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월랑과 효가는 피난중 생이별을 하고

오토산 2021. 2. 13. 17:39

금옥몽(속 금병매) <47>
*월랑과 효가는 피난중 생이별을 하고, 그 바람에 대안과 소옥도 ...

짭디 짭은 베게머리 만리장성 야무진 꿈,
머언 훗날 깨달으니 한 줌의 먼지이네.
변화무쌍 인생만사 내일 일을 알 수 없어,
생(生)과 사(死)의 경계(境界)는 백지장 한장 차이.

황야에서 호랑 만나 하루 밤을 함께 자도,
정신 바짝 차리며는 전화 위복 따로 없네.
나팔꽃은 피고 지고 조석(朝夕)으로 바뀌는데,
하루살이 인생임을 어찌 그리 못 믿을까!

하늘과 땅이 뒤집어 진다는 것 이 무엇인가 !
이 전란의 혼동 속에서 권세와 재물에 피 맛을 본 자들은

자신의 영달과 영욕을 위해서는 물불 안가리고 인륜을 내팽게 친지 오래더라!

 

금비늘 번쩍이며 구름 올라 타서 창공을 가르던 금용(金龙)이 진흙탕에 떨어져 신음하고 있거늘,

하찮은 미물(微物)들의 변화야 어찌 글로써 표현 할 수 있을 것인가?

 

부귀 영화는 다 무엇이며 삶과 죽음은 무엇이던가

삶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기본적인 이치만 안다해도

경천지동할 인간사 일이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욕심 보따리가 문제로구나,

탐욕을 버리고 돌아서면 눈 부릅뜬 염라대왕도 미소를 짓는 얼굴을 볼 수 있을텐데?
윤회도 업보도 눈녹듯 사라질 것을!
얼키고 설킨 세상만사 아무리 읖조려도 쇠귀에 경 읽기니 바람 불듯 구름 흐르듯 한세상 살아 가세나!

대안이도 소옥이로 부터 효가를 받아 달라고 하여 안고 있는데,

그때 오랑캐들이 온다?
도망가라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효가를 등에 업고는

월랑과 소옥 뒤를 따라 뛰었으나 아픈 다리 탓에 피난민들에게서 떠밀리는 바람에

다른 피난민 무리쪽으로 다리가 아푼 줄도 모르고 죽으라고 뛰었던 것이다.
금나라 기병들의 말 발굽소리가 멀어져서야 주위를 살펴 보았으나

마님과 마누라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소리도 질러 보았으나 숲 속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효가도 어미가 옆에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앙앙하고 울기 시작하자,

대안은 오랑캐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도망쳐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 가려 몇 발자욱 옮겨놓았다.

그때 또다시
"토적이다, 토적들이 몰려 온다!" 하며

피난민 누군가 소리쳤다.

 

곧이어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맨 수십명의 마적들이

말을타고 먼지를 일으키며 오는 것이 보였다.
대안은 뒤로 돌아 효가를 등에 업은 상태로 달리기 시작했다.

토적 무리들은 난리를 이용해 한밑천 챙겨 보려고

작게는 서너명이 많게는 수십명이 집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데

그중에 나라를 구하고 약자를 도와 주는 그런 의로운 도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가끔씩 안면식이 있는 자도 있는데 평소 감정이 안 좋던 사람은

재물보다는 목숨을 노리기도 했다.
그들은 인근의 지형지물을 다 꿰뚫고 있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토적들은 오랑캐 보다도 더 악랄하고 악질적이었다.

대안이도 그들의 악랄함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죽을 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같이 도망치던 사람도 점점 줄어들자 이제는 어느정도 안전하다 싶어 잠시 쉬고 있는데,

대안의 앞을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이 낯익은 모습이라 일어나 따라가며

자게히 보니 바로 응백작 이었다.

" 잠깐만요!

응, 아저씨. 응, 아저씨!"

소리치며 달려가도 힐끗 뒤돌아 보더니 아는체도 하지 않고 다시 빠르게 걸음을 걸었다.
그 뒤로는 둘째 마누라 하녀 소흑녀(小黑女)가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 잠깐만요,

응 아저씨 저좀 봐요!

우리 마님 못 보셨나요?"
큰소리로 외치며 뒤쫓아가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귀찮은 듯,

"야! 내가 자네 마님을 어찌 알아?

네 마누라도 아닌데." 라며

퉁면 스럽게 내쏘는 것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상당히 약이 올라 있는 모습이다.
응백작은 피난길에 어떤 얼간이 한테서 슬쩍하여 주머니에 넣었던 은화 몇냥이

마적때에 쫓겨 달리는 중에 흘러 없어진 것이었다.

대안이는 머쓱해 하며,
"응 아저씨가 어디로 피난 가시는지는 모르나,

함께 동행하면 안될까요?"

응백작이 생각해보니 여자들만 다니는 것보다 남자 한명이라도 같이 다니면

안전이나 도적들의 방어에 유리할 것 같아,

선심 쓰는척 편한데로 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 오던지 말든지 자네 맘데로 하시게,

우린 서남쪽에 있는 황가촌에 사는 황사(黄四)네 집으로 가는 거니까."

