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실

퇴계와 국방(내고향/일천)

오토산 2017. 2. 4. 09:31

 

퇴계와 국방

 

생뚱스런 말 같이 느낄 것이다.

 퇴계(退溪)라고 하면 우선 성리학자로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일 터이고

국방(國防)과는 거리가 먼 어른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계선생의 문집과 문인(門人)들의 문집 속에는 국방에 관한 글들이 들어있는

데도 찾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선입견으로 퇴계를 보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침입을 당하고

또 한말(韓末)에 나라를 빼앗겼든 아픔의 세월을 되돌아보고

흔히들 조선시대에 유학(儒學)으로 인한 문약(文弱) 때문에

그런 치욕을 당했다고 말을 하는데,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유학(儒學)때문이 아니라

잘못 배운 정치가들의 사리사욕이 가득 찬 야욕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때 나라를 망쳤던 정치판 모습이 흡사하게 지금 재현되고 있어서 우울하기만 하다.

퇴계께서 당시 고을 원으로 있던 황금계(黃錦溪 : 黃俊良)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라의 국방(國防) 걱정을 하신 남북(南北)의 큰 환란이 아침이 아니면 저녁에

 곧 닥칠 터인데, 우리의 방비를 돌아보면 믿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산림(山林)의 즐거움인들 또한 어떻게 반드시 지킬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혼자서 매우 걱정한다.(答黃仲舉書却云南北鉅患不朝卽夕한대 而環顧在我하면

 無一可恃하니 則山林之樂인들 亦豈必可保以是私憂竊歎하니라)”는 글이 생각나서

 이익(李瀷) 선생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

퇴계의 선견지명(退溪先見)”을 옮겨본다.

 

옛날 태부(賈太傅)가 통곡할 일과 눈물 흘릴 일에 대한 상소를 하였는데,

상론(尙論)하는 자들이 너무 지나쳤다고 하였으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천하의 일은 워낙 행과 불행이 있어서, 비하건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혹 담을 튼튼히 하지 않거나 주밀하게 지키지 않으면,

남이 반드시 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하게 되는데, 그 뒤로 그렇겠다는 것을 깨달아

 점점 스스로 잘 경비하면 면하게 된다.

면했으면 다행한 일이지 처음 말하여 준 자가 그른 것은 아니다.

() 나라의 일이 진실로 제후국(諸侯國)을 일단 분열시키지 않았더라면

 가태부(賈太傅)의 말이 반드시 맞았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에 이르러 소강(小康) 상태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퇴계(退溪) 선생은 황중거(黃仲擧)에게 답한 편지에 이르기를

 남북(南北)의 큰 환란이 아침이 아니면 저녁에 곧 닥칠 터인데,

우리의 방비를 돌아보면 믿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산림(山林)의 즐거움인들 또한 어떻게 반드시 지킬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혼자서 매우 걱정한다.하였다.

 

조야(朝野)가 편안한 때를 당하여 선생이 홀로 이런 말을 하였으니,

모두들 반드시 오활(迃猾)한 선비가 으레 하는 말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40년이 못되어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있었고,

 인조(仁祖) 초에 이르러서는 국세(國勢), 무너진 집, 물이 새는 배와 같아서

곧 망할 지경이었는데도 오히려 마침내 도탄(塗炭)에 빠질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제 생각하여 보면 퇴계(退溪)의 근심과 탄식이 필경 모두 들어맞았다.

 

소동파(蘇東坡)가 이르기를 천리 밖을 염려하지 않으면, 환란이 눈앞에 닥치게 된다.

눈앞에 닥쳐서야 뉘우치는 자는 말등(末等)의 사람이다. 세상의 일시적 향락을 탐내는

 자들은, 그물에 걸린 제비나 가마솥에 든 물고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으니,

 퇴계(退溪)의 산림의 즐거움도 보전할 수 없다는 말이 또한 가슴 아프고 탄식하기에

만족할 만한 것이다.

 계책(計策)이 조정에서 잘못되었는데 그 해는 백성에게 덮쳐서,

구렁에 빠지고 고통에 빠진 자가 모두 죄 없는 사람이었으니,

 이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겠는가?

 

우리 같은 서민들은 어디를 갈 것인가? 우리 손으로 뽑은 사람들이 하는 일들을 보면

 과연 잘 뽑아서 나라를 맡길 만 하다는 생각이 들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 모습에서 이러한 물음을 한다는 자체가 우스울듯하다.

. 타령만 할 때가 아니다.

우리가 하는 예절공부를 알뜰히 하여 내일의 밝은 해를 자신 있게 쳐다볼 수 있는

 사람들을 陶山우리禮節院이 앞장서서 만들어보자. 이렇게 하라고

새해가 밝아온 것일 게다.

 

賈太傅 : () 나라의 가의(賈誼)이다. 20세에 박사(博士)가 되었고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를 지냈는데, 33세에 죽었다.

그가 양 회왕 태부(梁懷王太傅)로 있을 때에 상소한 통곡할 만한 것이 하나요,

눈물 흘릴 만한 것이 둘이요, 길이 탄식할 만한 것이 여섯이다

.[痛哭者一流涕者二長太息者六]”는 글이 매우 유명하다.

尙論 : 옛사람 행사(行事)를 거슬러 올라가서 논하는 것.

孟子』 「萬章下에 나오는 말이다.

黃俊良(1517~1563) :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중거(仲擧),

호는 금계(錦溪).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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