽연준, 고려 최고의 문예가인 연담공 곽예와

16세에 직제학을 역임한 곽순 등을 배출하는 등 빛난 전통을 이어가는 뼈대 있는 성씨입니다. 후손으로는 간매파, 주천파, 제전파 등 53개 분파의 후손이 본관을 청주로 삼아

전국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주곽씨 대종회에서는 장학회를 구성하여 어려운 후손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효녀상 및 우수 파종회를 시상하여 청주 곽씨의 단합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130. 전의 예안 이씨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태사 이도 어르신이시며,

후손 이천은 고려 고종때 수군의 명장이시며 몽고의 침입에 항쟁하여 서해를 방어하였고, 그 전공을 기리기 위해 1994년 5월에 진수한 대한민국 국산 잠수함 제1호를 '이천함'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정간은 조선 세종 때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노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중추원사에 임명되고 죽음에 임박했을 때는 세종이 직접 금의 행차해 '가전충효 세수인경' 여덟 자의 어필을 내리셨고,

이후 전의이씨는 모두 이 여덟 자를 가훈으로 삼고 있습니다.

 전의 이씨는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178명, 상신 5명, 대제학 1명, 청백리 6명, 공신 6명을 배출하였다. 이종구, 이상희, 이윤호 장관, 이시종 충북도지사, 이희승 국문학박사,

화가 이응노, 정치인 이철승 등 사회각층에 다양한 인제를 배출한 문중입니다. 


132. 현풍 곽씨 시조는 곽경이며, 세조때 익산 군수를 지낸 곽인방이 청백리로 유명하며,

임진왜란때 진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운 홍의장군 곽재우가 있으며,

현대에는 국회의원 곽정출, 문화계 곽규석이 유명하며, 조선시대에는

과거급제자를 166명을 배출하였습니다. 

133.  충청남도 당진 신평 이씨시조 해모수의 아들 고구려장군 주몽의 후손으로,

통일신라 아찬 석덕, 후백제 신평호족 인수, 고려조 문하시랑평장사 덕명을 비롯한 환,

임, 장경, 승식 등 여러 재상과 조선초 대표문장가인 대제학 쌍매당 첨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한 유서 깊은 가문입니다.

또한, 평송 이남용 선생은 1990년에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알차게 가꾼 전재산 30억원을 청소년들이 마음껏 젊음과 끼를 발산할 수 있도록 청소년회관 건립기금으로 기탁하여,

현재, 선생의 호 ‘평송’을 빌어 둔산에 위치한『대전 평송청소년문화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135. 충주 지씨 시조는 선의공 지경으로 고려 광종 11년에 중국 송나라 단명전 태학사로써

사신으로 왔다가 고려에 귀화하여 금자광록대부 태보 평장사의 벼슬을 하였습니다.

고려 말에 「지문 4걸」 지윤도, 지용도, 지용수, 지용기 장군이 용맹을 떨쳤으며,

조선조에서는 의병장 지달원, 통정대부 승정원 도승지 지덕혜,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청나라 군사와 싸우다 돌아가신 철산부사 지여해,

충성군 지계최 장군이 있어 그 충절이 영원히 빛났으며 지석영은 현대 의학의 선구자이며, 1879년 처음으로 종두를 실시하여 천연두를 완전 퇴치하였고,

지청천 장군은 광복군 총사령관으로 일본군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제헌 국회의원과 초대 무임소장군을 역임하였고,

현재 정계에서는 지상욱 박사, 방송인 지상열, 지석진, 탤런트 지진희, 축구선수 지동원, 지소연 등이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136. 은진 송씨 시조의 휘는 대자 원자로 고려시대 중추원 판부사를 지내시고

은진군에 봉해져서 관향을 은진으로 하고 있으며 그 후손들은 고관 석학을 많이 배출한

유반의 명가로 특히 조선시대의 대유학자요 예절의 종장이신 동춘당 송준길 선생과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자자를 받쳐칭하는 송자 우암 송시열 선생을 배출한 집안이며

문묘에 두 분씩이나 봉향되고 있는 대성씨입니다.  


유반의 명가 깃발을 들고 입정하고 있습니다.

  

138. 무송 윤씨시조 윤양비공은 고려 예종때 무송현의 현리로서 문과에 급제하시어

‘보승낭장’을 지내셨습니다.

중서조 형제분은 대사성공파, 장령공파로 나뉘어 번창 하였는데

학덕이 높은 학자와 현명한 정치가가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조선조에는 상신 1명, 대제학 1명, 청백리 1명, 공신 3명, 문과 13명, 무과 3명이

급제한바 있습니다.

훌륭한 선조 몇 분을 소개하면 문정공 윤택공은 고려 공민왕때 정당 문학 첨의 찬성사를 지내셨고,

동정 윤소종공은 문과에 장원하셔 우사의대부 대사성을 지내시고

조선초 “고려사”를 수찬 하시었습니다.

