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옥경은 오우와 천년지기를 만난듯

오토산 2021. 4. 7. 19:08

금옥몽(속 금병매) <94>
옥경은 오우와 천년지기를 만난듯 명산 금산에서 풍류를 즐겼으나...
옥경은 오우의 호탕한 행동을 보고는 좀 계면쩍어 하였다.

"형 뻘인 내가 한턱 내야 하는건데, 내가 한발 늦었네요

내일은 내가 한턱 내지요."

술이 거나 해지자, 오공자는 비단옷 속에서 대나무 퉁소 하나를 꺼냈다.
구름을 타고 바위를 가르는듯한 부드럽다가도 가느다랗고 강한 퉁소 소리에

동자는 허리춤에서 홍목으로 만든 딱딱이를 꺼내 반주를 맞추며 노래를 부른다.

미친듯이 떠도누나 강호를 떠도누나,
광릉(广陵)의 꽃과 버들 이십년 만이로다.

맑은 물, 높은 산, 밝은 달 불어오는 동풍속에,
추억을 되살리니 예쁜 새 봄날을 노래하네.
다투어 피어나는 꽃무리 사이에,
살짜기 보이는 가인(佳人)의 섬섬옥수.
푸른 강가 붉은 정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니,
반악(潘岳)같던 미남자가 희끗희끗 흰머리라니.
북쪽에서 울려오는 오랑캐의 호각소리,
남쪽 누각의 가인은 짐작이나 하여줄까?

어느덧 술상이 새로 바뀌어서 산해진미가 그득하게 차려졌다.
싱싱한 생선 게 등의 해산물과 거위 돼지등,

각종 요리는 음식의 색(色) 향(香) 미(味)의 삼대 요소를 잘 갖추고 있었다.
이번에는 큰 술잔으로 바꾸어 호케하게 마시는데,

언제 올라왔는지 절간에서 보았던 스님이 차를 가지고 와서 합석을 하자고 했다.

님이 가지고 온 차를 마시며 잠시 환담을 한 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스님도 사양하지 않고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셨다.
스님의 법호는 월강(月江)이라 했다.
원래는 거간꾼 출신이라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데

지금은 금산전원(金山前院)에서 수도중이라고 했다.

"아미타불!
오늘 준수하고 청수하신 미소년 두 분이 풍류를 즐기려 금산을 오르신걸 보니,

저도 왕년에 풍류를 즐기던 흥취가 도도히 오르는 구만요?
부처님도 이쯤은 눈감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고는

오공자와 옥경에게 술 한 잔씩을 따라 준다.

월강스님이 권하는 술잔을 단숨에 비워버리고 흥이 오른 옥경은

오공자의 피리를 보여달라고 하여 감탄사를 연발한다.

"하이야, 참 좋은 퉁소구만!
정말 좋은 물건이야!"

칭찬을 끝내자 말자 퉁소를 입에 대고 부니,

맑고 청아한 소리가 산을 맴돌아 하늘과 강까지 울려퍼진다.
옥경의 퉁소부는 실력에 오공자도 깜짝 놀란다.
그때 강가 오공자의 배안에 있던 두 미인도

옥경의 퉁소 소리에 맞추어 피리를 불자 그야말로 봉황이 서로 화답하며 울고 웃는것 같았다.

"저 두 아이들은 작년에 양주에서

오백냥씩이나 주고 사와서 일년을 가르쳤더니 저 정도로 불게 되네요,

집에는 저런 아이들이 여덟명이 있는데 다같이 합주를 하면 제법 들어 볼만 하답니다."

김원외(金员外)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중 한 계집을 어찌나 예뻐하는지 그냥 생일선물로 보내 버렸더니,

합주시 소리가  조합이 잘 안맞는것 같더라구요.
어찌되었건, 우선 정형이 흥이 나신다면

두 아이라도 데려다 술도 따르고 피리도 연주하라 해 볼까요?
월강스님이 그말을 듣자 갑자기 굶은 독수리 처럼 두 눈동자가 반짝인다.

