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남한산성 트래킹을

오토산 2019. 3. 20. 10:46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1955




남한산성 트래킹



남한산성 행궁을 나와서 수어장대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수어장대로 올라가

성곽을 따라 남문을 거쳐 중앙주차장으로 내려오는 트래킹을 하였다.


등산로는 부직포로 덮혀진 완만한 길이었으며 입구를 들어서니 한국전력직원들이

산불예방 켐페인을 하면서 황사마스크와 물티슈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술에 취한사람이 앉아 있으면 시원함을 느껴 술이 깬다는 취성암(醉醒岩)을 지나

성곽을 오르니 건너편에는 아파트가 밀집된 시가지가 보였고 한참을 걸으니

제6암문이 있고 그 위 봉우리에 수어장대와 청량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6암문(서암문西暗門)은 성곽의 비밀통로로 1627년(인조15) 1월 23일 한밤중에

습격해온 청병을 크게 물리쳐 부근을 '서암문파적지'라 부른다고 한다.


청량당(淸凉堂)은 성벽 쌓을때 경비를 탕진하고 공사에 힘쓰지 않았다는 모함으로

억울하게 죽은 이회장군을 위해 세운사당으로 부인과 벽암대사가 모셔져 있고

 1960년대는 도당굿을 하였다고 전하며 입구에 향나무가 아름다웠다.


수어장대(守禦將臺)는 5개대중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1624년(인조 2)에 장수의

지휘와 관측을 위하여 세워졌고 1751년 유수 이기진이 영조의 명령으로 2층으로

지은후 외부편액을 수어장대로, 내부편액을 '병조호란때 인조가 격은 시련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후 북벌을 꾀하다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말자' 무망루(無忘樓)라 걸었다. 


수어장대 사진은 1892~3 조선주재 프랑스영사로 근무한 르랑뎅이 찍은사진으로

1900.4.14~11.12 열린 파리만국박람회의 엽서이미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하며

수어장옆에 1953(단기4286). 9. 6. 이승만대통령 기념식수한 나무가 있었다.


수어대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더니  별미였다.

점심을 먹고 성곽을 따라 내려오며 4대문중 가장 크고 웅장하다는 남문(至和門)

거쳐 중앙주차장으로 내려오는데 '먹어야 산다'민속주점 간판이 눈에 띄었다.


주차옆에 신해박해(1791)부터 산성에 투옥되어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를 거치면서 약 300명이 순교한 순교자현양비가 서 있었고

감옥이 순교지가 되고 시신을 동문밖으로 버려 피가 물처럼 흘러 수구문,

시구문으로 불리기도 하였다고 하며

우리문화를 크게 발전시키고 앙양하자(발양문화)와 일편단심으로 오로지 나라을

위하며 충성을 다하자(단성부국) 새겨진 해공 신익희(海公 申翼熙)선생동상

돌아보고 하산주로 마무리하고 안동으로 돌아왔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온조왕이 토성을 쌓은 곳이라고도 하며

삼전도에서 청태종에 항복하여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한 인조의 아품이

남아 있으며 임진왜란후 승병조직을 전란에 이용하기 위해 8도 승병주둔지로

역할을 한 호국불교의 성지로 주변에 사찰이 많다고 한다.


군대생활을 할때는 남한산성에 가면 계급장을 반납한다고 하였는데

오늘은 백수들의 여행이라서 그런지 계급을 잃고 온 사람은 없었다 ㅋㅋㅋ


오늘 산행을 주관하신 집행부와 함께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안전운행을 하여주신 사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까지 건강하시길~~~


세상사 한마디

가만히 소리없이 웃는 미소(微笑)  손뼉치며 웃는 박장대소(拍掌大笑)

입가에 머금는 함소(含笑)   깔깔대며 뒤집어지는 가가대소(呵呵大笑)

저도 몰래 나오는 실소(失笑)   큰소리로 웃는 홍소(哄笑)를 즐기시며

차가운 냉소(冷笑 )  비웃는 조소(嘲笑)는 참으시는 하루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