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76>
요공은 고향 청하현으로 어머니를 찾아 나서려는데 설간선사가 따라나선다.
세상 일 힘들다고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
산 속의 늙은이는 깊은 산속에서만 살아야지.
몇 마디 설법이 시비를 떠나게 하고 보니
이 세상에 한가로운 사람 오직 하나뿐.
구름 흩어지고 밝은달이 떠오르니 꽃들이 무성하구나.
풀 냄새 그윽한 계곡은 조용한데 물소라만 쏴아하고 들린다.
누구도 뭇 대중에게 말해주지 않는 것은
우뚝 솟은 기둥과 높은 가지가 올라가기엔 딱 좋다는 것.
본인 의지에서가 아니라 운명적으로 불문(佛问)에 몸을 의탁하게된 효가(孝哥)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 것일까?
불심이 그지없이 돈독한 월랑이 효가가 뱃속에 있을때 밤 낮으로 불경을 듣고 암송하며
좋은 설법을 들은 영향인지 효가는 부처님과 인연의 끈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월랑은 어릴적부터 육식 보다는 채식을 좋아 했으며
놀이도 대부분의 소녀들은 살림 살이 와 공기등 여자 아이로서의 놀이를 즐겨하였다.
그러나 월랑은 흙으로 부처를 빚어 그 앞에 향불을 올리고
온몸을 땅에 납작 던져 하는 오체투지(五体投地)의 절을 하였다.
효가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자 틈 날 때면 모래로 불탑을 쌓고
어미의 구슬을 가져다가 염주삼아 손으로 굴리면서 불경을 암송하는 스님 흉내를 곧 잘내었다.
그를보고 있던 월랑과 소옥은 효가의 놀이를 두고는
필경 전생(前生)의 고명하신 큰 스님이 환생 하신것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이러한 상황들로 볼때 효가가 사미승이 된것도 어찌 우연이라고 말 할수 있을까?
비록 난리통에 어미를 잃어버린 효가를 응백작이 관음당(观音堂) 노승에게 팔았다고는 하나,
이모든것은 이미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운명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곱살의 나이어린 효가에게 요공(了空) 이란 법명을 지어준 관음당의 노스님도
그와는 보이지 않는 기연(奇椽)의 줄이 맺어져 있었다.
월랑이 효가를 낳은 후 태산에 올라가 기도 드릴때 만났던 노승이
설간선사(雪涧禅师) 바로 그 스님이었다.
태산에서 강보에 쌓인 효가를 보고 스님은 말하길,
"나무나미타불! 관세음보살!
필시 나한(罗汉)께서 현생(现生)하신것이 틀림 없구나,
후일 반드시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미망과 빈민을 구제하실 큰 스님이 되실 것이리라" 하며
정중하게 월랑에게 예언하였던 혜안(惠眼)의 그 스님이
무슨 사연으로 관음당까지 와 계시다가
효가를 뜻하지 않게 불문으로 입문 시키는 인연을 가지게 되었던 것인지 참으로 묘한 인연이요,
단순한 우연이 아닌것 만은 확실해 보였다.
설간 선사는 요공을 제자로 받아 들이고선 글자를 깨우쳐 주고
불경을 가르친지 불과 삼년만에 경전을 통달 하였다고 하니 보통 아이는 아니었다.
예불의식을 가르쳐 주면 솔선해서 행하고. 계율을 가르쳐서 거리에 나가 시주를 해 오게하고,
물긷고, 장작패고. 청소하고, 자급자족을 위한 거름을 날라 농사를 짖게 하였으나
불평한마디 없이 불자의 고행 수업으로 생각 즐겁게 배우고 노력했다.
설간선사는 요공이 정말로 마음과 행동의 수행을 원만히 이루고
계율과 지혜를 모두 갖춘 나한의 환생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금나라 오랭캐 군대의 노략질이 날로 횡포화 하여
큰길에서 멀지 않은 관음당 까지도 기도 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어려워지자
조용희 수양을 할 수 없었던 선사는 요공을 데리고 행각에 나섰다.
행각을 나서자 요공은 요사채에서 수양 할 때의 마음이 아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쳐나 머리을 어지럽게했다.