"허허, 애석하구료.
두 미인을 보고도 안계(眼界)를 넓혀 보지 못하는게 애석 하도다 애석해!"
옥경도 속으로는 좋지만 은근히 말을 돌리며 두 미인을 데려와도 좋다고 했다.

"초면에 너무많은 폐를 끼치게 되어 송구스러울 따름 입니다.
피리를 참 잘 부는것 같은데 함께 연주해 볼 기회를 주시면

그져 감사할 따름입니다. "

말이끝나자,

오공자가 동자에게분부를 한다.

"어서 내려가 쟤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너라,

피리하고 비파도 챙겨서 오라고 하여라."
동자가 급히 자리를 뜨자 월강스님이 말을 했다.

"날도 어두워지고 여기는 등불도 밝히기가 불편하니,

소승의 승방으로 가시면 어떨까요?
차도 한잔 더 마실 겸 그렇게하시지요."

오공자가 좋다고 하자 옥경도 그렇게 하자고 하며 월강스님을 따라 산길을 내려갔다.
옥경과 오우는 오랜 친구같이 다정하게 서로 부추켜주며 내려갔다.
승방에 도착하자, 오공자가 정중하게 제안을 했다.

정형이 괜찮으시다면 우둔한 저이지만 의형제를 맺고 싶습니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함께 하면서 보니 정형은 제주도 많고

호탕하시어 저와 의기투합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러자 월강 스님이 옆에서 거들며 참견한다.

"그거 좋습니다.
옛말에도 '사해지내(四海之内)는 개형제(皆兄弟)라 하였거늘

세상 모든사람들이 원래 형제나 다름 없는 법이니,

소승이 오늘 의형제 결맹의식을 주관해 드리지요"

옥경도 은근히 말을 해볼까 했는데 오위가 먼저 꺼내니 몹시기뻤다.
월강스님이 부처님전에 향을 피우고 좌우로 서게 한후

여덟번을 절을 하게한 후 증인 월강에게 맞절을 서로하게했다.
의형제 의식이 끝나자 옥경이 한살 위라 형, 오우가 한살 아래라 아우가 되었다.
자리를 거실로 옮긴 아우 오우가 옥경 형에게 이제 의형제도 맺었으니

저의 집에 가서 몇일 묵으며 부모님에게도 인사를 드리자고 제안했다.

거실은 강물이 훤히 내려다 보이고 풍광이 아름다웠다.

 

어린 사미승이 촛불을 켜고 차와 다과를 가져왔다.
모두 절에서 스님들이 만든 것이라 그런지 맛과 향이 특이했다.
담소를 하며 차를 마시고 나자, 절에서 빗었다는 곡주를 내어왔다.
월강스님이 직접 요리 했다고 하는 채소와 두부 요리는

속세에서 볼 수 없는 사찰에서만 전해오는 비법의 요리라고 한다.

오우는 옥경에게 형님 내기 바둑을 두어 쌓인 돈으로 내일 술값을 내자고 했다.
옥경은 바둑을 잘 두지는 못하지만 형으로서의 체면 때문에

내일 술을 내가 산다는 셈으로 바둑에 임했다.

 

월강이 운남산 바둑돌과 홍목 바둑판을 가져와서 형과 아우의 내기 바둑이 시작되었다.
한집에 한 냥씩해서 내일 술값으로 하고, 지금은 한집에 벌주로 한잔씩 하기로 정했다.
첫판은 옥경이 네집을 져서 네냥과 벌주 네잔을 마셨다.
오우는 첫판이라 봐 주었다고 하였다.