황가가촌이라면 대안이도 한번 가본적이 있었다.
강가에 위치한 마을 주변이 온통 갈대 밭으로 외부에서 보면은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맞아,

그곳으로 가면 귀신도 모를 거야!" 하며 좋아한다.

 

갈곳이 생기니까 긴장감이 풀어졌는지 다시 다리의 통증이 느껴졌다.
효가를 땅에 내려놓고 효가의 손을 잡고는 절뚝거리며 따라 간다.
효가도 긴장이 풀어 졌는지 징징 울면서 따라오며,

"엄마 어딨어요,

배고파요 배고파, 으응." 하다,

응백작의 마누라가 보기에 안스러웠던지 마른 빵 한 덩이를 꺼내주니,

그제서야 징징거리던 것을 그치고 꾀제제한 손으로 눈물을 쓱 훔치더니 맛나게 먹기 시작했다.

황가촌에는 어둠이 내리는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그러나 마을은 개새끼 한마리도 얼씬하지 않는 빈 마을 이었다.
이상한것은 가재도구들은 멀짱하게 남아 있고, 부

억의 밥솥 안에는 오래된 것 같지 않은 밥이 반 이상 남아 있었다.
모두들 하루종일 제대로 먹은 것이 없으니 밥을 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신 없이 퍼 먹었다.
눈치밥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응백작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없이 먹고 있는 사람들을 제지 하였다.

 

"피난 보따리를 싼 것도 아니고 밥까지 남아 있는데

아무도 안보이는 것은 무슨 일이 있는게 분명해,

전부 쓸만한 물건 대충 챙기고 나를 따라 오라구" 하며,

집안에 쓸만한 것이 있나 돌아 보며 몇가지 옷가지와 생필품을 챙겨서는

갈대 숲속으로 들어가니 모두 뒤따라 들어 갔다.

 

그사이 여인들은 남은 밥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갈대 밭 속에 가서는 한개씩 나누어 주었다.
한참을 들어가자 안면이 있는 황가촌 사람들과 황사네 식구들이 모여 있는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사람들이 비운 집에서 생필품을 들고 나온 터라 쑥스러워 응백작은 어물어물 하면서 말한다.

"아니, 자네 웬일로 집을 나두고 여기에 와있어,

식구들도 다 함께?" 하고 말하자.

황사는 오히려
"응백작 나리,

아니 왠일로 여기에 오셨수?

우리는 오늘 저녁 토적들이 우리 마을을 덮친다 하여 모두 피신해 있다우,

다행히 토적중에 면식자가 있어 알려 주어 목숨이라도 건지려고 이렇게 도망을 나왔다우 하는데..."

마을 저 끝쪽에서 번쩍이는 불빛이 보이고 왁자지껄 하는 소리로 보아 토적들의 노략질이 시작 된것 같았다.
모두 새파랗게 질려 숨을 죽이고 있눈데. 집에 불을 질렀는지 화광이 충천했다.
아무도 불난 집에 불을 끄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중 누군가가, 이거 큰일났네 한다.

"앗 저기,

저기를 보라고"

도적놈들이 갈대밭에도 불을 지른 모양이야!
모두 머리를 들고 가르키는 곳을 바라보니 갈대 끝쪽에서 부터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아직 불길은 멀건만 조급해진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갈대밭을 빠져 나가느라

가족 간에도 이리 저리 흩어 지고 가는 방향도 사방 팔방이었다.
대안이는 효가를 붙잡고서 응백작 아저씨가 가족을 부르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정신없이 따라 나셨지만 다리의 통증이 심해 효가 손을 놓치고 말았다.

어슴프레 먼동이 터오자, 주위가 희끄무레하게 보이기 시작 하였다.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린 응백작은 주위를 돌려보니 마누라와 둘째 마느라 몸종 소흑녀가

자기를 꼭 껴안고는 기절해 있고, 효가 녀석이 옆에 주저 앉아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야, 이 호로 자슥아!

왜 아침 부터 징징짜고 그래,

토적이 울음 소리를 듣고 달려오면 디질려고 지랄이야, 빨리 그처 쌔끼야!" 하고

소리 치자 효가가 알아 들었는지, 겁에 질린건지 울음을 뚝 그처 버렸다.

"훅 흑 , 아저씨가 안보여...

흑흑, 아저씨를 찾아 죠요? 흑흑."

그러도 보니 대안이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응백작이 효가의 소리에 귀 기우릴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야 이놈아,

내가 니 애비냐 나를 보고 아저씨를 찾아달라게,

니 뒤진 아비에게 빌어라!" 하며

효가 머리에 군밤 몇대를 쥐어 박고는 마누라와 소옥만 데리고는 자리를 뜨자.
그래도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응가 마누라가 울고 있는 효가 손을 잡아 일으킨다.

"원 당신도,

이 어린것을 팽개치고 가면 나중에 천벌을 받아요,

갈때 까지는 같이 가야지요?"

"하여튼 여팬네 들의 머리통 속에는 머가 들어 있는지 몰라,

좋을데로 하라구" 하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두 여자는 효가의 양쪽 손을 잡고서 허겁지겁 뒤 쫒아 간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