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蘭雪軒) 허씨(許氏)는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딸이요,
반역한 허균(許筠)의 누이이다.
그는 아름답고 지혜롭고 어려서부터 시(詩)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혼인할 나이에 이르러 한림(翰林) 벼슬을 하는 김성립(金誠立)에게 시집을 가서
서로 정(情)이 좋고 아주 돈독하게 살았다.
세상에서는 이른바 인간 세상에서 김성립(金誠立)과 이별하면
지하에서 두목지(杜牧之)와 만나는 것을 원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허균(許筠)을 더럽히려는 일부러 한 무고(誣告)가
그 누이 난설헌(蘭雪軒)에게 미쳐 그를 더럽힌 것이다,
김성립이 일찍이 남호(南湖)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는데,
허씨(許氏)가 시(詩)를 지어 보내 말하기를,
燕掠斜簾兩兩飛한대 재비는 처마 밑에 깃들여 쌍쌍이 날며
滿庭花落雨霏霏하네 뜰에 가득히 핀 꽃은 봄비를 맞고 떨어지네.
洞房盡日傷春意나 독수공방(獨守空房)에서 종일토록 봄꿈으로 애태우나.
草綠江南人未歸 푸른 잎이 핀 봄날에 강남에 간 님은 돌아오지 않는구나.
라고 하였다.
그가 지은 유선사(游仙詞), 새하곡(塞下曲) 등의 시(詩)는
비록 당송(唐宋) 때의 시(詩)를 본든 것이 많으나 역시 천재이다.
그 광한전(廣寒殿) 상량문(上樑文)은 그 당시 사람 입에 오르내렸으며,
그것이 중국에 까지 들어가서 청(淸)나라 사람 우서당(尤西堂) 등은
외국의 죽지사(竹枝詞)를 지을 때 조선(朝鮮) 여도사(女道士) 허경번(許景樊)의
일절(一節)이라고 읊은 것이 있다.
대개 경번(景樊)이라 할한 것은 죽어 지하에서 두목지(杜牧之) 만나기를 원한다는
글귀를 가지고 억지로 이를 이름하여 경번당(景樊堂)은 그를 욕되게 함이니,
이는 대개 경박(輕薄)한 자의 험구(險口) 기운이었다.
그런데 청(淸)나라 사람들은 이를 진실로 믿고 이름으로 허경번(許景樊)이라 말하니,
이는 가히 부녀자들이 시 짓는 것을 자못 경계함이 있다.
허씨는 일직이 시(詩)를 지어 말하기를
“芙蓉三九朶ㅣ 부용(芙蓉) 꽃 스믈 일곱 떨기가
紅墜二月花 이월(二月)의 꽃밭에 붉게 떨어졌구나.”
라고 했는데, 그는 27세에 죽었으니, 어찌 귀신의 운명을 예측한 시(詩)가 아니겠는가?
(蘭雪軒 許氏는 草堂曄之女ㅣ오 逆筠之妹也ㅣ라 美而慧하야 自少以詩聞於世하니라
及笄嫁金翰林誠立하야 情好甚篤하니라 世에는 所謂人間願別金誠立하면
地下相逢杜牧之者한대 汚筠之故誣ㅣ 及其妹而汚之也ㅣ니라 誠立嘗讀書南湖한대
許氏寄詩에 曰燕掠斜簾兩兩飛한대 滿庭花落雨霏霏하네 洞房盡日傷春意나
草綠江南人未歸하네 其所著游仙詞와 塞下曲諸詩는 雖多唐宋間詩偸襲하나
然ㅣ나 盖天才也ㅣ니라 廣寒殿上樑文은 膾炙時人하며 至入中國하야 淸人尤西堂侗은
作外國竹枝詞할새 有詠朝鮮如道士인 許景樊一節ㅣ라 盖景樊云者는
以地下願逢杜牧之句로 强名之하야 曰景樊堂以辱之니 盖輕薄子惡口氣也ㅣ니라 淸人은
認以爲眞하고 名之曰許景樊ㅣ라하니 此는 可爲婦女輩作詩之戒也ㅣ니라
許氏는 嘗有詩하야 曰芙蓉三九朶ㅣ 紅墜二月花로라 果卄七而卒하니
豈非詩讖歟아) ~ 徐有英 『금계필담(金溪筆談)』
※참고
난설헌(蘭雪軒) 허씨(許氏)1563년(명종 18년)~1589년(선조 22년) : 조선 선조 때 유명한 여류시인. 이름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본관은 양천(陽川). 허엽(許曄)의 딸이고
허균(許筠)의 누나. 김성립(金誠立)의 아내.
경번(景樊)이라는 자(字)는 난설헌(蘭雪軒) 자신이 중국에서 옛부터 전해져온 여선(女仙)인
번부인(樊夫人)을 사모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난설헌(蘭雪軒)이라는 호의 유래는 직접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고 다만 난초(蘭)의 이미지와
눈(雪)의 이미지에서 지어진 것이라 추측이 있다.
2. 허균(許筠) :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학산(鶴山)·성소(惺所)·
백월거사(白月居士). 아버지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서 학자·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엽(許曄이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허성(許筬)이 이복형(異腹兄)이다.
문장가인 허봉(許篈)과 난설헌(蘭雪軒)과 형제이다. 학문은 유성룡(柳成龍)에게 배웠다.
3. 김성립(金誠立 1562(명종17)∼1592(선조25) : 조선의 문신. 字는 여견(汝見)·여현(汝賢)
, 호는 서당(西堂), 교리(校理) 첨(瞻)의 아들.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남편이다.
4. 두목지(杜牧之) : 중국 시인.
5. 남호(南湖) : 용산 부근의 한강을 일컫는 용산강의 별칭이다.
6. 광한전상량문(廣寒殿上樑文) : 조선 중기 허난설(許蘭雪)이 1570년에 지은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다.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지었다고 믿기 힘든 이 상량문을 짓고
여 신동이라 칭송되었다.
이것은 목판본 『난설헌집』에 유일하게 전하는 산문으로
그의 아우 허균이 1605년 충천각에서 석봉(石峯) 한호(韓濩)에게 부탁하여
그의 글씨로 써서 1차로 간행되었다.
7. 죽지사(竹枝詞) : 중국의 악명(樂名)으로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이다.
본래 파유지방의 노랫 조로 촉도지방 사람들이 즐겨 부른 것인데,
후에 그 지방 민요풍의 가사만을 지칭하는 데 그치지 않고 7언 절구로서
지방 특유의 자연이나 인사를 향토색 짙게 읊은 시가를 모두 “죽지사”라 일컬었다.
8. 허경번(許景樊) ;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자(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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