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김종직선생생가 추원재를 다녀와서

오토산 2018. 10. 22. 23:31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681



김종직선생생가 추원재 다녀와서



오후 첫 답사지로 강호산인 김숙자(江湖散人 金叔慈)가 거쳐를 정하고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이 성장하고 별세한 곳인 추원재를 찾았다.


추원재(追遠齋)는 문과급제하여 관인으로 활약한 업적도 많지만 길재의 학통을 이어

성리학의 도통을 세우고 뿌리를 내리게 한 사상적 역할이 중요하였던 강호산인과

점필재 두분으로 인해 사림파 유학자들의 정신적 고향과 같은 곳으로

많은 유학자들이 찾아 추모를 기렸으나 낡고 허물어져

1810년에 사람과 후손들이 현재건물을 개조 중건하여 추원당의 당호를

도학의 의리정신을 전하였음을 기리는 마음으로 전심당(傳心堂)으로 하였다 한다.


점필재선생은 어머님을 봉양하기위해 지방관리를 원하여 함양군수로 근무하면서

 녹차가 생산되지 않는 지역에서 차(茶)를 공물로  바치기 위해 타지역에서 비싸게

 사서 납부하던 것을 휴천면 엄청강변에 관영녹차밭을 만들어 공물을 해결하였고

점필재선생이 떠나자 군민들이 생사당(이은당)을 세웠다고 한다.

추원당을 나와서 뒷산에 2009년 중창한 점필재선생의 묘소를 답사하였는데

소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무오사화때 지금의 장소로 이장하고 여산 대호가 날마다 무덤옆에서 슬피울다가

죽은것을 사람들이 발견하여 장사지낸 인망호폐(人亡虎斃)란 비석이 있었고

의호총(義虎塚)을 만든후에 이 마을에는 도둑이 없어졌다고 한다.


추원재와 점필재선생의 묘소를 같이 하며 상세하게 설명을 하여주신 해설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우리는 국가대사시에 땀을 흘리는 표충비를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覆塊新苗漸欲岐(복괴신묘점욕기)  흙을 파 엎어 새로심은 새싹들 싹틔우려 하는데

提鋤愁見折田龜(제서수견절전구) 호미들고 근심스레 쩍쩍 갈라진 밭바닥 바라보네

挽槽運水旋渗漏(만조운수선삼누) 물길 끌어당겨 물을 대어도 금세 스며들어 버리네

誰解渠儂筋力(수해구농근력피) 그네들의 근력 고달품을 그 뉘라서 헤아려 줄거니

<가믐에 고통받는 농민들의 고통을 읊은 점필재선생의 詩    四月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