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월랑은 설고자 스님을 만나

오토산 2021. 2. 3. 20:17

금옥몽(속 금병매) <38>
월랑은 설고자 스님을 만나 오랫만에 환대를 받지만...

한동안 꼬꾸라 진체 널부러져 있던 장소교 부자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적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에이, 씨팔!

더럽게 재수 없내!"

장대가 허벅지에 박힌 화살을 뽑으며 아품 보다는 황금 덩어리를 빼았긴 것이 억울해 투덜 거렸다.
장소교는 다시한번 주위를 둘러보고 난 후에야 숲속으로 던져 넣었던 금낭을 가져 왔다,

대충 살펴보니 오십냥 정도는 될것 같았다.

"그래도 이만 하기 다행이야

, 목숨까지 건지고 이 금덩이도 은화로 바꾸면 사백냥은 족히 되니,

집에 몰래 빼돌려 놓은 것과합친다면 이천냥은 될터이니

죽을때까지 써도 다 못쓸 돈이라고 하며 자문해 보지만

마적들에게 뺏긴 생각을 하면 울화 통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면 내안이 마누라를 속일 묘안을 생각해 놓아야 했다.

지름길로 간다 하고 황천 길로 보내면서,

허튼 수작 부려봤자 도로아미타불이라.
세상 이치란게 이렇듯 공정하니,

죽 쒀서 개주려면 허리에 돈을 찻소!

 

한편 전 재산을 거의 몽땅 빼앗긴 오월랑은

이유도 모른채 실의에 빠져 당장 하룻 밤 묵을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참! 마님 설고자(薛姑子)라고 기억 하세요." 하고

풍씨 할멈이 말하자.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말하는 의도를 잘몰라 가만히 있자.

"관음암(观音庵) 비구니로 있던 설고자 말이예요." 하고 다시 말하자,

기억이 난다며 말한다.

"아! 관음암 주지로 있다가 지장암(地藏庵) 왕고자의 모함으로 쫒겨나

어디론가 가버린 비구니 아니던가?"
느닷없이 그 비구니 스님을 왜 물어봐.

예, 마님 제가 들은 소문에 의하면 이 근방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불력이 높고 마님이 시주도 많이 했으니 찾아 가면 문전 박대야 하겠습니까?
다른 무슨 뽀족한 수도 없는데 한번 찾아 가보고 다른 대안을 찾아 보지요!

월랑은 절에 가셔 있으면 우선 마음이 가라 앉을것 갔고, 머리도 깨운 해 질것 같았다.
대안이에게 알아 보라고 하자,

대안이가 인근 마을로 가서 수소문 해서 암자의 위치를 알아서 왔다.

"여기에서 동쪽으로 십여리 가면

그리 높지 안은 산속에 있는데 많은 보살들이 칭송 한다고 했다."

준비할 것도 없는데다 효가 녀석도 진정되어 잠이 들었으니

즉시 대안이를 앞세워 한식경도 되지 않아 암자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깨끗하고 그리 크지 않은 동네를 지나서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오솔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니 아담하고 단정하게 정돈된 암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맑고 푸른 불사(佛舎)의 아담한 승방(僧房),
선사(襌寺)의 수호신이 던가,
입구에 버티고 창연하게 선 측백나무.
작은 다리 밑의 맑은 시냇물 싸리문을 열고 살포시 들자

 

그윽히 퍼져오는 소나무 내음.
깊은 밤 달빛 아래 노승(老僧)이 문을 두드리듯,
불전(佛殿)의 타는 향불 앞에 보금자리 찾아온 길잃은 까치.

준제암(准提庵)은 오래도록 주인 없는 폐사로 방치 되어 있었으나,

설고자의 불력을 전해들은 아랫마을 주민들이 간곡하게 청하여 모셔 오게 되었다.
그 당시 설고자는 높은 불력으로 많은 신도들이 설고자를 따르자

인근 지장암 왕고자가 관음암에서 밤마다 음란한 일이 벌어 지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창피하기도 하지만 속인들에게 음해 당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준제암 근처 동굴에서 홀로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그를 알아보고

준제암을 맡아 불사를 번성케 하여 달라는 간곡한 청원에 오게 되었다.