문헌공 윤자운은 함길도 도체찰사 도청관을 지내시고 조선조 예종, 성종때 우의정으로

무송부원군에 봉해졌다. 충정공 윤형은 선조때 광국공신 2등으로 군기시정이 되시고

 공조, 호조판서를 거쳐 판의금부사가 되시었습니다. 공호공 윤사익은 중종때 사헌감찰

예조, 호조화랑을 거쳐 중추부사에 이르시고 한성부판윤겸 도청관에 오르시며

지경연춘추관사에 이르시고 청백리에 녹선 되시었습니다.

석정 윤세주는 3.1만세 운동시 밀양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주도하시고 중국으로 망명하시어 태행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신 독립혁명열사로 982년 ‘대한 건국 훈장 국민장’을 받으셨습니다.

종훈은 선현께서 물려주신 숨결과 지혜를 되새기며 번창의 길로 전진하자입니다. 



교자를 타고 입장을하고 있습니다.

  

가마를 타고 입장을 하고 있습니다.

  

140. 진주 류씨시조는 고려 중엽 금자광록대부상 장군을 지낸 진강 부원군 류정으로

고려 600년 최충헌 외조부이며, 고려부터 조선까지 원훈공신 17명, 증시 11명, 원종 공신 19명, 문형은 서경공, 문과 장원급제 6명, 재신 12명, 실직 당상관 80여명, 무과급제 123명, 장신100여명이 계시는 문중입니다.


141. 제주 부씨시조는 부을나이며, 양을나 고을나와 함께 제주도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에서 용출한 삼신인의 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동쪽으로부터 떠내려온 상자를 건저서, 세 미녀, 오곡의 씨앗, 망아지 송아지를

얻어 세 미녀를 베필로 삼고 제주 일도, 이도, 삼도 세 지역에 할거하여 목축과 농사를

영위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부씨의 연원을 이루었으나 세계가 실전되어 원손 득시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제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는 문중입니다. 


143. 함평 이씨시조는 고려 신무위대장군에 올라 함풍군의 군호를 받은 이언입니다.

함풍 고을은 조선 태종때 함평현, 1895년에 함평군으로 개칭되었습다.

천여년을 이어오는 동안 27개파 14만명 후손이 번창하여 시조 언의 종훈인 숭조보본,

애족돈목, 단합총화, 상부상조의 창성이념을 본받아 국가와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있는 문중입니다.

 



업청난 인파가 입장하고 있습니다.

   

144. 청주 사씨 시조는 위나라 대부 어(漁)로서 그 충직이 청사에 빛나고

후손들의 귀감이 되었으며, 명대에 산동 청주의 요(繇)가 태조의 개국공신으로

예부상서에 올랐으나 소인배의 참소로 조선에 정배된 후 귀화하여 파주에 가문을 연

청주 사씨의 중시조입니다.

과거에 경상좌도관찰사 사중, 장례원판결사 사극명, 평택현감 사의담, 사헌부감찰 사득손, 한성주부 사학수, 공조참의 사원훈, 정헌대부 사인필, 임진왜란때 동원유격대장군 사유, 대제학 사원성 등 후손들이 번창하였고, 현재는 역도선수 사재혁, 탤런트 사미자,

부성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 부성, 사재동 중앙인문연구원장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145. 청풍 김씨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해 있던 옛 지명인 청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시조는 김대유입니다.

청풍김씨는 마의태자 일의 차남인 대장군공 순웅의 12세손인 고려말의 문하시중 김대유를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정승 8명, 대제학 3명, 왕비 2명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147. 성산 이씨의 시조인 능일은 라말려초의 인물로서 일찍이 부마가 되시고 신라가

고려에 병합하는 과정에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에 고려 태조가 시조공을 벽상삼한 삼중 대광사공으로 책봉하였으며,

오늘의 경상북도 성주군 전역과 칠곡군 일부 고령군 일부 지역의 5현을 통합하여

경산부를 설치하고 시조공을 성산부원군으로 삼아 그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임진왜란때에는 의병에 가담한바 이운 등 12종숙질이 함께 창의한 사실은 임란사에

길이 빛날 일입니다.

응와 이원조는 고종 초에 공조판서 판의금부사를 역임하였고,

한주 이진상은 성리학의 대가로 이름을 얻었으며 구한말 한계 이승희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였고, 국내에서도 유림단 파리장서사건과 의병에 많은 종인이 가담하여 조국 광복에 기여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 이르러 성산 이영식은 우리나라 장애자교육을 개척하였고,

청담 대선사는 불교 조계종 초대총무원장 종정을 맡아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또 한솔 이효상은 국회의장을 8년간 역임 하였으며,

대구지방노동청장을 역임한 이완영 국회의원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148. 서산 정씨 시조는 양열공 인경으로, 1256년 몽고군과 전투 등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워

서산군으로 봉해졌으며,

후손인 내암 정인홍은 임진왜란때 영남 의병대장으로 활약하였고,

대사헌으로서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전쟁 이후의 복구사업에 힘썼던 인물입니다. 


149.  임천 조씨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지명이며 시조 조천혁은

중국 송나라 태조 조광윤의 증손자로 고려 현종 때 강감찬 장군과 함께

거란군을 격파한 공으로 가림백에 봉해졌다.

