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을 찾아서

오토산 2017. 6. 23. 11:13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590

 

 

봉화 닭실마을 청암정을 찾아서

 

 

충재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 좌측에 위치한 청암정을 찾았다.

 

닭실마을은 충재선생의 5대조가 안동에서 옮겨와 자리잡아 충재 아래로

번창하여 '유곡권씨'라 불리기도 하고 조선시대 문과 16인, 소과 59인, 참판 2인

방백수령 12인, 의병장 2인을 배출하였고 광복이후 국회의원 2인, 차관 2인이

배출되었고 문집과 유고를 남긴 선비가 90인이나 되며 충재의 5대손에 이르러

二十八斗라 하여 두자항령 28명이 도학과 문필로 크게 알려졌고 재주가 기절한

여섯사람(5대손 5대손 苛塘 權斗寅의 문장, 5대손 蒼雪齋 權斗經의 시, 5대손

大拙子 權斗應의 글씨, 6대손 江左 權萬의 재주, 7대손 平庵 權正의 충성,

7대손 松館子 權正敎의 그림)을 6奇라 불리기도 한다.

 

靑巖亭은 충재선생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학문과 휴식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고자 건립한 정자로 丁자형 평면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안에 마루방을

내고 앞뒤로 반칸정도 돌출하고 북서쪽만 폐쇄하고 3면은 개방되었디.

 

 충재선생이 석천계곡을 통하여 마을로 오다가 보니 위치가 좋아 거북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구암정사'라 했으나 구들방에 불을 때니 바위가 '윙윙'거리며 울어

꿈자리가 어지러워 노스님에게 물었더니 거북이가 물도 없고 등에서 불을 피우니

뜨거워서 그렇다는 이야기하여 아궁이를 막고 정자 주변에 둑을 쌓아 연못을

조성하니 괜찮았고 그 후 아들 권보가 본인의 호를 따서 '청암정'으로 고쳤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정자에 걸린 '靑巖水石'이란 편액은 조선중기 명필인 미수 허목(1595~1682)이

청암정을 그리다가 노구로 오지는 못하고 편액을 써서 보내고 누워 3일후

돌아갔다는 88세에 마지막으로 쓴 절필로 알려진 편액이라 전하고 있다.

 

沖齋(1478~1548)선생은 조선중기 문신 학자로 본관은 안동, 호는 충재.

훤정.송정이며 안동 북후면 도촌리 외가에서 태어나 27세인 연산군 10년에

대과급제 하였으나 연산군에게 직언을 올렸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김처선의

이름자인 處자가 글에 잇다는 이유로 취소되었다가 3년뒤 1507년 다시

급제하였으며

 

1518년 도승지 예문학직제학을 거쳐 1519년 기묘사화 연루로 파직 귀향하여

15년간 지내다가 1533년 복직,  명나라사신,용양위부호군,밀양부사,한성부좌윤,

경상도관찰사,형조참판을 거쳐 1545년(명종원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衛社功臣에 책록되어 吉原君에 봉해졌으나 9월 우의정 이기와 우찬성 정순봉에 

의해 削勳되고 10월 사헌부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고 1547년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구례로 유배되고 삭주로 이배되어 이듬해 세상을 떠나 1567년

 신원(伸寃)되었고 1568 좌의정 추증되고 1591년(선조 24)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정이다

 

 청암정 대청에서 청암정과 석천계곡을 연결하는 구간을 전체가 너럭바위로

토심이 얕고 청암정주변에 흙을 쌓고 나무를 심어 나무가 잘 자라지 않으며 

전국  760여정자중 103개의 정자가 봉화에 있는 경관이 좋은곳이며

사면이 터져있으면 정자, 방이 딸려있으면 정사라 부른다는 설명을 듣고

영조대왕 어제대학서 하며 시간을 보내고 봉화 은하숯불회관에서

봉화 한약우로 점심을 먹고 바래미마을 답사를 하였다.

 

세상사 한마디

조선시대 수라상은 왕 혼자 배부르고 맛나게 먹지 않으며 백성과 더불어

나라에 변고가 있을때는 근신하며 반찬가짓수와 식사횟수를 줄여 감선(減膳) 

 백성들이 오랜 가뭄과 홍수로 시달릴때는 고기반찬을 안 먹으며 철선(撤膳) 
신하들이 당파싸움을 할때 다스리기 위해 수라를 들지 않고 각선(却膳)하며

자신의 입과 위장을 통해 세상을 돌아보는 행위를 지향하였다고 한다.

 

 

 

 

 

 

석청계곡으로 가는 계곡

 

 

 

 

미수 허목의 절필 '청암수석'

퇴계선생의 시판

 

 

 

 

 

 

 

 

 

 

 

 

안동시청 정문에 그려진 시화(매화)와 시조(까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