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봉화 춘양 만산고택을 다녀와서

오토산 2018. 7. 7. 13:44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443




봉화 춘양 만산고택을 다녀와서



오후 첫 답사지로 억지춘양의 고장 춘양면에 있는 만산고택을 찾았다

만산고택(晩山古宅)은 1878년(고종15) 만산 姜鎔(1846~1934)이 지은 집으로

 궁궐이나 관청자재로 사용하던 춘양에서 생산되는 소나무  금강송(춘양목)으로

지어졌고 만산의 선대는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대과에 장원급제 하신 후 성균관과 사간원에서 근무하였으며

 만산이 태어났을때 흥선대원군이 직접 호(晩山)를 지어주고

손수 글씨까지 써 주었다고 고손자 강백기 종손이 이야기 하였다.

 

행랑채가 딸린 솟을대문을 들어서니 사랑채가 있고 그 뒤로 'ㅁ'자안채가 딸려있고

 좌측에는 서실이, 우측에는 별당채인 칠류헌이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사랑채 뒤편과 이어져 안마당을 둘러싸고 안대청 왼쪽에 안방이

있어 사랑채는 동향이고 안방은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병당채인 칠류헌(七柳軒)은 '七'은 천지가 월화수목금토일을 따라 세월이 돌아오듯

국운이 회복되기를 바라고 '柳'는 우국충신이었던 송나라 시인 도연명이

자신의 집주위에 충성을 상징하는 버드나무 다섯그루를 심은데서 따왔고

서실(書室)은 고종의 아들 영친왕이 8세에 쓴 글씨 '글로 맺은 좋은인연'이란 뜻의

 '한묵청연(翰墨淸緣)' 액자가 걸려 있었다.


집안 전체가 야생화로 단장되어 있는 만산고택 주변을 돌아보고

칠류헌 대청에서 강백기 종손으로 부터 집안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감사인사를 드린후 나와서

억지춘양이 해방후 영동선 철로를 개설할때 지역 국회의원이 춘양을 거치지 않도록

 설계되었던 철로를 춘양역을 만들어 Ω모양으로 소재지를 바퀴 돌도록 한데서

유래되었다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봉화지역 답사를 도와주신 해설사님께 감사드리고 권정생동화나라를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왔네 왔네 나 여기 왔네    억지춘양 나 여기 왔네

햇밥 고기 배부르게 먹고     떠나려니 생각나네

햇밥 고기 생각나네  울고왔던 억지춘양   떠나려 하니 생각나네

<춘양지역의 작자미상 속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