주요인물은 조선시대 조지서, 조원, 조희일, 조석형, 조성기, 조경호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151. 안산김씨은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의 옛 지명으로 고려 현종 때 안산군에 봉해지며

후손들이 정주하게 되면서 유래가 되었다.

안산 김씨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의 아들 김긍필을 시조로 합니다.

업적을 남기신 조상으로는 좌명공신에 오르고 이조전서를 지내신 김정경,

승문원교감 김맹강, 예조판서 김맹철, 대제학 김지, 진주목사 김자형, 공조참의 김창,

형조참의 김영, 산수화와 인물화로 유명한 김명국 등이 있습니다. 


152.  청안 이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파가 있습니다.

충원공파의 시조 이양길과 충간공파의 시조 이한번 어르신입니다.

 대표 인물로는 1414년 전라도와 충청병마절도사, 병조판서를 역임한 이광경,

1452년 원종공신 2등으로 청평군에 봉해졌고, 1474년 현감을 지낸 이기 등이 있고,

조선시대에 1명의 무과, 7명의 사마시 급제자를 배출한 문중입니다.

현대에도 수자원협회 회장 이문혁, 영동제약(주) 대표이사 이정문,

동양전자통신(주) 대표이사 이영만등 각계각층에 많은 저명인사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집성촌은 경북 월성군 안강읍과 외동면, 경북 영일군 청하면 청계리와 의성읍, 경북 울주군 온양면 발리, 언양면 반송리, 청양면 율리, 농소면 상안리입니다. 


153. 원주 이씨이신우를 시조로 합니다. 이신우는 고려 목종때 병부상서를 지낸 뒤

원주에서 정착하면서 시조가 되었습니다.

원주이씨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판도공파, 월성공파, 대장군공파, 시랑공파로 크게

나눠져 선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시조로부터 13세손인 반계는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해 광록대부로 예부상서에 올랐습니다.

반계는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유신들과 함께 두 명의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서 경기도 개풍군에 소재한 두문동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반계는 수차례 영의정 벼슬을 거절했고 왕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소식에 식음을

전폐하고 7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반계의 충정을 높게 평가한 조정에서는

사후에 영의정벼슬을 내렸습니다. 


154. 가평 간씨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지 천여 성상! 고려 현종 때 거란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신 휘 영언이 시조이십니다.

의종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내신 휘 균이 중조되십니다.

균은 문장도덕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셨고 벼슬을 내치신 뒤, 가평에 터전을 잡아

본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가평 간씨 혈족은 이 강토를 지키고 조상의 향화를 받들며

강의불굴의 기상으로 가문의 명목을 지금껏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가평간씨대동보』에 수록된 우리나라 가평 간씨의 인구수는 현재 약 2,500여명입니다.


155. 부여 서씨백제 의자왕의 셋째아들 융을 시조로 하며, 선조때 문과에 급제 의주목사를 지낸 서익과 인조때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병조판서를 역임하였고,

왕에게 직언을 잘하여 당대의 ‘오직(五直)’으로 이름난 서필원 등이 유명한 문중입니다. 

161. 합천 이씨 시조는 고려 강양군의 호장 이개입니다.

이개는 신라 6촌장 중의 하나로 알천 양산촌의 촌장이며,

유리왕 때 이씨 성을 하사 받았다는 이알평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합천 이씨는 경주 이씨에서 분적된 성씨인 셈이다.

이개가 합천 호장을 지냈고, 그곳에서 죽은 것을 연유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여

 합천을 관향으로 삼아 대대로 이어오고 있는 문중입니다. 


162. 순천 김문신라의 종성으로 동량지재와 충의지사를 국가발전에 기여한 가문으로,

시조 김총은 신라 헌안왕 때 인가별감으로 평양군에 봉해져 순천을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고려말 김을재는 불사이군의 상징이고, 태종때 김승주는 좌의정으로 좌명공신회맹록이

문화재로 현존하고 있으며,

김종한은 이조판서로 단종조의 충신이고, 좌의정을 지낸 김종서는 육진 개척과 고려사,

고려사절요, 세종실록을 편찬하시고, 단종때 충의대절의 사표이십니다.

인조때 김류는 대제학과 영의정을 지냈고, 시문에도 뛰어났습니다.

이밖에도 김종철 국민당 총재등 4명의 국회의원과 한화그룹 김승연,

한국법조역사의 산증인인 김이조 변호사를 배출한 문중입니다


164. 함안 조씨 시조는 고려 초 대장군을 지낸 조정입니다. 조선초 생육신의 한분인 조여,

임진왜란때 황석산성에서 순국한 조종도, 일제 강점기에 일왕의 장인을 대만에서

 자격한 조명하, 임시정부 외무총장과 의정원원장으로 활약한 조용은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165. 배천 조씨 시조는 지린공이며, 송나라 태조 조광윤의 손자로 궁중권력 다툼을 피하여

서기 979년 고려 경종4년 황해도 배천에 정착했고, 2세 배천군 양유공때

본관을 배천으로 삼았습니다.

