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거경대학에서 원구리 난고종택을 찾아서

오토산 2017. 12. 2. 07:13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0977

 

 

거경대학에서 원구리 영양남씨 난고종택을 찾아서

 

 

목은기념관을 돌아보고 원구리에 난고종택을 찾으니 종손님이 반가이 맞으며

집안에 대한 설명을 하여 주셨다.

 

英陽南氏 蘭皐宗宅은 난고의 장남 성균관진사 安分堂 南佶이 1624년

사당을 먼저 세운 다음 종택을 건립하였으며 400여년 종손이 직접 거주하지

않은적이 없었다 하며 3천평대지에 'ㅁ'자형 안채와 사랑채 만취헌이 있고

앞마당에는 400년생 백일홍이 집안의 내력을 전해주고 있었다.

 

뒷편에는 난고정과 大廟와 遞遷位別廟와 廚舍가 있었으며

별묘사당은 불천위 두분을 모실때 별도로 사당을 지어 모시는 경우는 있었으나

이 곳은 종손이 승계되고 나서 종손의 숙부나 종숙이 살아 계실때에

그 분들의 아버지 신위를 매혼하지 않고 별묘에 모시면서 그분들이 참배

하시도록 모셔둔 사당으로 또 다른 孝정신을 배울수 있는 곳이었다. 

 

蘭皐 南慶薰(1572~1612)선생은 영해입향조 남수의 6대손으로 임진왜란때

의병을 규합하여 토벌한 공으로 朝散大夫 판관을 지낸 남의록의 아들로

유일재 문인으로 鄕試에서 壯元, 進士試에 합격하고 벼슬에 뜻이 없어

고인들 典籍을 읽고 禮學에 대한 연구를 하다 20세에 부친과 함께 의병으로

경주성전투, 영천성전투, 하왕산전투등에 참여하였으며 41세때 아버지 대신

옥살이 후유증으로 운명하였고 1756년(영조32) 영남유림의 공의로

1804년(순조 4) 光山書院에 제향되면서 영양남씨 유일의 불천위 모셔졌고

아들 안분당 남길은 진사, 증손자 만취당 남노명은 대과에 급제하면서

진사 28명 문과급제 8명이 배출되어 忠孝의 문벌가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종택을 두루 돌아보며 나서는데 부산에서 손님들이 찾아왔고

우리는 종손님께 감사드리고 나와서 종가앞에 2010년 남병혁씨의 기증으로

 경복궁안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에 해체, 이전, 복권된 悟村宅이 있던

자리를 돌아보고 무안박씨 경수당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지네(蜈蚣)은 발이 많으나 뱀(蛇)를 따르지 못하고

닭(鷄)은 날개는 크나 나는것은 새(鳥)를 따르지 못하며

말(馬)은 하루에 천리를 달릴수 있으나 사람이 타지 않으면 가지 못하고

사람은 구름을 능가하는 뜻이 있어도 運이 따르지 않으면 이룰수가 없다.

세상사 운명이거늘 생각하고 오늘도 욕심없는 하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