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78>
적원외의 생일 잔치는 크게 벌어져 모두 축하해 주는데 은병은 냉냉 하기만 하고...
진(秦)나라 강위에 휘엉청 밝은달,
초(楚)나라 강에 넘실되는 가을의 은빛 물결.
옛일은 덧없이 슬픈데 벽계수는 무슨 사연 안고 흐르는가?
소쩍새 슬피우니 봄날의 버들가지 흐느끼고
흩날리는 꽃잎은 오호(五湖)로 떠나가는 배를 전송한다.
누구인가 부는 처량한 피리, 매화꽃은 떨어져 흩날리고.
어디선가 들리는 구슬픈 비파, 피곤한 기러기 나래를 쉰다.
첫눈에 반한 애닲은 사랑 복사꽃잎 따라 떠나가니,
꽃잎마다 향기넘쳐 강물을 수 놓는다.
적원외는 은병의 미모에 반해서 수천 냥을 이사사에 바쳐 환심을 사고는
매일같이 기녀들을 불러모아 먹고 마시며 정신없이 향략에 빠져 돈을 뿌린다.
"미인은 미남자에게만 정을 주고,
나이어린 계집은 못생긴 한량패에게 무정하다." 라는
옛말이 있듯이 화류계에서 기생이 좋아하는 것은 현금이요,
어린 계집이 좋아하는 것은 준수한 용모라,
현금과 용모를 갖추지 못하였다면 결코 오입쟁이가 될 수 없으리라.
이러하니 적원외라는 작자는 단지 현찰 만 있을 뿐이요,
어린 기녀들이 좋아 할 뛰어난 기예나 풍류가 있으면 모르겠으나
하나도 갖추지 못하였으니 그의 용모로서는 은병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돈자랑을 해 보아봤자 나이든 퇴물 기생들은 모르나 어린 기생들은 재물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하니 매일 기녀들을 불러모아 먹고 마시고 하여도
은병은 체면상 잠시 왔다가는 곧바로 후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녁 잠자리 동침하려 침실에 들어가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다는 핑계로 돌아 누워 혼자 자버리거나,
적원이가 조금이라도 귀찮게 하면은 한밤중이라도 벌떡 일어나
자기방으로 가서 쳐박혀 꼼짝도 하지 않는것이 다반사 였다.
만약 다른 기생년이 그렇게 하였다면 두둘겨 패거나 경을 쳤을 것이나
화류계의 거물 이사사가 가장 아끼는 수양딸이고 보니
그렇게 하였다가는 자신에 대한 반항으로 생각 할까봐 감히 행악질을 부릴 꿈도 못 꾸고 있었다.
게다가 지인들에게는 어떻게든 은병의 마음을 사료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해놓았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수천 냥의 혼수비용을 쓴것도 다 알고 있는데 신부가 말을 안듣는다고
욕지걸이를 할 수도 없고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또한 정옥경은 자기와 죽이 맞아 적극적으로 도와 주겠다고 하였으나
요사인 이상하게 자신의 도움 요청을 건성으로 넘기는 듯 하였다.
옥경과 은병은 의남매를 맺었다 길래 둘 사이가 다정해도 특별히 의심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근자의 은병의 태도를 보면 영 수상하단 생각이 자꾸만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혹시나 자신은 열나게 군불만 지피고
, 뜨겁게 달구어 놓은 방안에서는 놈이 맛있는 만두를 혼자
몽땅 챙겨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은근히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옥경도 은병이 적원외의 체면을 전혀 고려치 않은 행동으로 무시하기까지하며
따돌리는 것을 보고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 은병을 달래 보기도 한다.
"아무리 싫어도 어머니의 얼굴을 보아서도
동생이 그 자의 체면을 좀 살려 주어야지
우리가 서로 지내기도 좋고 괜시리 의심과 질투를 사면
우리사이도 불편해 지지 않겠어?"
하지만 사랑에 눈이 먼 은병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요
한 술 더떠 대꾸까지 하면서 눈쌀을 찌푸리고 투정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그래도 그치 얼굴만 보아도 밥맛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해요?