고려시대에 평장사를 지낸 조중장, 대제학을 지낸 조옥, 병부상서 조문위, 문하시중 조진, 대장군 조천주, 검교시중 조선 등 많은 관직자를 배출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의병장 조헌, 병조판서 조정호, 대제학 조석윤 등이 있으며, 현대인물은 조경철 천문학박사,

조내벽 라이프그룹 회장, 조영식 경희대 총장, 조영장 국회의원, 조진만 대법원장 등이 있습니다

167. 원주 김씨 강원도 원주를 본관으로 하는 원주 김씨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인 김거공으로,

고려 의종 때 이부상서를 거쳐 추밀원사, 판삼사사, 문하성사, 호부상서 등을 역임하고

원성 원주백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본관을 원주로 하게 되었습니다.

좌의정 김응남, 충양공 김준용 장군, 우의정 김덕원 등이 대표적 인물인 문중입니다. 


복장이 대단합니다. 


168. 함안 이씨 시조는 ‘이상’으로 고려 23대 고종조에 광록대부로 파산군에 수봉되셨고,

그 후 8세 계통은 함성군, 9세 세응은 함안군으로 수봉되면서 함안이씨는 3대가

군에 봉해진 유례가 없는 명문가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문중입니다. 

171. 회덕 황씨대전의 토성으로 시조는 황락이며, 고려때 좌명공신으로 회천군에 봉해진

황윤보를 1세조로 삼고 있습니다.

2세 황연기는 대전 동구 마산동에 위치한 미륵원을 복원하여, 3대에 걸쳐 100년이상

서울과 삼남을 오가는 길손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여,

 오늘날의 사회복지기관 역할을 했으며 후천집 등 여러 문집과 미륵원지를 비롯한

유적 유물을 전하고 있는 문중입니다. 


172. 의령 옥씨 시조 옥진서는 서기 635년 사학의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당나라에서

모셔온 정관 8학사의 한분이셨습니다. 고구려와 신라조에서 벼슬하며 사학의 유생들을

가르쳐 그 덕행이 나라에 크게 미치므로 의춘군에 봉하시고 돌아가신 후에

문혜의 시호를 내리셨습니다. 신라의 악성인 옥보고와 고려의 절의신 옥사온,

이조의 청백리 옥고 등 많은 훌륭한 선조들이 있으며

근세에는 공군참모총장과 국회의원·중국대사 등을 역임한 옥만호 장군이 있는 문중입니다.


173. 장수 황씨 시조는 조선시대 4대 명재상의 한사람이면서 청백리로 뽑히는 황희정승의

증조부로 황석부 어른이시며, 대표 인물로는 정승의 지위에 24년간, 그 중 18년간

영의정을 지내며 농사의 개량과 예법의 개정, 서얼의 천역 면제 등 치적을 쌓으신

황희정승을 비롯하여 이조 및 예조판서를 역임하신 황정욱, 대제학을 비롯해 이조, 예조, 공조판서를 역임한 황경원, 선조때 일본에 다녀와 임진왜란을 예고한 황윤길 어르신등

 조선시대 160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문중입니다.

174. 평창 이씨 시조는 광이며, 광의 8세손 천기는 고려 말에 원나라 제과에 급제하여,

산기상시를 지냈는데, 그의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습니다.

조선시대에 문과급제자 25명을 배출했으며, 중추적 인물로는 천기의 증손인 영서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 예조정랑을 지냈는데,

특히 서예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영서의 아들 계남, 계동 형제가 뛰어나

 계남은 연산군때 이조판서에 이르렀고 중종반정공신에 올랐으며,

계동 역시 연산군때 병조판서를 거쳐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근세 인물로는 한국 가톨릭교사(史)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승훈 일가가 있는 문중입니다. 

  

175. 평창 채씨 시조 송년은 고려 고종때 금자광록대부상사, 태사, 문하시랑 평장사,

상호군 등을 지내고, 태자태사에 이르렀으며, 1230년 최향의 난이 일어나자 병마사로

 이를 평정하며 대장군에 올랐습니다.

그의 맏아들 정이 중서시랑 평장사로 평강군에 봉해졌고, 둘째 화는 문하시랑 평장사,

상장군, 판이부사 등을 지냈으므로, 후손들이 송년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평강으로

삼게 되었습다. 평강 채씨는 특히 조선조에서 훌륭한 인물들 많이 배출시켜 명문으로 서의 지위를 굳혔는데, 그중 빼어난 인물로 명재상 채제공이 있었는데,

채제공은 영조 19년 문과에 급제, 정조 초에 이르기까지 도승지와 육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고, 남인의 영수였던 그는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우의정, 영의정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재상의 자리를 지키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두루 업적을 남겼고, 현재 국민 여배우 채시라도 평강 채씨입니다. 


176. 월성 박씨신라 경명왕의 제8왕자 월성대군 박언의를 분관조로 하고

대군과 고려 때 좌사간을 지낸 31세 박견 및 지하 10위의 제향을 월성재에서 봉행하며

중조 박구는 중군의 사정과 부령에 올랐으며,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고,

43세 박간은 성균관 대사성과 예문관의 제학, 이조참판, 판의금부사를 지냈고 좌찬성에

추증된 문중으로 인천, 서산, 동래, 군위, 경주 등지에서 숭조정신으로 종족간 종의를 돈독히 하는 문중입니다.


