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유학사의 도움으로 아사에서 벗어 나지만

오토산 2021. 2. 10. 18:52

금옥몽(속 금병매)<45>
월랑은 또다시 유학사의 도움으로 아사에서 벗어 나지만...

아침에 소옥은 물을 길러 밥을 지을 려는데,

눈이 오고난 뒤에는 대부분 날씨가 조금 포근해 지는 법인데 어찌된 탓인지

간밤이 얼마나 추웠으면 땅에서 샘솟는 우물물이 꽁꽁얼어 길을 수가 없었다.

 

눈을 퍼다 녹여서 밥을 짖는데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어 그런지,

옛날 서대인이 눈을 녹여 차를 끓여 오라고 장난삼아 골려 주던 옛날이 생각이났다.
그때는 왜 그리 재미있고 신이 났을까 하고 그때가 그리워 졌다.

짙게 깔린 검은 구름, 눈이라도 쏟아질듯 한 밤.
이글 이글 피어오르는 붉은 화로, 아늑한 누각 곳곳에 놓여 있다.

옥비녀에 금팔찌
아름다운 처첩들과 정담을 나눈다네.
비취 찻잔에 퍼지는 청향차의 그윽한 향기.
비단 장막에 휘도는 가야금의 청아한 가락.

짙게 깔린 검은 구름, 눈보라가 휘날리는 이밤.
덜컹덜컹 흔들리는 낡은 문짝,
차가운 바람 곳곳에 스며든다.

맨바닥에 홑이불
귀엽고 가엾은 아이와 함께 추위에 벌벌떠네.
깨진 쪽박에 담겨진 차디찬 누룽지 조각.
냉골 방안에 흐르는 가난뱅이의 한맺힌 설움.

공평하고 사심이 없는 하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눈을 뿌려주는데,

즐거움과 괴로움을 서로 다르게 느끼는 뭇 인간들은,
각자 모두 눈을 보는 마음은 저마다 다르다.

 

여우털 옷에 오소리 모자 뒤집어 쓰고 소복소복 쌓여가는 하얀 눈을 보며

환호의 소리를 지르며 희희덕 거리는 부잣집 첩년이나 사치에 이골난 기생년들이야

눈만 내리면 좋아 설쳐데는 똥개와 다르지 않지만,

홑이불에 홑옷을 입고 추위를 이겨야하는 가난뱅이들은

하늘만 흐려져도 눈발이 흩날릴까 하는 걱정에 가슴을 쓸어낸다.

 

쌀독 항아리 뚜껑 열어 바닥에 깔린 보리 한톨 걱정하는,

가난한 자들의 설음을 부잣집 처첩들은 꿈에도 생각 하지 못할 것이다.

오월랑의 팔자는 참으로 기구하여 두가지 경우를 다 경험 하지만

'가난 하던 사람이 부자가 되면 근검절약하며 잘 살아 가지만,

부자가 망해서 가난해 진다면 대부분이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월랑이 격는 팔자가 바뀌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은,

어려운 생활고도 용하게 잘 버텨 나가고 있었다.

 

불쌍하고 불쌍하다 오월랑이,

애고 애고 가엾어라 이전 세상 무슨죄로 남편 죄업 다 뒤집어 값는지 월랑 팔자 참으로 기구하구나!

다람쥐 챗바퀴 도는 생활이지만, 또 하루가 지나가고 춥고 배고픈 밤이 찾아왔다.
이젠 전당포에 잡힐 만한 것도 없다.
내일 아침 끼니 걱정 보다 지금 당장 땔나무 떨어져 방바닥은 냉골인데,

화롯불을 붙여 피울 목탄도 없다.
이대로 홑이불에 홋 옷으론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을지 장담 할 수가 없다.

 

그저 망막하기만 한 월랑은 준제암에 있을때 설고자가 주었던 백팔 염주를 헤아리며

불경만 한없이 암송하고 있었다.
불경을 암송하며 얼마나 시간이 지난지 모르나 마음이 명경같이 맑아지며

추위에 움추려 졌던 몸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마음 속에서는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내일은 부처님이 인도 해주실거야 하는 희망의 확신이 생긴다.

"나무관세움보살, 나무관세움 보살..............!" 을 암 송하고 있는데,

누군가 손에는 큰 보따리를 들고 집을 향해 오고 있는 환상이 보인다.
그때 대안이에게 가지 않고 추위에 떨고 있던 효가를 꼭 껴안고 있던 소옥이 밖을 향해 이 밤중에

"누구 세요?" 하고 물어보자,

바깥에서 헛기침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옥이 문을 열자,

지게를 지고 등불을 들고 있는 사람 옆에,

지난번 이사한 날 저녁에 왔던 유학사 하녀가 보따리를 들고 서있고 그뒤에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저,

우리 마님을 모시고 왔습니다요?"