 

두번째 판에서는 아우의 큰소리와는 다르게 오우가 열한집을 졌다.
오우는 그자리에서 열한 잔을 사발에 부어 꿀꺽꿀꺽하고 마시고는

다시 세잔을 따라 옥경과 월강에게 권하고는 함께 건배를 하였다.
옥경은 오우 아우가 참으로 호탕한 사내라고 마음속으로 감탄하며

의형제 맺기를 참 잘 했다고 생각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는 말이 있듯이

좋은 친구와 술이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밤은 벌써 이경(二更)이 되어 오고 강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두 미인여인을 데리로간 동자는 소식이 없었다.
오우가 쌍소리를 하면서 초조해 하자,

월강이 아마 동자가 지형을 잘 모르고 우리가 승방으로 온걸 몰라

묘고대에 가서 찾고 있을 거라며 결국은 이리로 올 수밖에 없다며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사미승에게 등불을 들고 나가 그들을 찾아 오라고 하자

'월강'이라 새겨진 종이등을 들고는 사미승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오우는 다시 술을 한잔 따라 옥경에게 권하고는 주사위 놀이를 하자고 했다.
옥경은 오우의 적수가 되지 못해 연거푸 십여잔을 벌주로 마셨다.

 

그러는 사이 삼경(三更)이 지났으나 동자와 두 여인은 물론이고

찾으로 나간 사미승도 소식이 없었다.
오우는 성질을 내면서 이것들이 배에서 무슨 짖을 하는 거야 하면서

주사위를 놓고는 월강이 말려도 내가 직접 가 봐야 겠다며

등불을 들고서는 산아래로 내려갔다.

 

오공자가 나간 후, 옥경과 월강은 놀이를 계속 했다.
옥경은 운 좋게도 연거푸 월강을 이겨 수십 잔의 벌주를 먹였다.
시간은 자꾸 흘러 사경(四更)이 가까워지고 촛불도 세개나 바뀌었다.
달은 이미 져서 어둠이 칠흑같은데 안개까지 자욱하니

첫 행길인 옥경은 이제는 내려가 배로 가야 할텐데 난감해 했다.
월강이 옥경의 마음을 알고는 말했다.

"이 산에는 길이 두개 있는데,

하나는 산 뒷편으로 나 있는 길인데 한참 돌아가야 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절 앞쪽으로 나 있는데 절벽이라 많이 다녀 본 사람도

가끔은 길을 잃을 때가 있답니다.

 

어찌덴 일인지 소승의 제자놈도 안돌아 오니

아무래도 소승이 다른 스님들과 같이 찾으로 가봐야 겠구요?
처사님께서는 초행길이라 하니 여기서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리시면 곧 돌아 오겠습니다.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결국 옥경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자 멍하니 앉아 있으니 먹은 벌주 탓인지 잠이 스르르 왔다.

"나으리 일어나 보세요.
아씨가 오셨어요."

코끗에 이상한 향내가 진동하더니 앵도가 들어와 옥경을 깨웠다.
옥경이 몽롱한 눈으로 바라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은병이 나타나

다짜고짜 옥경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며 욕지거리를 하며 원망을했다.

"나뿐 자식!
네놈이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네 순정 너에게 바치고,

함께 살고 함께 죽자고 달님에게 맹세 까지 해서,

너만 믿고 집을 뛰쳐 나왔는데,

동옥교란 여우에 홀려 단돈 천 냥에 나를 팔아 치우고 줄행랑을 놓았어?

 

그러고두 편하게 잘 지낼 것이라 생각 했다니

참 이런 멍청이를 내가 왜 그리 좋아 했을까?
묘가 놈이 네 놈의 목숨을 노리는지도 모르지 이 바보야!
네 놈만 믿은 내가 결국은 목메달아 죽었으니,

마땅히 네놈 부터 혼을 내 주어야 하나,

전생에 네놈에게 진 빚이 있고 내가 네놈을 사랑했던 정으로  특별히 알려주려 왔다.

 

빨리 여기서 내려가 강을 건너 도망 가라구 알겠지?
묘가 놈은 내가 염라대왕께 고소해 놓아 장차 능지처참을 당해 죽을거야.
그리고 네놈도 머지 않아 저승에와서 나를 만날 날이 멀지 않았다구."
그리고는 흐느껴 울며 다시 한번 옥경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아이고 아파라,

아아!"

은병이 얼마나 쎄게 뺨을 때렸는지 얼얼한 뺨을 만지며 옥경은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바탕의 꿈인데,

촛불은 다타서 곧 꺼질듯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꼬끼오'하며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