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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에서 창수령을 넘어 안동으로
영해만세시장을 나와서 나옹선서 유적지를 구경하고 마당두들약수터에서 약수를 먹고
창수령을 넘어서 안동으로 왔다.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는 지공, 무학과 더물어 3대 화상으로 추앙받으며
고려말 공민왕과 우왕의 왕사로 책봉되었고 속성은 아(牙)씨, 초명은 원혜(元慧),
법명은 나옹, 거처한던 당호는 강월헌(江月軒)으로 인도고승 지공스님의 제자로
조선개국에 기여한 무학대사의 스승이며 창수면 가산리 불미골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금색새 한마리가 날아와 오색영롱한 알을 품속에 안겨주는 태몽을 꾸고
잉태하여 세금을 내지 못해 관가에 불려가는 도중에 출산을 하였으나 관리들이
애기를 그냥두고 십리가 넘는 길을 끌고갔으나 부사가 옷자락에 묻은 피를 보고
이상하게 여겨 알아보고 관리들을 꾸짖어 아이를 찾으니 죽지않고
수십마리의 까치들이 보호하고 있었는데 그 곳을 '까치소'라 한다.
21세 출가의 길을 떠나며 자신의 반송지팡이를 거꾸로 꽂아두고
'이 나무가 살면 내가 살아있는줄 알고 이 나무가 죽으면 내가 죽은 줄 알라'는
말을 남기고 문경 대승사 묘적암에서 요연선사에게 출가하였고
반송지팡이는 움이 돋아 600여년을 살다가 1965년 고사되었으며
영덕군에서 나옹선사 입적 632주기를 맞아 2008.10.21.정자(盤松亭)을 짓고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은찬하신 사적비를 세우고 반송으 심어
역사적 의미를 되세겼으며 인근에는 까치소, 불미골, 장육사 등이 있다.
나옹선사유적지를 지나서 계곡을 한참 오르니 옛 선비들이 한영가는 길에
말(馬)을 메어 놓고 쉬었다는 속설이 전하는 '마당두들 약수터'에서
약수를 한 바가지 마시고 창수령을 올랐다.
창수령은 영양읍 무창리와 창수면 창수리를 잇는 700m고개로
왕건에게 패한 궁예의 부하들이 울고 도망갔다는 설과
조선시대 백성들이 세금으로 바칠 곡식을 짊어지고 울면서 넘어간 고개라하여
읍령(泣嶺) 또는 울티라 하기도 하고 큰재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고갯길 넓은 공간의 쉼터에는 푸른숲 맑은물이란 새천년 기념석과
창수령 표지석이 서 있었고 정자도 있었다.
우리는 쉼터를 들렸다가 창수령을 넘어 푸른 숲과 전원의 풍경들과
유유히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의 여유로움을 보면서 안동으로 돌아 왔다.
함께 하신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하루종일 운전하신분게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료무애이무증혜)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선사 禪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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