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경주 교촌마을에서 최부자집과 월정교를 다녀와서

오토산 2018. 5. 4. 13:24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306



경주 교촌마을에서 최부자집월정교를 다녀와서



대릉원을 나와서 교촌마을에서 최부자집과 월정교를 답사하였다.


경주최부자집은  조선중기 최언창이 내남면 이조리에서 교동으로 이주한

1770년 건립되어 12대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녔고 9대에 걸쳐 진사를 지내면서

99칸의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일부만 남아있고 도덕적 의무와 관용을

몸소 실천하여 온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쪽의 향교를 배려하여 집터를

 두계단 낮추고 기둥을 낮추는 배려도 있었다고도 전하며

재산을 만석이상 늘이지 마라, 진사이상 벼를을 하지마라, 흉년에 땅을 사지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백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하라,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으라 는 여섯가지 훈육이 전하여 왔다고 한다.


문파 최준(1884~1970)은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의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였고 해방후 모든 재산을 기증하여 계림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하여 현재 영남대학교의 재산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


월정교(月精橋)는 경덕왕 19년(766) 왕궁인 월성에서 남쪽을 연결하는 교량

(월정교)을 이용하였다는 기록과 고려 충렬왕 6년(1280) 중수기록(길이 63m,

너비 12m, 높이 5m, 교각거리 13m)이 있으며

원효가 '어느 누가 자루없는 토끼를 내게 빌려주려는가?

나는 하늘을 떠 받칠 기둥을 찍으리라'는 노래를 부르며 다리를 걸어다녔고 

무열왕이 과부인  딸(요석공주)과 인연을 맺어줘 설총을 낳았다는 전설이 전하는

 신라시대 가장 화려하였던 누각형 다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하며 고증을 거쳐 내년에 복구를 완료한다고 한다.

원효(元曉 617~686))는 신라고승으로 속성은 설씨 속명은 서당이었고

 경산시(압량군 불지리)에서 태어나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서 수학하였고

 '공동묘지에서 해골바가지의 을 마셨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최부자집을 돌아보며 최부자 배려와 관용의 정신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도

지켜져 가기를 바라며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월정교를 돌아

점심식사를 위하여 한우리가든으로 가는길에는 장차장님이 미리 밥을 먹지말고

떡갈비가 나오거든 함께 먹으라는 안내까지 친절하게 해 주었다.

점심을 먹은후 우리는 불국사 답사를 하였다.


세상사 한마디

미식가는 음식은 입에서 맛을 느끼고 그 기분이 가슴에 전달되어

소화과정을 원활하게 하므로 음식 맛은 중요하다고 하고

무식가는 배속에서 썪이면 똑 같은데 입속에 머무는 10초를 못참아

맛이 있느니? 없느니? 떠들고 있다고 한다

음식은 맛도 중요하지만 분위기가 즐거워야 ~~~

























월정교에서 내려본 교촌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