177. 창원 황씨 시조는 고려 성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황충준입니다.

창원 황씨는 황충준을 시조로 하는 시중공파 외에 고려 충정왕 때 문하평장사를 지낸

황석기를 시조로 하는 공희공파, 고려 시대에 호장을 지낸 황양충을 시조로 하는 호

장공파로 나뉩니다.

황충준의 후손으로 고려 후기 정토장군을 역임한 황신을 기세조로 치는데 이는

황충준과 황신 사이의 세계는 분명하지 않는 반면에 황신 이후의 세계는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황신의 7세손인 황순경에게는 여섯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둘째 아들인 황림은 조선 선조대에 이조 판서를 역임하면서 의창군에 봉해졌습니다. 따라서 황림으로부터 파가 갈린 황씨를 시중공파 안에서 의창군파라 부릅니다.

공희공파에서는 조선 성종 때 공조 판서를 지낸 황형, 황형의 아들인 대사간 황기,

공조 및 호조 판서를 지낸 황신, 학자로 유명했던 황근중·황경중 형제가 가문을

빛냈습니다. 호장공파에서는 임진왜란 때 동지돈녕부사가 된 황사우, 순조 때 문장과

글씨로 이름을 날린 황기천과 고종 때 명의 황필수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181. 추계 추씨 시조는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한 추엽이며, 고려 인종 때 중국 송나라에서 건너온 성씨로, 시조 추엽의 아들인 추황이 문과에 급제하여 문관대제학을 지냈고,

명심보감의 편자인 아들 추척은 고려 충렬왕 때 민부상서와 예문관제학을 거쳐

문하시중에 올랐고, 현재 인물로는 추경석 제2대 건설교통부 장관이 있는 문중입니다. 


182. 칠원 윤씨신라 태종무열왕 때 태자태사를 지낸 윤시영을 시조로 합니다. 과거 벼슬을 지낸 분들은 고려 시호를 받은 대신 문경공 적 명도 유 은경 길보 충효공 환이며

조선에 정경공 방저 자당 자량 탁연 경원 지술이 계십니다.

그리고 공신에는 고려의 길보 환 공이고, 조선에 자당 탁연이 계십니다.

한국의 국회의원은 윤석순, 윤상현, 윤영과 고시합격자 윤영학 외 10분을 배출하였으며, 예비역 중장에 윤학수가 있는 문중입니다. 


183. 무주 김씨 시조 김성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43세손으로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등과,

국자감찰주를 거쳐 조선 태종때 보문각 대제학을 지낸 뒤 무주백에 봉해졌습니다.

분적종 및 분파는 사정공파, 도계공파, 창암공파, 참봉공파, 사곡공파, 통덕공파,

교리공파 등이 있습니다.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무주 김씨는 707가구 총 2255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186. 하빈 이씨의 시조 이거는 자가 거옥, 시호는 문정으로 고려 명종 때 예부상서를 지냈고

나라에 공을 세워 하빈군에 봉해졌습니다. 이로써 후손들은 하빈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습니다.

하빈 이씨는 이경의 5세손인 이예가 판서를 역임하면서부터 다시 관직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침이 판관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으며,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이현계도

이름을 날렸으며, 돈령부 도정을 역임한 이상룡도 후손입니다.

조선중기의 학자인 이개는 하영의 아들이며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안분 자족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의 독립운동가로는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선생.

의열단 부단장 이종암 선생. 청국청원신사단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에 앞장선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이병구 선생 등이 있습니다.

고려 두문동 72인 충신의 얼을 이어 받아 친일파는 단 한명도 없는 문중입니다. 


187. 나주 김씨 신라 927년 경순왕을 선시조로 한 나주김씨는 시조 김운발의 후손으로

1천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소수 종친회입니다. 역사적 인물로는 고려시대의 대제학

제15대 김대경 선조와 제17대 조선시대 장군 김정준 선조 등이 있으며

현재는 전국 10만명의 종친들이 있습니다. 


188.  전주 류씨고려 말 전주에 세거하신 류습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시조께서는 5남 1녀를 두셨는데, 판전교시사공, 직제학공, 이조판서공, 대사성공,

호조판서공, 5형제와 사외 대제학 심효생이 모두 등과하였고,

시조께서는 완산백에 시조비께서는 삼한국대부인에 봉작되셨다.

문명을 떨치신 분으로 세종조의 명신 류의손, 성리학의 비조 류숭조, 청백리 류헌,

임란 후 영상을 지내신 류영경, 임란 충신 류복립, 퇴계 학맥을 이은 류치명,

근현대 인물로 독립지사 류근, 류인식, 류림, 류치송, 전민한당 총재 류혁인,

전 장관 류일호, 현 국토교통부 장관 류성걸, 류기홍 현 의원, 시인 류안진 등이 있습니다. 


190. 보성 선씨 시조는 퇴휴당 휘 윤지 공입니다.