하인의 말이 들리자, 월랑은 환상에서 꽤어나 황급히 문밖으로 나갔다.
몸종을 거느린 여인이 어둠 속에 서있었다.
월랑은 서둘러서 방안으로 안내 하면서

"죄송합니다,

방안이 너무 차서..." 하며

쑥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창피하여 말까지 더듬는다.

"괜찮아요,

부자집 마님이 고생이 너무 많으시네요,

변한 환경에 적응 하시느라 애쓰십니다.
좋은 날이 있을 겁니다."

하며 말을 하는 여인을 바라보니 머리가 희끗희끗한 기품이 묻어나는 중년 마님이다.
하얀 광목의 검소한 옷을 입은 마님은 참 온하하고 곱게 늙은 모습이었다.

"여보게 어서 내려 놓고,

풀어 보시게"

하자 하인과 몸종이 짐을 얼른 풀어 놓는다.
지게에는 우선 땔감 한 지게와 쌀 다섯 말, 밀가루 한 포대,

작은 술 한독이 나왔으며 몸종의 보따리에서는 아이 솜옷과 몇벌의 옷가지가 보였다.

월랑이 깜짝 놀라며

"아니, 마님!

이게..."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나 중년 마님은.
서방님이 보낸것인데 젊을때 초시 공부를 할때 서대인이 도와 주셔서

오늘이 있다면서 어서 받으란다.

그리고 밤이 더 늦기 전에 돌아 가야 한단다.
월랑은 염치 없지만 그 은혜 꼭 보답 하겠다며 마지 못해 받아 들였다.

 

그런데 유학사 마나님은 품속에서 두툼한 주머니를 꺼내 놓으며

서문대인에게 빌렸던 돈이라며 생활이 어려워 못 갚았는데 이제와서 갚을 수 있어 다행이라면서

그동안 못 갚아 죄송했단 인사 까지 하며 오십냥 정도 된다며

더 드릴 형편이 되지 않아 미안 하다고 한다.

월랑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지금 눈 앞에 일어 나고 있으니 뭐가 먼지도 몰라했다.
월랑이 알고 있는 남편은 그런 관대한 사람이 아니라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남을 겁박도 하고 얼르기도 하며

돈에는 인정 사정이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유학사에게 오십냥의 거금을

그져 주었다는 이야기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편으론 그런 넓고 선량한 마음을 가진 남편을 그져 수단 좋은 남정내요

바람둥이 건달로만 알고 살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진즉 그걸 알 았다면 존경 받을 수 있는 신랑으로 비명 횡사 하지 않게 할 수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유학사도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그런 일이 있었다 한들

이런 난세에 희망도 없는 월랑을 돕는 것도 이해가 안되었다.
그것이 사실이라 한들 죽은지 십년이 되어 오는 시점에서,

사실을 전혀 모른 유가족을 찾아 자진 해서 은혜를 값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알고 있는 일도 어떻게든 안 갚을려고 떼를 쓰는 세상이니 말이다.
어쨌든 월랑은 감격하여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고맙습니다만, 제가 어떻게 이걸 다 받을 수 있나요.

안 갚으셔도 되는 건데, 그러면 반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도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염치 없이 어떻게 다 받겠습니까?"

"무슨 말씀을 저희 남편은 서문대인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어요,

그동안 이자까지 계산 한다면 반에도 못 미치는 액수 입니다,

안받으신다면 저희가 거북합니다."

월랑이 극구 사양 했지만 유학사 부인은 기어이 놓고 집으로 돌아 갔다.
월랑은 너무나 감격하여 유학사 부인 일행이 어둠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배웅 하였다.

"마님, 이런 일도 일어나네요,

인제 우리는 살았어요, 살았어."

소옥과, 풍씨 할멈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화롯에 불을 당긴다.
소옥은 오랫만에 푸근한 마음으로 대안이와 달콤한 밤을 보넸다.
월랑은 모든것이 부처님의 은덕이라 생각되어,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을

연신 암송하고 있었다.

월랑, 효가 모자도 오랫만에 등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학사 유체인은 남송 고종(高宗)시대에 칠십의 늙은 나이로

과거(科举)에 장원급제 하여 부귀 영화를 누리며 장수 했다고 전해진다,

이것 또한 이웃에 선행을 베푼 인과 응보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송(宋)나라 조정은 어찌하고 있을까?
금나라의 치욕적인 조건을 수락하여 겨우 나라의 체면은 유지하였다.
금나라 오랑캐의 군대가 북쪽 자기네 땅으로 돌아가자,

강남으로 도망쳤던 도군황제(휘종)은 개봉으로 돌아와서는

백성이야 죽든 말든 태평성대가 돌아 왔다며 전란 전의 도인생활을 꿈꾸고 있었다.