아무리 출가한 몸이라도 아직 어린 몸으로서 이 난리통에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머니의 생사를 알수 없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요공은 아무리 속세와 인연을 끊으라는 가르침을 받았으나
인간의 기본 도리도 하지 못하고 부처가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끝에 스승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고향 청하현(清河县)에 돌아가 소식을 알아볼 마음을 먹었다.
이는 목련존자(目莲尊子)가 지옥에 빠진 어미를 구하려 나선 것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설간선사는 요공이 절을 떠나 생모를 찾아보고 오겠다고 하자,
불심이 아무리 깊다 한들 아직 열 한살의 어린아이를 혼자 험한 세상에 내 보내기는
안심이 되지 않아 우선 관음당으로 돌아가 다시 이야기 하기로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행각의 기간동안 오랑캐들에 의해 대웅전은 불타버리고
그을린 불상하나만이 댕그라니 남아있으며 승방들도 모두 불타 페허가 되어 잡초만 무성하였다.
기와 벽돌은 깨어지고 향로는 엎어져 뒹굴고...
불상(佛像) 머리 위엔 설산과(雪山果)처럼 놓여진 제비집
진흙 보살 얼굴은 들새가 쪼아서 흙가루가 분분한데
신령을 자유롭게 놔두라고 누가 말했던가.
길가의 들국화만 쓸쓸히 피였고
울타리와 등나무 덩굴만이 밤 이슬에 젖었다.
왕행암(王杏庵)이라는 독실한 불자가 인근 마을에 살고 있었다.
왕거사는 평소에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주는데 앞장서며, 마을 사람들을 위해 교량을 수리해 주고,
스님을 위해서는 불사를 지어주는등 선행을 베푸는 사람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준제암의 설고자 스님을 도와 준제암의 역사(役事)를 일으킨 사람도 바로 왕거사 였다.
준제암에 새로운 대불 역사중 완성도 되기전에 난리를 맞아 설고자 스님이 오랑캐의 칼에 죽고,
묘취스님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오랑캐에게 붙잡혀간 묘풍 스님을 찾는다며
개봉으로 가는 바람에 예불의식이 끊어져 늘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착실한 불자였다.
하루는 설간선사와 요공이 바리를 들고 왕거사의 대문앞에서 시주를 얻고자 목탁을 치자,
오랜만에 목탁 소리를 들은 왕거사가 대문에 나와보니 노승이 두 눈에서는 빛이나오고
두 눈썹이 하얗고 이마엔 광채가 나는데다가 데리고 있는 어린중 조차도
맨발에 불경, 방석과 바랑을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통 스님들이 아니게 느껴져서
안으로 모시고 들어갔다.
공양을 준비시킨 왕거사는 설간선사에게 합장을 하고는 공손하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아미타불!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으니 어디 방향을 정해놓고 오고 가는 신세가 아닙니다,
관세음보살!"
왕거사가 들어보니 무언가 깊은 수양으로 불력을 닦은것으로 보였다.
하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서너가지의 정깔한 반찬이 차려진 소반을 가지고 왔다.
맛있게 공양을 마치고 나자 왕거사는 차를 대접하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왕행암 거사가 스님에게 정중하게 불법을 구했다.
"스님!
우메한 중생인 저에게 부디 좋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설간선사는 합장을 하고는 설법을 시작하였다.
"무릇 불법을 깨우치려 하는 자는 우선 계(戒), 정(定), 혜(惠)세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 계법(戒法)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리면 세상만사에 현혹되어 옳고 그름을 판단 하지 못하여,
행동과 사고가 모두 죄업이되고, 죄업으로부터 업보가 나타나니 살고 죽는 것이 괴롭게 되는 법이 랍니다.
둘째. 정법(定法)을 지켜야 한답니다.
고통의 결과를 제거하려면 먼저 고통의 인연을 제거해야 하는데.
업과는 착하고 악한 것이 있을 뿐 생기고 소멸하게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셋째는. 혜법(惠法)을 지켜야 한답니다.
먼지를 닦아내야만 거울이 맑아지고 하늘에 구름이 없으면 태양은 자연 밝게 빛나듯이,
업과가 다하면 현혹됨이 사라지고 사사로운 점을 잊게 되면 밝은 본성이 나타나게 된답니다."