공께서는 1382년 문연각학사로 고려에 오셔서 호남안렴사를 제수 받아 호남지방에

침투한 왜구를 소탕하고 보성에 세거하여 관향으로 삼고,

후손 충신들과 함께 사액을 받아 보성 오충사 문화재에 배향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조공의 사적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평양공 “형”께서는 이시애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 유성군에 봉군되었고,

우의정에 증직되었다.

병사공 “거이”, 대호군 “극례” 선생께서는 임진왜란 당시 혁혁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일등에 녹훈되었으며,

안동영장 “세강”께서는 병자호란때 많은 적을 격퇴하시다 순절하셨고,

수사공 “약해”선생은 사신으로 심양에 들어가 오랑캐를 꺾으셨다. 

후손으로는 선병렬 전 국회의원과 대전 선병원 선두훈 원장 등의 인물이 있는 문중입니다. 


191. 학성 이씨 시조는 이예이며, 과거에 예의손자 직겸은 군자감판사, 양오는 학자로 반계집을 남겼으며,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있고, 현재는 이채익 국회의원과, 

고려대 이명훈 교수, 이수봉 박사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193. 낭주 최씨중국 제나라 태공망 후예가 최씨성을 얻어 그 후손이 낭주골 영암의 너른

들판에 살아옴으로써 낭주 최씨가 되었숩니다. 낭주최씨의 시조인 흔(昕)은

신라 진성왕때 원보상이었고, 후손 지몽은 왕건과 함께 고려를 세운 공로로 민휴란 시호를 받았습니다.

현재도 낭주 최씨는 각양 각계에서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밝혀주는 횃불이 되고 있습니다. 


195.  덕수 이씨황해북도 개평군 덕수리를 본관으로 고려시대 이돈수를 시조로 하고 있고, 율곡 이이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율곡 이이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동호문답, 성학집요 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만언봉사,

시무육조 등을 통해 조선 사회의 제도 개혁을 주장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내며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바다를 제패함으로써 전란의 역사에 결정적인 전기를 이룩한 명장입니다. 


197. 고성 이씨 시조는 고려덕종때 문과급제후 밀직부사를 거쳐 호부상서에 이르시고

철령군의봉호를 받으신 휘(諱) 황(璜)이십니다.

고려조 말기에 수많은 명작대관을 배출한 거문이고 조선조에 이르러 그 세력이 증대하여 현관거유를 배출한 명문입니다.

광복 후 최근에는 국무총리를 지낸 이한동 등 사회 각계각층에 활약하는 후손들이 많습니다.


200. 풍산 홍씨고려 고종29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국학을 지내신 홍지경이 시조이며,

안동 풍산을 본관으로 가문을 창립하였습니다. 고려의 충신집안으로 조선조의 창업에

등을 돌렸던 풍산 홍씨는 3대를 초야에 묻혀 지다가 조선조 중엽부터 다시 벼슬길을 열어 옛 명문가의 저력을 발휘하였으며, 5번의 국혼까지 겹쳐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명문대가로 성장하였습니다.


201. 해주 정씨 시조는 정숙이며 조선시대 의정부 좌찬성과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정역을

위시하여 65분의 문과급제자, 12분의 공신, 8분이 시호를 받았으며,

임진왜란 함경도 의병장 정문부(鄭文孚)등 많은 충신을 배출하였고,

좌찬성과 이조판서를 역임한 정역은 효령대군의 장인입니다. 


202. 의흥 예씨 시조는 예낙전으로 고려 인종때 문화찬성사 공조참판로 부계군에 봉해졌습니다. 주요 인물로는 학자 예승석 한성부우윤, 국회상공위원장을 지낸 예춘호가 있는 문중입니다. 


203. 고령 박씨 시조는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의 둘째 아들 고양대군 박언성입니다.

후대에 어사공 박섬, 부창정공 박환, 주부공 박연을 중시조로 하는 3파가 형성되었고,

고령박씨는 조선시대에 56명의 문과 급제자, 1명의 상신, 4명의 청백리를 배출했는데,

대표적 인물은 세종때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박처륜과 영조때 암행어사 박문수 등이

있으며, 현대 인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있는 문중입니다. 

204. 초계 최씨는 1,300년 경 초계군 최용궁을 시조로 하며, 고려조에는 세자태부 초계군

최용궁, 조선조에는 기묘명현 최산두와 선무원종공신 최종원, 최기룡, 최헐과

영국원종공신 최득린 등이 있으며

현대 인물로는 국회부의장과 통일부총리를 지낸 최영철, 국회도서관장을 역임한 최문휴, 한국수자원공사 이사장을 지낸 최중근 등 각 시대의 주역으로서 민족사의 창달에

기여해온 명문법가입니다. 현재 초계최씨는 10대 종파 72문중으로 조직된 대종회

조직을 갖고 있으며, 3만 일가들이 전국각지에 분포해 살고 있습니다. 


205. 양근 강릉 함씨시조는 경기도 양평 용문산 함왕혈에서 탄신하신 함왕 휘혁이십니다.

 31세 제(濟)는 본관을 강릉으로 이관, 죽계공파는 양근으로 모두 함왕의 후손입니다.

