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행사

인동장씨 남산파문중전시회를 다녀와서

오토산 2019. 8. 4. 18:23


http://blog.daum.net/uh512/12228

사진이 잘 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인동장씨 남산파문중 전시회를 다녀와서



한국의 서원 전시관을 나와서 옆에서  2019. 7. 3~2020. 2. 20까지

제16회 기탁문중특별전으로 전시되고 있는 인동장씨 남산파문중

 '실천을 꿈꾼 도덕군자' 전시장을 찾았다.


인동장씨(仁同張氏)는 고려 초 장금용(張金用)이 옥산(구미 인동)에 정착하면서

인동(옥산)을 관향으로 살게 되었고 고려중기에는 25개파의 대성으로 성장했으나

인동에는 종파, 남산파, 진가파, 진평파, 황상파 등 5개파가 고향을 지킨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문무를 겸비한 가문으로 위상을 드높였으며

조선시대로 접어들어 뛰어난 유학자를 대거 배출하면서 명문가로서 기틀을 다졌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은 유학을 비롯한 도학과 자연철학 등

 여러학설을 섭렵하면서 열여덟살에 우주요괄첩(宇宙要括帖)을 저술하여

일상에서 도를 실천하는 것이 학문의 기본이 되는 도통설(道統說)을 주장하였고

자신만의 독자적 이론을 수립하여 도덕중심의 경세적 입장을 기본으로 삼아

현실세계에서 도덕의 실천을 구현하고자 하였으며 인동장씨 남산파의

가학전통으로 이어졌고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 동락서원)과

죽장의 입암정사(立巖精舍 입암서원)에서 여문십철을 비롯하여

 350여명의 제자를 길렀고


사미헌(四未軒) 장복주(張福樞 1815~1900)는 예학을 심화 발전시켰고

 녹리서당( 角里書堂)과 구욱재(求勖齋)에서 7백여명의 제자를 배출하여

 '사미헌파'라는 문인집단을 이룩하였으며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1851~1926)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파리장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등 실천유학자로서 맹활약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처럼 인동장씨 남산파 사람들은 세속적 출세보다 인격완성을 추구하였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때 충절을 앞세우는 삶을 살아왔고 실천적 도덕군자로서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국학진흥원을 나와서 예끼마을에 있는 옛 현청사였던 장부당(掌簿堂)에서

빙설을 한그릇씩 먹고 예끼공방에서 목공예품을 구경하고 안동으로 돌아왔다.


오늘을 즐겁게 지낼수 있도록 운전을 하면서 함께하신분과

동행하여 주신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예안우체국은 1911.11.16. 예안우편소로 개소하여 1941. 1.31. 예안우편국.

1950. 1.12. 예안우체국으로 되었다가 1999.10. 1. 폐쇠되었으나

도산서부리 이야기가 있는 마을 조성사업으로 갤러리로 재탄생하여

오늘도  예끼공방회원전으로 목공예전시가 되고 있었다.

예끼마을이 활성화되어 안동댐 수몰민들의 아픔을 달래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