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신라진흥왕 척경비를 다녀와서

오토산 2018. 10. 30. 23:15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701




신라진흥왕 척경비를 다녀와서



오후 첫일정으로 만옥정공원에 있는 신라 진흥왕 척경비를 찾아갔다.


만옥정공원 입구에는 한국전쟁중 1950. 8.27. 함양과 거창을 점령한 북한군이

박진나루와 오향나루를 건너 교두보를 확보하여 대구를 포위하려 하였을때

미군제24사단과 제2사단의 치열한 역습으로 일진일퇴 하면서 9월15일까지

적 3개사단을 섬멸시켰던 불후의 공훈을 길이 빛내고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1959년 3월 31일 건립하였던 창녕지구전승비(UN전적비)가 서 있었다. 


만옥정공원 제일 높은 위치에 서 있는 신라진흥왕척경비(新羅眞興王拓境碑)는

순수비(巡狩碑)로 통칭되나 북한산, 황조령, 마운령에 있는 순수비처럼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말이 없고 높이 176㎝, 폭 175㎝, 두께 30㎝의

화강석 왕이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을 열거하여

인명과 관등(官等)을 새겼으며

단양의 적성비와 성격이 비슷하고 辛巳2.1.세운 것으로  561년(진흥왕22)으로

추정되며 3개의 순수비보다 앞서 건립했고 창녕 말흘리 85-4에서

1914년 발견되어 1924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척경비 아래있는 창녕척화비(昌寧斥和碑)는 높이 123㎝, 폭 46㎝, 두께 20㎝로

흥선대원군이 1866년(고종 3)에 일어난 병인양요에서 프랑스군을,

1871년(고종 8)에 일어난 신미양요에서 미군을 물리치면서 세운비로

"서양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음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요 화해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洋夷侵犯 非戰卽和 主和賣國)"는 내용은 큰글씨로

"만년에 걸친 자손들에게 경계하노니 병인년에 짓고 산마년에 세운다

(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는 내용이 작은글씨로 쓰여져

창녕읍교하리에 있던것을 광복후 이 곳 만옥정공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1914년 창녕초등학교 일본인 교장 하시모토가 발견하여 학계에 알려졌다는

진흥왕척경비와 척화비등 타 지방에서 보기 어려운 문화재를 보면서

뜻있는 시간을 보내고 충무사를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금은 불로 시험을 하고 여자는 금으로 시험을 하고

남자는 여자로 시험을 하라는 미국속담이 있다.

동서고금을 보아도 남자는 여자에 약한 동물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