정평공 부림은 조선 개국공신으로 8도 관찰사, 형조판서를 역임하였고,

생전에 동원군으로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된 정평공파의 파조이시고,

동생 부열은 고려말 흥문박사로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죽계공파의 파조이시고,

부실(傅實)은 보국승록대부 예조판서 보문각대제학을 받은 예판공파 파조이십니다.

근대엔 대한민국 3대 부통령 태영, 대통령비서실장 병춘, 사상가 석헌,

국악사 화진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206. 함풍 이씨의 시조는 “이광용”이시며, 고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3왕조의 재신으로

여러 벼슬을 역임하신 이광봉이시며 훈붕사실은 문인공 민지공의 편년강묵과

목은 이색 공의 금경록에 재록된 벅상 삼한삼중대광 함풍부원군이십니다.

이는 충숙왕이 원나라 사저였던 선경원에서 내리신 군봉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광봉 조의 후손들은 함풍부원군 군호를 본관으로 하여 함풍이씨가 되었습니다. 


207. 경주 설씨시조는 신라 개국공신 6부 촌장중의 한분인 설거백이며,

법흥왕 3년 무신공으로 시호되었고 무열왕때 장무왕으로 추봉되었으며,

기원전 57년 경주주변 촌장과 알천언덕에 모여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임금으로 추대하였으며,

신라 3대 유리왕이 이들의 공로를 기려 성을 하사하여 설씨가 탄생 하였습니다

신라시대 고승인 원효대사와 국학을 크게 진흥시키고 이두를 집대성한 설총 부자는 설

씨 가문이 자랑하는 인물입니다.


208. 화순 최씨 시조는 고려시대에 평장사를 지낸 최세기로서, 조선시대에 21명의

문과 급제자가 나왔으며

그 중 중추부사와 대사헌을 배출하였고, 대표적 인물로는 당대의 저명한 성리학자로

대사헌에 추증된 최영경이 있고 현대에 국회의원 및 문공부장관을 지낸 최병열 등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213. 백주 태씨는 해동성국 발해를 건국한 고황제 대조영의 후손으로써

시조는 대조영의 부친이신 대중상이시고, 서기 696년부터 15대를 이어 229년간 황위를

계승한 발해국 황족의 후예이며, 태씨가 된 연유는 고려사, 동사통감 등의 고서에서

큰 대(大)와 클 태(太)가 혼용 기록되는 등 같은 의미로 사용된 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현재의 유명 인사로는 국가유공자 태근일, 전 옥천군종친회장 태근호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214. 청주 경씨 시조는 청주인 경진으로 고려 명종 때에 중서시랑 평장사를 지냈으며,

그 아들인 경대승은 청렴한 인물로 장군이 되어 정중부의 횡포정치를 제압하고

쇄신정치를 하였으며, 청주 경씨의 1세는 경번으로 고려 고종조에 문과에 올라

호부상서평장사에 이르고 청주에 세거하였으며, 2세는 경수로 통례문사를 지내고,

3세인 경사만은 우대언이었고, 4세 경복흥은 벼슬이 문하시중에 오르고 원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청주를 본관으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 인물로는 경대수 국회의원, 경종민 카이스트교수, 경교수 세무사 등을 배출한 문중입니다.  

 

216. 청산 정씨고려말 평장사를 역임하였으며, 이성계를 도와 조선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으로 좌의정에 오른 정금강이 시조이며,

조선시대 현감을 지낸 정희한을 비롯하여 주부를 지낸 정필, 목사를 지낸 정익,

정위의 정여해, 부사과를 지낸 정문우, 판관을 지낸 정효성 등 많은 관직자를 배출한 문중입니다.


대단합니다. 


218.  원주 변씨 시조는 대은 변안열로 고려말 공민왕과 왕비 노국공주를 배종하고 환국하여, 원주를 본관으로 받아 원주 변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문중을 빛낸 인물로는

공조판서와 좌의정을 지낸 변혈과 영의정을 지낸 변계륜이 있으며,

최근에는 변정일 전 국회의원과, 변웅전 전국회의원이 원주 변씨입니다. 


219. 이천 서씨 시조는 신라 아간 벼슬을 지낸 신일 공이시며 2세조는 고려태보내사령

서필이시고, 3세조는 거란의 80만 대군을 협상으로 물리치고 압록강 280리를 획득하여

국경을 확정한 구국의 영웅 태사내사령 서희 공이시고 4세조는 현종비 원목왕후의

아버지이신 서눌로 대광내의령이십니다. 또한 청산리 대첩의 독립군총재 서일 장군,

전 적십자사총재 서영훈, 태평양화장품의 창시자 서성환 옹, 이천전기의 창시자 서상록 공 등을 배출한 집안입니다


220. 광주 안씨 시조 안방걸은 고려 태조 때 광주지방의 관리로, 광주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대장군이 되고 광주군에 봉하여 광주를 본관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고려 때 경남 함안 안찰사로 선정을 베푼 전중시어사 안유와

이부총랑 안정, 위위주부 안창, 상호군 안충, 중랑장 안국주가 있으며,

조선 태조때 최초의 청백리 안성과 성종 때의 안팽명은 할아버지와 손자가 청백리 입니다.

