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기린의 뿔에 세워진 인각사를 다녀와서

오토산 2018. 9. 16.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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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뿔에 세워진 인각사를 다녀와서



김수환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을 나온 버스는 우보와 의흥을 자나 고로를 거쳐

한 시간을 달려서 군위댐 하류에 있는 인각사를 찾아갔다.


인각사(麟角寺)신라 선덕여왕때 원효대사가 세운 고찰려시대 크게

고쳤다고 전하며 지금은 도로변에 극락전과 국사전, 명부전, 산령각,요사채가

 있는 평지사찰로 북쪽에는 화산(華山), 북서쪽으로 옥녀봉지맥이 드리워졌고

사찰앞에 위천이 흐르며 북쪽에 학소대가 병풍처럼 둘러졌고

화산은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닮았으며

절이 앉은 자리가 기린의 뿔에 해당하는 자리 인각사라 이름지어 졌다고 한다.


극락전앞 삼층석탑은 신라탑의 양식을 이어받은 석탑으로 보기드물게 

상륜부가 남아 있어 탑의 양식과 구조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여겨지며

보각국사 정조지탑(普覺國事 靜照之塔)은 1289년(충렬왕 15) 입적한 보각국사

일연스님의 사리탑으로 삼단으로 되었는데 가운데부분에 동물조각이 흐릿하게

 남았으며 팔각형의 탑 전면에는 탑명이 새겨지고 뒷면에는 문모양조각이 있고

나머지 여섯면애는 사천왕 입상과 연꽃위에 서 있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하며

탑 옆의 석불좌상불신과 배(舟)모양인 광배가 하나의 돌에 조각되어 있고

머리카락 모양은 굵은 소라모양에 곱슬머리 형태이며 조각수법이

 10~11세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불상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보각국사 탑비일연스님의 행적이 기록된 탑비 입적한지 6년만인

 1295년(충렬왕 15)에제자 법진(法珍)이 세우고 당대 문장가 민지(閔漬)가

왕명을 받들어 지었고 죽허(竹虛)가 왕희지의 행서를 집자하여 만든것으로

 '겁화가 모든것을 살라 산하가 다 재가 되어도 이 비석은 홀로 남아

 이 글은 마멸되지 않으리"라는 구절로 끝을 맺었으나 임진왜란시

왜병들이 파손을 자행하여 부서진 비문 일부만 비각에 보전되어 있었다.

보각국사비재현비명은 2006년 일연스님 탄생 800주년을 맞아

보각국사비를 재현명부전 뒷편에 부도탑과 함께 세워져 있었고

명부전에는 미륵당에서 옮겨온 불상이 포장된채 쌓여 있었다. 


효성이 지극했던 일연스님은 78세때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개경에서

고려불교의 중심이었던 인각사로 내려왔고

일연스님의 부도탑과 비가 세워지고 침에 해가 뜨면

탑에서 광채가 나와 건녀편 모친산소를 비추었다고 전하며

 군위댐의 아름다운 풍광과 모친산소등을 걷는 산책로가 개발되어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관에는 일연스님의 행적과 1991년부터 발굴조사된 유물의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그 옆에는 보수중인 전각이 있었고

 발굴된 건물의 초석들을 보면  옛날 사찰의 크기를 짐작할수 있었다.


경내를 두루 다니며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은창숙 해설사는

석불좌상앞에서 우중에 문정희 시인의 돌아가는 길 낭송하며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의흥향교의 위패는 임진왜란때 선암산으로 피난시켜

향교는 소실되어 다시 지었으나 위패는 옛 위패를 그대로 모신다고  알려주며

우보에서 작별을 하였고 그 간의 수고를 하신 해설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함께 하신 모든분들께도 감사를 드리며 오늘의 답사기를 마칩니다.


세상사 한마디

돌아가는 길 < 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란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