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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를 다녀와서
2019. 5.24. 안동향교 장의와 감사 31명이 영월 청령포와
단양 스카이워크 탐방을 나서서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를 찾아갔다.
권오극 전교님은 장의들의 화합의 장을 마련하였으니 즐겁게 하루는 보내라며
오늘을 어덯게 즐겁게 보내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라고 하셨으며
박동균 사무국장은 향교는 지방의 학교이고 전교는 교장선생님이고
장의는 교직원들로 설명하며 향교의 발전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자고 하였으며
참석하신분들도 이런 자리를 마련하여주신 전교님과 사무국에 감사를 하였다.
청령포(淸泠浦)는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의 유배지로
동.님.북 삼면이 물로 둘러쌓여있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수 없는 마치 섬과 같은 곳이다.
단종(端宗)은 1441년 7월 23일 문종과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 사이에서
원자로 태어니 이름은 홍위(弘暐)였으며 1448년(8세)에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면서 왕세자로 책봉되고 1452년 문종이 승하하자
12세의 나이로 조선 제6대 왕에 즉위하였으나 1455년 6월11일 계유정란으로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되었으며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된 후
윤6월 22일 창덕궁을 출발하여 7일후인 윤6월 28일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그해 9월 금성대군의 복위를 꽤하자 다시 서인으로 내려지고
1457년 10월 24일 유시에 17세의 어린나이로 광풍헌에서 승하하였다고 한다.
매표소에 주차를 하고 나룻배로 건너니 울창한 송림이 펼쳐져 있었으며
1763년 영조대왕 친필로 음각된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止 :
단종이 이 곳에 계실때 옛터))라고 쓰여진 비각을 지나서
단종이 머물던 처소이던 단종어소(端宗御所)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그 당시의 생활과 지금 옥중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그리면서
비교하여 보기도 하였다.
유배생활을 할때 15세의 나이로 두갈래로 갈라진 소나무에 걸터 안장 쉬었다는
600년이 된 관음송(觀音松)을 지나서
뒷산에 올라 단종대왕이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쌍하 올린 단종의 유일한 유적인 망향탑(望鄕塔)과
유배중 해질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노산대(魯山臺)를 돌아보며
북쪽에 형성된 절벽과 건너편 들판들을 돌아보고 내려와서
1726년(영조 2)에 세워진 동서 삼백척 남북 사백구십척과 이후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까지 포함하여 일반백성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금표비(禁標碑)를
돌아보며 청령포 답사를 마치고 단양 도담삼봉으로 향했다.
무더운 날씨에 함께하면서 단종의 애환이 서린 청령포를 돌아보신
모든분들게 감사를 드리고 행사를 진행해주신 사무국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청령포 나루에는 때마침 찾아온 수학여행객들과 관광객들이 줄을 이어
강물은 흘러 청령포를 감아 돌고 관광객을 실은 나룻배는 왕복으로 돌고
나룻배 안의 손님은 바뀌어 가며 돌고 매표소에서는 돈이 돌고 돈다네~
모든게 돌아가는 세상!! 살기가 어렵다는 아우성도 빨리 돌아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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