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국학아카데미 연수생들이 진주성 탐방을

오토산 2017. 10. 16. 23:07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860

 

 

국학아카데미 연수생들이 진주성 탐방을

 

 

 

진주박물관 관람을 마친 우리들은 진주성 탐방을 하기로 하였다.

 

晋州城은 진주는 삼국시대 백제땅으로 신라와 접경지역으로 전략요충지로

고려시대 남해안의 왜구섬멸기지 역할을 하였고 조선시대 영.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요충지로 도호부가 설치되고 경상우병영 역할을 하여왔으며

진주성은 백제때 건설, 고려 공민왕때 7차례 중수되면서 왜구방비기지로 사용,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시민장군이 성채를 보강하여 왜군 2만5천명을

 막아 任亂三大捷중 한곳되었고 1593년 6월 왜군 10만명과 2차전투를 벌였고 

논개가 적장과 투신하였으며 1605년(선조38) 兵使 이수일이 너무 넓어 진을

 성내로 옮기고 내성을 구축하고 1608년 병사 김태하가 砲樓 12개를 증축하여

  내성 1.7㎞와 외성 41㎞로 1963.1.21.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北將臺는 진주성 북쪽 內城과 外城의 병력을 지휘하던곳으로 鎭南樓라 불렀고

임진왜란때 불타없어진것을 1618년 병사 남이홍이 중건하고 1964년 중수하였으며

주변에 일상의 생활양식이나 관습등 민속적인 내용을 그린 民畵燈이 많이 있었고

嶺南布政司는 경상남도관찰사의 선화당의 관문으로 望美樓라 불렸으며 

1618년(광해군10) 병사 남이홍이 건립, 1895년(고종32) 8도제 폐지로 진주관찰부

관문으로 사용되다가 1925년 도청이 부산으로 갈때까지 관문으로 사용되었다.

김시민장군의 동상을 돌아서 정충단에 구경하였다.

 

정충단은 1686년(숙종12) 제2차 진주성싸움에서 충절을 다한이들을 위해 촉석루

동쪽에 마련한 재단으로 최근에 만들어진 晉州城壬辰大捷  癸巳殉義壇 있었고

앞쪽 광장에는 3장사라 불리는 金千鎰, 黃進, 崔慶會 그들과 함께 싸워 장열하게

순국한 군민들을 영령을 기리는 촉석정충단비가 있었고

 그 옆에는 제1차 진주성싸움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장군 전공비있었다.

 

우리는 진주성을 돌면서 진주시가지의 모습도 볼수있었고 유등축제의 다양한

燈들도 볼수 있었으며 진주가 12백년동안 경상우도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였고

경주를 본향으로 하는 성씨가 97, 진주 81, 전주 78등 본을 진주로 쓰는 성씨가

많으며 경남의 국립대 4개중 3개가 진주에 있다는 이야기와 김시민장군의

 시호인 충무시호를 받은사람은 고려시대 3,조선시대 9명이 있다는 이야기등와

진주성 복원을 위하여 천억을 투자하여 보상중이라는 이야기도 들으며

촉석루를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삶은 만들어진 운명이 아니라

내가 만들며 풀어가는 숙제라 하니

근심은 바람이 씻어주고 잡념은 구름이 걷어가는

오늘도 근심과 잡념에서 벗어나느 하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