우매한 흠종은 문무백관이 참석한 조회에서 전란 수습에 대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신하들의 충언을 이리저리 휩쓸리는 우유부담 함을 보인다.

개봉을 구하려 왔던 근왕병 "경동(京东), 회서(淮西), 절강(莭江)군"의 고향 회군을 명하자.
충신 병부상서 이강(李纲)이 반대한다.

"황제 폐하! 아니되옵니다,

오랑캐가 비록 물러갔다고는 하오나 승리의 맛을 본 자들로

언제 또 쳐들어와 무슨 요구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근왕병을 확대 편성 하여야 하며,

절대 회군을 하여서는 아니되옵니다" 하고 충언을 올린다.
그러자 주화파의 이방언(李邦彦)이 이강의 말을 반대하고 나선다.

"폐하!

병부상서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이옵니다,

근왕병을 회군 시키지 아니하면 오랑캐는 이를 구실로 다시 쳐들어 올 것입니다,

그러니 회군을 시키고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화평을 준수하여야 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근왕병을 이끌고 개봉을 사수 했던 명장 종사도가 나선다.

" 황제 폐하!

적들은 언제든지 구실만 있으면 침략해 올 것입니다,

병부상서의 말씀대로 절대 회군 하여서는 아니되옵니다,

장자 종사를 누가 지키고 이백년의 사직을 무슨 힘으로 보존 하겠습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우유부단한 흠종은 맹약(盟约)을 지키지 않으면

즉시 재침 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적장 알리부의 험상궂은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그 자리에서 즉시 선포 하고 말았다.

"경들의 충정을 잘 알겠소.

허나 오랑캐 들도 많은 것을 얻어 갔으니,

우리가 맹약만 지킨다면 당장 침공해 오지는 않을 것이요.
아직 정사도 재자리를 잡지 못한 마당에 오랑캐의 재침의 구실을

스스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전란에 시달린 백성들의 안위도 중요하니 우선 고향으로 돌아가 피곤을 떨친후,

다시 규합을 할 생각이니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하고

현명한 군주 인양 황명을 명해 버렸다.

황제의 결정에 충성스런 신하들은 한숨을 내쉰다.
종사도 장군도 어쩔 수 없이 군사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회군 하고 말았다.

 

충신과 간신을 구분 못하는 어리석은 흠종은 간신들의 부추킴에 오랑캐에게 활애한

"그 넓고 기름진 땅 삼진 중산(中山),태원(太原), 하간(河间)"을 금나라에 내 주자니 배가 아팠다.
그래서 되찾겠다고 잔꾀를 부린다.
국력을 키워 오랑캐의 금나라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의 힘을 확보 해 놓았다면 모를까?

흠종은 느닷없이 삼진의 장군들에게 조정의 명령을 거역하는체 하며

철수를 하지 말고 금나라에 맞서 영토를 사수 하라는 밀지(密旨)를 보냈다.
또한, 금나라에게 멸망당해 서하(西夏)로 도망가 있는 요나라 왕 아리(雅里)에게도

밀서를 보내 금나라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을 펼치자고 제안 하면서,

금나라에 귀순한 야율여도(耶律余睹)에게도 적장 알리부와 점한을 암살해 달라는 밀서를 보냈다.
금나라는 송나라 뿐만 아니라 요나라의 요직을 맡았던 권문세가 까지도

밀정들을 깔아 감시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하니 흠종의 계획은 즉시 금나라 태종 오걸매에게 전달되었다.
대노한 오걸매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알리부와 점한을 동서군 대장으로 임명 송나라를 다시 침략하니,

역사상 유래없는 정강지변(靖康之变)이 일어나게 된다.

중국 역사(중국은 자신들의 역사에,

여진족이 세웠던 금나라와 청나라 역사는 중국 역사에 포함 시키지 않는다,

오직 한족 중심의 국가만 정통 중국의 역사로 인식 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침략 지배 받았던 36년을 우리 역사로 인정 안 하듯이말이다)에

 

가장 큰 수치로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사건이 정강지변이다.

이사건은 무능한 흠종이 스스로 판 무덤이 되었으며,

중국 역사에서 가장 무능한 황제로 송나라 휘종과 흠종이 찾이하게 되었다.

 

금옥몽(金屋梦) 일명 '속 금병매'가 중국 사대 기서

시내암의 <수호지> 나관중의<삼국지연의>, 오승은의<서유기>와 왕세장의 <금병매>에 버금가나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중국정부가 역사로 인정 하고 있지않은 여진족이 새운 금나라와

청나라 때 오랑캐 사가들이 한족을 비하해서 정강지변등 한족 수치의 역사를 기술 했다 하여

금서로 지정 관리하고 있는 원인이라고 한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