더군더나 마늘 냄새가 풀풀나는 커다란 입으로 게거품을 물고는
내 온몸을 햝고 다니는데 기분이 좋은것이 아니라
소름이 오들오들 돋아나고 구역질이 나서 사랑놀이를 할 맘이 생기지 않아요,
난 정말 그치를 대하기도 싫다고요!" 하며
톨아져 버리니,
옥경이도 어떻게 하여야 할지 난감 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모른척 하기도 그렇고...
칠월 초파일은 적원외의 생일이었다.
혼례 후 처음 맞이하는 생일이라 이사사는 자기 집에다가
생일 잔치상을 네곳에다 큰 상을 마련해 산해진미를 차려놓고는
악대를 부르고 적원외의 한량패 친구들을 초청해서는
기루의 기생들을 모두 동원해 잔치 시중을 들게 했다.
달이 뜰 무렵이 되어서야 사사와 은병은 선녀처럼 단장을 하고서 나왔다.
악대패들은 보내고서 대문을 걸어 잠그고는 잔치상을 앞 뜰로 옮겨서
새로 오봇하게 차려서 술판을 벌였다.
먼저 은병이 손님들에게 술을 따라 올리니 한량들은 이구동성으로 선녀에게 술을 받아 먹으니
생일 술맛이 절로 난다며 좋아 못산다.
정작 생일 당사자인 신랑에게는 술을 따라 주지 않자,
이사사가 얼른 끼어들어 술을 따라 주고는 내가 사위 생일을 축하한다며
건배를 제의 하여 어색하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였다.
"이야!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더니 손님들에게 사랑싸움 구경시켜 주는구먼,
이거 어디 눈꼴 사나와 못 봐 주겠네,
하하하!" 하고
정옥경이 좌중의 분위기를 누구러 뜨린다.
이사사도 얼른 웃으며 맛장구를 친다.
"하기사,
너무 가까운 사이엔 예절도 없다던가?
아이구, 이불 속에서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가까워졌수?"
모두들 박수를 치면서 깔깔대며 한마디씩 농 찌거리를 내뱉는다.
적원외도 웃음띤 얼굴이 되었지만 은병의 얼굴은 냉냉하기만 하였다.
그러자 시중들든 기생들이 눈치빠르게 비파를 타고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바꾸어 놓는다.
작은 술 한잔에 온갖 근심 걱정 풀어보네.
정이 많다는 것도 쓸데없는 짓인데.
은은한 향기는 어디서 날라 오는가?
기생집의 노래소리 멀리도 퍼진다.
아가씨 부르는 소리에 웃음을 머금고,
바람에 휘청대는 가냘픈 모습, 너무도 교태롭다.
꿈결같은 이 순간 그대로 멈추어 섰으면!
흐르는 오색 구름도 멈추어 이 순간 미소짖네.
손님들은 삼경이 되어서야 모두 돌아 갔다.
한량패들과 주인공으로서 잔치를 벌였지만 은병의 행동에서 미진했던 적원외는
침실로 술상을 옮겨 은병과 단 둘이서 한모금씩 입으로 술을 먹여 주며
오늘는 기어이 은병과의 그간의 못다한 재미를 보겠다고 은병의 온몸 구석구석을 혀로 햝고
주물러대며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오늘따라 은병은 거부의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적원외도 오늘은 서두르지 않고 은병을 달래주다가 드디어 옷을 벗길 수 있었다.
오랫만에 은병의 알몸을 본것이다.
이제는 재미를 볼 수 있겠구나 하며 은병을 안았다.
그런데 얌전히 있던 은병이 돌연간 벌떡일어나더니 적원외를 화들짝 밀쳐버렸다.
"어머나!
왜 이러세요?
아직도 아프단 말이예요.
오늘은 안되요 싫단 말이예요!" 하고는
옷가지만 주워서는 발가벗은 채로 후원의 자기 침실로 도망을 가버렸다.
적원외는 닭쫒던 개 신세가 되어 버렸다.
변덕스런 오뉴월 날씨모양 도무지 여자의 심리를 이해 할수 없는 적원외 였다.
은병은 술기운으로 순간적으로 잠시 옥경으로 착각을 하고 적원외의 행위를 묵인 했던 것이다.
꿈에도 그것을 알 길이 없는 적원외는 그저 난감하여 혼자 술잔에 화풀이를 하였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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