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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이몽룡의 생가 계서당종택을 다녀와서
제10기 국학아카데미 회원들이 봉화지역 답사로 계서당종택, 지림샤, 닭실마을,
만산고택을 답사하고 안동의 권정생동화나라를 탐방하였다.
그 첫번째 답사지로 계서당종택을 찾았다.
계서당종택(溪西堂宗宅)은 물야면 가평리에 위치하고 이몽룡(성이성)기념사업회
현판이 걸려있었고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옆에서 태어나서 계서당이라 하였다고 하며
청백리로 추앙되던 성이성(成以性)이 1613년(광해군 5)에 지었다고 전하며
사랑채는 후대에 증축된것으로 추정되며 소나무숲 기슭에 남향으로 위치하여
바깥깥행랑채가 달린 'ㅁ'자형 평면구성으로 네개의 도장방을 배치하여
공간연결을 하여 놓은것이 특이하다고 한다.
계서 성이성(溪西 成以性 1595~1664)은 1610년(광해군 2) 진사가 되어
난세에는 벼슬에 나가지 않다가 1627년(인조 5)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고
1634년 사간원 정언, 홍문관 부수찬을 거쳐 1637년 사간원 헌납이 되어 윤방, 김류,
심기원, 김자점의 오국불충(誤國不忠)의 죄를 논하였으며 외직으로 진주고을을
다스릴때 어사 민정중의 선치(善治)보고로 표리(表裏 겉과 속 옷감)을 받았으며
강계고을을 다스릴때는 삼세(參稅)를 면제하여 백성들이 관서활불(關西活佛)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김굉필, 이연경의 학통을 이어 온 강복성의 문인이다.
권율 해설사의 안내로 계서당에 들어서니 소나무 고목이 사당을 향하여 절을 하고
13대 성기호 종손은 임금에게 충직하였고 백성에게 지혜로웠으며
공직에서 청백리로 깨끗하였다면서 이 종택은 사위집에 들렸던 닭실권씨 장인이
지어줬다고 다시 청백을 강조하였다.
종택을 나와서 돌아오면서 봉화 유일의 국보(201호)인 지림사를 들렸으며
7세기 신라시대 한절로 부근에 27개 사찰에 500여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고
높이 4.3m의 마애불과 뒷편을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고 곳곳에
작은부처를 구경하고 폐허되었던 사찰을 부처님의 현몽으로 찾아서
복원중이라는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닭실마을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樽中美酒千人血(준중미주천인혈) 두루미 안의 맛있는 술은 뭇사람의 피요
盤上佳肴萬姓膏(반상가효만성고) 판 위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며
燭淚落時民淚落(촉루락시민루락) 촛물이 떨어질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가성고처원성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도다
<성이성 호남 암행어사때 쓴 詩>
사당을 향하여 절을 하고 있는 소나무
지림사의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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