 

그가 주지로 부임한 후
일년도 안되어 거의 다 쓰러져 가든 폐가를 이렇게 아담한 불전으로 부흥 시켰다.
그리고 흉흉하던 아랫마을의 민심도 순화되고

마을 사람들이 아침 저녁 필요시 와서 기도도 하고 스님들과 함께

불심도 닦는 마을의 구심점이 되었다.

월랑은 암자 앞에 서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없이 편해졌다.
강아지 한 마리가 멍멍 지으며 불당 뒷편으로 뛰어 갔을 뿐,

인기척이 전혀 없는 정적만이 평화를 대신하고 있었다.

풍씨 할멈이 사람을 부르러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월랑이 만류한다,

혹 스님들 수도에 방해가 될까봐 조심조심 걸어

잠시 돌 단석에 앉아 피로를 지우면서 아무 말도 없이 청아한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 나무관세음보살!
뉘신지 모르오나 우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갓 스므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가냘프고 앳띤 비구니 스님이 온화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월랑 일행을 안내 하였다.
불당 안으로 들어가자 월랑은 먼저 정성스럽게 부처님께 향을 올리고 삼배를 하였다.
비구니 스님이 절을 하는 월랑을 위해 목탁을 쳐 주었다.
불공이 끝나자 비구니 스님은 합장을 하고서는

"소승은 묘취(妙趣)라고 불러주세요" 하고는

보살 님들은 어디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
하고 물어 왔다.

월랑은 대답은 아니하고
"설고자 스님이 여기 계시온지요" 하고 물으니,

저의 스승님이 신데 지금 참선 수행 중이셔서 끝나는 데로 모셔 오도록 하겠습니다.
하면서 여기 그냥 편안하게 계 쉬고 계시지요, 저가 가서 전갈을 드리지요 한다.
그러고는 법당 뒤쪽 울타리가 쳐진 정깔하고 아담한 초가집 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설고자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나타나서는 월랑을 보자 깜짝 놀라며
"나무관세음보살!" 을 읖조리며

합장을 하면서 월랑의 손을 잡고는

"이 어지러운 난중에 어떻게 아시고 보살 님께서 이렇게 찾아 주셨습니까? 정

말 잘 오셨습니다." 하며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스님은 설흔이 휠씬 넘은 나이 일 진데 믿기지 않을 정도록 곱고 애띠어 보였다.
소옥이 안고 있는 효가를 보고서는

" 아니! 이게 도련님 아니오?

벌써 으졌한 모습이네요,

보살님의 부처님 공경의 은덕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

"그래 우리 소옥 아가씨는 아직도 짝을 못 구했나요." 하며

농 아닌 소옥의 아픈 마음을 콕 찌른다.
월랑은 설고자 스님이 너무나 반갑게 환대해 주니 걱정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스님은 그러면서 제자 묘취와 묘풍(妙风)에게 목욕물을 데우라,

수건과, 갈아 입을 옷을 준비하라,

저녁 공양을 마련하라는 등 비구니 스님에게 다그치자

월랑은 불쑥 찾아온 자신들 땜에 정신없이 바쁜 두 스님에

미안 한 맘이 들어 효가를 풍씨 할멈에게 맏기고 소옥과 같이 도울 려고 했더니

오히려 극구 사양한다.

 

오신 손님들이니 자신의 방으로 옮겨 차나 한 잔 하자며 안내했다.
스님은 차를 손수 정성 스럽게 달이며,

보살님이 제게 베풀었던 것에 비하면 아직도 저가 하여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하고 말하니

월랑은 어찌 할 바를 모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녹차와, 예쁘게 빗은 떡, 맛갈 스런 홍시,

꿀에 절인 대추, 곶감이 차려진 다과상이 나왔다.
체면을 모르는 효가녀석이 제지할 겨를도 없이

다가상에 붙어 앉아 걸식 들린 듯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아직도 스님을 알아 보는 모양이네요,

전혀 낮갈이를 하지 않으니, 원 녀석."
효가의 행동에 계면쩍어진 월랑이 설고자에게 쑥스런 웃음을 보이며

아들에게 장난 삼아 말을 건넨다.