왕거사가 또다시 사변(四变)을 물어보자 설간선사는 다시 공손히 합장하고 설법을 계속한다.
"불가에서는 중생을 구제하는것으로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한다 해서 사변을 얘기 하지요.
부처님의 자비가 한번 베풀어지면 중생의 포악함이 변하고, 부처님이 한번 희사하시면
중생의 탐욕과 인색함이 바뀌게 되며, 부처님이 한번 평등케 하시면 중생의 원한이 변해지고,
부처님이 한번 굴욕을 참으시면 중생이 어리석게 화를 내서 다치는 것을 막게 한답니다.
이것이 이른바 '사변(四变)'이라고 말합니다."
거사가 또 '점차(渐次)를 묻자 선사가 거침없이 일깨워준다.
"점진적인 수양으로 부터 문득 깨닫는 경지에 이르고 서투름으로 부터
원만한 경지에 이르니 공덕을 쌓고 노력하면 자연히 이루어지는 봐,
참외가 익으면 꼭지가 저절로 떨어지는것과 같은 이치이니 이를 점차라 합니다.
그러자 왕거사가 또 물어본다.
"그럼 사단(四断)은 무엇이옵니까?"
"음탕한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모든 깨끗함이 심어지고,
과음을 멀리 한다면 머리가 맑아져 지혜가 심어지게되고,
도적질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 복과 덕이 찾아오게되고.
살생을 하지않는다면 자비로운 마음이 생겨나지요."
"그럼 좌선(坐禅)이란 무엇인가요?"
"마음을 맑게 비우고 육신의 형체를 잊어버리시오.
일어나고 소멸함을 끝없이 생각하시오.
도도하게 끊임없이 흐르게 한다면, 어찌 일어나고 소멸함이 있으리오.
일어나고 소멸함의 이치를 알았다면 가섭(迦葉)의 경지가 어찌 나타나지 않으리오.
앉고 눕고 머물고 떠다니면서 한시라도 쉬지 않으니,
선이 어찌 앉는 것이 아니고, 앉는 것이 어찌 선이 아니리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좌선 입니다."
"그럼 심관(心观)이란 또 무엇입니까?"
" 모든 법이 생기는 바는 오로지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니,
덧없이 작은 티끌이라도 삼라만상은 모두 마음으로 인하여 형체가 생긴 것이오.
마음이 있다고 말하려 하지만, 마치 공후라는 악기 소리처럼 보려해도 보이지 않고,
마음이 없다고 말하려 하지만, 마치 공후라는 악기처럼 선정(禅定)하면 곧 소리가 들려오니,
유(有)도 아니오 무(无)도 아닌 오묘함이 그사이에 있습니다."
선사는 장강(长江)의 물결처럼 도도히 설법의 흐름을 끝내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마지막으로 계송(偈颂)을 낭송해 주었다.
"모든 부처께서는 마음으로 해탈에 도달 하였으니,
마음의 청정(清净)함이 무구(无垢)가 아니더냐!
물색에 흔들림 없는 맑고 정갈한 도(道)의 세계여!
마름한번 바로하면 성불(成佛)이 그대의 것이로세!"
설간선사가 흐트럼 없이 합장한 자세로 설법을 마치자,
탄복한 왕행암 거사는 오체투지(五体投地)로 절을 하고는 제자가 되어 계율을 받겠다고 했다.
"이곳 마을 뒤편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큰 숲 옆에 준제암이라는 암자가 하나 있는데
난리가 난후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바라옵건데 사부님께서 기거 하시면서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설간선사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나서자 요공이 뒤따르고 왕거사가 앞장을 섰다.
준제암은 마을에서 오리 정도의 길이었다.
왕거사가 대전의 열쇠를 열어보니,
가운데 비로불(毗卢佛)이 앉아 있고 양쪽에 불상들은 아직 미완성인체로 있었다.
대전 옆에는 낡았지만 승방이 있고 우물도 솟아오르고 있고 조그만 정원과 채소밭이 있어
정리만 한다면 살아가는데는 불편이 없을 듯 하였다.
왕거사가 조심스럽게 여쭌다.
"인연이 닿아서 사부님께서 이곳에 머무르신다면
제가 재산을 희사하여 수리를 하고 불사를 다시 일으키겠습니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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