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거경대학에서 영양 연당마을 서석지를 다녀와서

오토산 2018. 5. 22. 10:11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338



거경대학에서 연당마을 서석지를 다녀와서



선바위가든에서 점심을 먹고 강변을 나섰더니 반변천 긴 물줄기가 깍아세운

석벽을 끼고 흐르고 같은산 서편에서 흐르는 청계천(靑溪川)이 두 절벽에

맞닿아 높이 솟아있는 아래에서 합류하여 큰강을 이루고 있으니 이곳 강변을

남이포(南怡浦)라 부르고 절벽과 강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바위를 깍아

세워 놓은것 같은 석순(石筍)이 우뚝 솟아 있으니 이것을 선바위(立岩),

신선바위(仙岩)아라 한다는 강변을 구경하고 연당마을 서석지를 찾아갔다.


서석지(瑞石池)는 담양의 소쇄원과 보길도 부용원과 함께 조선시대 민가의

3대정원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광해군 5년(1613)에 石門 鄭榮邦선생이

 자양산(紫陽山) 남족에 자리잡아 방지(方池) 북단에 주일재(主一齋)는

운서헌(雲棲軒)이라 편액하고 서편에 경정(敬亭), 뒤쪽에 수직사를 두었고

연못 북쪽에는 네모난 단을 만들어 매화,국화,소나무,대나무를 심은

사우단(四友壇), 동북쪽에 물이 들어오는 읍청거(揖淸渠), 서남쪽 물이

나가는 토예거(吐穢渠)라 이름하고 울퉁불퉁 솟아난 60여개의 서석들은

선유석(仙遊石),통진교(通眞橋),희접암(戱蝶巖),어상석(魚狀石),

옥성대(玉成臺),조천촉(照天燭),낙성석(落星石)등 이름을 붙여졌다고 하며

경정에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래정싸 석문공파 자료 3건23권459장과

서석지국가민속문화재지정서가 게시되어 있었다.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 1577~1650)은 용궁현포내리(현 풍양면우망리)에서

태어나 다섯살때 아버지를 여읜후 종숙부인 정조의 양자가 되어 안동 송천으로

이사하였고 정경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60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36년

연당마을로 들어가 산림처사로 생활하며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을 바탕으로

 음양오행설에 따라 자연그대로의 소박함을  표현하여 자형경관과 자연현상및

목석초화 각자에 이름을 붙이고 시를 지었는데 내원을 노래한 32수, 외원을

노래한 16수가 전하는등 50여수가 전하고 있으며 1650년 송천으로 들어와

읍취정(揖翠亭)을 지었고 지보면 도장리에 석문종택이 있다고 한다


해설사님은 영양(꽃영榮 볕양陽)은 꽃과 빛의 고을이라면서 꽃과 빛을 보고

살면 사람이 어질어 진다면서 연당리는 서석지에 연꽃이 피면서 연당마을로

 바뀌었다고 설명을 하였고 경정의 처마에 막새기와를 쓰지 않은것과

굴뚝을 낮게 설치한것도 겸양의 표현이라는 설명을 더 붙었다.

 우리는 상세한설명을 하여주신 해설사님과 문중대표님께 감사를 드리며

영양의 유일한 서원이라는 영산서원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경정(敬亭  敬亭雜詠三十二絶중 첫번째 詩)

有事無忘助(유사무망조)   일을 함에 잊지도 조장하지도 말며

臨深益戰兢(임심익전긍) 깊은연못에 임한듯 더욱 조심해야지

惺惺須照管(성성수조관)       깨어있어도 반드시 잘 다스려서

毋若瑞巖僧(무약서암승)       송나라 서암 승려처럼 되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