이외에도 세종 때 안몽득은 경덕재의 유학자이며 정조 때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 순암

안정복 등이 있습니다.

현대에도 상공부장관을 지낸 안병화, 전 국회의원 안병규, 전 인권위원장 안경환 등

 다수의 인물을 포함하여 전국에 약 4만 3천 여명이 분포되어 있는 문중입니다.

221. 삭녕 최씨 시조는 고려중엽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최천노이십니다.

중시조인 최유가공은 고려 명종 20년에 국자감대사성과 추밀원부사에 이어

명종 24년에 참지정사에서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하시고 노년에 삭녕에서 여생을

보내신 연유로 인해 삭녕 최씨의 본관이 유래되었습니다.

세종조의 훈민정음 창제를 주관하고 영의정에 오른 태허정공 최항, 송천공 최흥원,

진주로 낙향하여 촉석루를 중건한 대사간공 최복린, 천체물리학의 선구자 혜강공 최한기 등이 삭녕 최씨의 종문을 빛내왔습니다

 

222. 옥천 육씨 시조 육보께서는 8학사의 수장으로서 학문과 예법 진흥에 노력한 결과 경순왕의 부마가 되어 현재 충북 옥천인 관성군에 부임하여 옥천 육씨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옥천 육씨는 조선시대에는 다수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 하였으며 근대에 와서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로 인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23. 삼척 김씨 실직군 왕릉은 삼척 김씨의 시조이며 신라 경순왕의 손자인 김위옹의 묘소입니다. 실직군왕이란 명칭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신라 경순왕의 복속을 받아들이고 실직군왕으로 책봉하여 대우하면서 유래한 것입니다.


224.  선산 일선 김씨 시조이신 순충공 휘선궁은 고려 개국의 정란보국 벽상공신 문하시중입니다. 김선궁 고려 개국 공신, 문하시중, 삼중대광, 선주백 등 훌륭한 분들이 많으셨고

현재는 김광용 전 원주시장, 김광원 3선 국회의원이자 국회 농수산 위원장,

현 한국마사회장 등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73. 문화 류씨 시조는 류차달이며, 과거에 문간공 류공권, 문정공 류경 등 수대를 연이어

시호를 받음으로써 4대 명족으로 조선조에 들어와 134명이 문과에 급제하여 정승 9명,

실직당상관이 90여명에 이르고

특히 국초의 청렴 재상 하정 류관, 사육신 낭간 류성원, 문흥군 류사원, 류형원,

류득공 등 벼슬 지낸 집안이며 문화 류씨의 영락보와 가정보는

우리나라 족보의 효시로써 동서양을 막론하고 계보학 연구의 세계적 문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31. 신천 강씨주나라 무왕의 아우이고 위나라왕인 강숙의 둘째아들 강후에 뿌리를 두고

공의 68세손인 강호경 성골장군이 신천 강씨의 시조이시며

공의 14세손인 고려문하시중 신성부원군이신 지연 공을 중시조로 모시고 있으며,

본관은 황해도 신천이고 별관으로 곡산, 재령, 안릉, 충주 등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정화왕후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에는 버들잎 설화의 주인공 조선 최초의

왕비 신덕고 황후가 계시고 현재 유명 인사는 강인덕 초대통일부장관,

강봉균 전 제정경제부장관, 강금실 전 법무장관, 강우석 영화감독, 강석우 영화배우,

강용석 방송인 등이 있는 문중입니다. 





태극기 우산 입장 


 문중 퍼레이드에 이어서 한복을 곱게 입은 우리 어린이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입장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평양 백두 한라 예술단과 우리 중구와 우호 협력 도시인 중국 용정시 예술단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귀화외국인 입장

 


 문중 입장 퍼레이드 진행하는 유종화, 이명순 아나운서입니다. 






. 박용갑 중구청장님 축하멧시지 VCR 상영 

 

 이정수 중구의회 의장님축하 메시지 VCR 상영 


 김동기 문중협의회장님 축하 메시지VCR 상영 


그 외에[도  권선택 시장님, . 김경훈 대전시의회 의장님,  설동호 교육감님, 정세균 국회의장님,  이은권 국회의원님, 이장우 국회의원님, 박병석 국회의원님, 박범계 국회의원님, 이상민 국회의원님, 조승래 국회의원님, 정용기 국회의원님, 한현택 동구청장님, 장종태 서구청장님, 허태정 유성구청장님, 빅수범 대덕구청장님,  황정수 무주군수님, 황명선 논산시장님, 최명희 강릉시장님, 박성민 울산시 중구청장님, 최창식 서울시 중구청정님, 김은숙 부산시 중구청장님, 윤순영 대구시 중구청장님, 김성환 광주시 동구청장님, 중국 용정시 권대걸시장님,... 축하멧시지가 왔습니다.


이어 우리 중구의 태평 2동 주민이신 최동익 어르신과 아들 내외, 손자들 3대 가족과 박용갑 청장님께서 함께 개막선언이 있었습니다, 

       

" 뿌리가 튼튼해야  꽃이 좋고 열매가 실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