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김구선생 머무시던 마곡사 백련암을 다녀와서

오토산 2019. 5. 22. 00:19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12078




김구선생 머무시던 백련암을 다녀와서



절기상 농사일이 바빠지는 소만(小滿)이고 둘이 하나가 되는 부부의 날인

5월 21일 안동행정동우회 회원 28명이 태화산 마곡사로 산행을 떠났다.


마곡사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백련암과 마애불을 탐방거쳐 태화산을 올라

활인봉 삼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와서 마곡사 탐방을 하였다.


마곡사를 지나 백련암을 오르는 입구에 국내유일의 불모비림이 있었다.

불모비림(佛母碑林)은  사찰에서 불화를 제작하고 불상을 조각하는 사람이나

사찰건축물 단청을 하고하는 사람들을 불모(佛母)라 불리어져 왔으며

여러지역의 불모들중에 마곡사는 남방화소(南方畵所)의 대표적인 곳으로

계룡산화파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금호불모(1845~1938)를 중심으로

크게 융성하였으며 정연불모(1882~1954), 보응불모(1867~1954) 등으로

화맥이 이어져 왔고 마곡사에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불모비림을 조성하여

금호, 정연, 보응, 일섭, 화응, 우일불모 등의 비를 세워 선대불모들의

업적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고 한다.


백련암(白蓮庵)은 임시정부 주석이며 독립운동가이신 백범 김구선생이

수행을 하시며 머무시던 암자라 하며 마곡사 주변에는 백범명상길이

많이 있다.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선생은 본관 안동, 자는 연상,

호는 백범으로 임시정부 경무국장을 거쳐 총무위원과 주석을 거쳤으며

1896년 명성왕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때려 죽인죄로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고종의 특사로 형집행을 정지하였으나 출옥하지 못하고 1898년 탈옥하여

하동 쌍계사에 피신하다가 마곡사에서 출가하여 원종(圓宗)이라는 계를 받고

승려가 되어 백련암에 머물다가 평양 대보산 영천암의 방주가 되었으나

1899년 환속하였고 1949년 경교장에서 안두희가 쏜 총을 맞고 서거했다.


암자 뒷편에는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마애불이 자연암반에 새겨져 있었고

암벽에는 다람쥐가 바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마애불 답사를 마치고 활인봉을 오르다가 천막이 쳐져있고

탁자와 의자가 있는 삼거리에서 둘러 앉아 점심을 먹었다.

김밥을 펼쳐 놓으니 각자가 재배한 무공해 포도, 참외, 사과, 오이, 파프리카 등

과일과 채소를 내 놓아서 푸짐한 밥상이 되어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 숲길을 걷다가 어제까지 비가내려 날씨는 맑고

솔숲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먹는 점심은 맛이 없을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마곡사로 내려와서 마곡사 탐방을 하였다.

함께 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식사시간에 무공해 과일과 채소를 가져오신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사람은 믿음과 함께 젊어지고 의심과 함께 늙어지며

 자신감과 함께 젊어지고     두려움과 함께 늙어지며

 희망이 있으면 젊어지고  실망하면 늙어진다고 하나

 비우니 행복하고 낮추니 모두가 아름답게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