"그렇게 좋으냐?

그럼 아예 여기서 스님에게 공부나 배우며 살려무나!"

아무 말 없이 효가는 열심히 먹기에 바뿌다.
농담 이지만 이 말이 씨가 된 탓인지 외아들 효가는 나중에

서문가의 대를 잇지 못하고 스님이 되고 말았다.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녁 공양 밥상이 들어 왔다.
설고자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이난리 통에

식사도 제 시간에 못하셨을 텐데 천천히 드시지요 한다.
밥상은 기름기가 짜르르 흐르는 쌀밥에 두부 졸임, 죽순 볶음, 무우채 무침,

이름모를 산나물들이 정깔하게 차려져 있었다.

"청하현 최고의 부잣집 보살님께서 이런 소찬이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며

설고가 말하자, 월랑은 수저를 들려 하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난리통에 집을 떠난후 처음 환대를 받고 사람에게서 나는 인정을 느꼈던 것이다.

공양을 하고 나자,

이번에는 호시절에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최고급 용정차(龙井茶)가 나왔다.
환담을 잠간 나눈 후 피곤하실텐데 일찍 주무시라고 말하면서

숙소로 안내 해주고는 설고자는 돌아 갔다.

 

안내된 방에는 은은하게 타오르는 향에서 향기로운 내음이 방안을 휘돌고 있었다.
침상에는 깨끗한 이불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침상 머리맡에는 불경이 펼쳐져 있었다.
벽에 걸린 달마도(达摩图)는 자신을 바라보는 듯 그려져 있는데 선취(禅趣)가 넘쳐 흘렀다.
월랑은 참으로 오랜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세상 인심 각박하여 달면 삼키고 쓰면 뱉아내니,
으지할 곳 하나없이 유랑하던 신세인데,
부처님의 은덕인가, 보시의 덕분인가?
따스한 절간 인심에 눈물젖는 오월랑.

많고 많은 세상 사람들 중에서도 돈이라 하면 물불을 가르지 않는 인간들이 있는데

특히 다음 세분류의 인간들은 아예 상종을 말아야 할 것이다.

첫째가. 기생들이다.
꽃값 주머니만 두둑하면 양반 상놈 안가리고 하루밤에 서방이요,

동지섣달 긴긴 밤에 만리장성 쌓아 봤자 꽃값 술값 떨어지면

하루아침에 문전 박대하고 상거지 취급은 하며, 또 다른 새서방 찾기에 몰두하는 분류들이다.

두번째는.

권세와 돈만 찾는 고대광실의 남의 인생 살아 주는 배우로써

얼굴은 연지곤지 떡칠하고, 오만가지 주워들은 겉지식으로 온갖 갑질 다하면서,

가련한 중생들을 개돼지 취급하니 이런 분류도 덕될께 없으니 아예 상종을 말지어라.

세번째가

제일 악덕인데 누구인가 하면, 부처님 팔아 사기치고, 불경구절 몇 글귀 외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입바르게 봉독하는 땡초 중들이다.

 

두둑하게 시주 하고 보시하면 년놈 구분없이 침을 질질 흘리고,

자식 점지 오매불망 치성기도 드리는 여염집 여자 꾀어내어 으슥한 골방에서

온갖 육봉 재미 씨뿌리며 부처님이 자식 점지 사기치고 남편 꼬득여서 재물 시주 받아내니

뻔뻔스러움은 배우 뺨치고, 음욕으론 기생오라비 보다 더하다.
당한 후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분류이니 첫째 둘째는 그래도 주고 받는 것이라도 있으니

세째 보단 양반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순박하고 순진하기만한 오월랑,

그져 감격에 겨워 눈물 콧물 다흘리니, 앞으로 세상살이 어떻게 흘러갈거냐?

참으로 걱정 난감한 일 일세!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