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37>
응가는 천벌을 받아 장님이 되고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일생을 노래하며 버럭질 하나,
전생의 서문경과의 악연을 끊지 못하고 객사한다.
응백작은 죽장 하나를 줏어들고 길을 더듬으며 정처없이 떠나간다.
어느날 길에서 나귀와 부딪쳤는데,
알고보니 옛날에 서문경네 집에 소금을 대어주던 소금장수 황사(黄四) 였다.
응가는 하늘이 도우시는 기회라 생각되어 그의 소매를 꼭 붙잡고 애원을 한다.
"왜,
지난번에 자네가 서문대인 한테 빚이 이삼백냥이나 되던것도
내가 힘을 써 주어서 탕감되지 않았던가, 안그런가?
자네 장인이 살인혐의로 관에 끌려 갔을때도 내가 서문대인에게 말해 꺼내줬잖아.
이런 저런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돈 좀 꿔주게나.
자네, 소금장사로 부자가 됐다며?"
황사는 하는 수 없이 다섯냥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로 가서 옷 좀 사입으세요.
나중에 한가해지면 우리집으로 모셔서 며칠 묵다가 가시게 해드리죠."
응가 놈은 돈을 건네 받고서야 소금장수 황사의 소매를 놓아 주었다.
그 돈으로는 요와 이불, 그리고 낡은 비파 하나를 샀다.
그 까닭은 서문경과 같이 저질렀던 일이 하나같이 개망나니 짓이었고
남의 눈에 피눈물나는 짓거리들만 했으니 오늘날 그 죄값으로 눈이 멀고
의지할 데 하나없는 꼬락서니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천상 더듬대며 돌아다니다 굶어 죽을 팔자였다.
다행히 평소에 비파타고 노래깨나 한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평생 보고듣고 지나온 얘기를 엮어 각설이 타령이나 하면서
밥도 얻어먹고 또 세상사람들에게 제발 나같은 인생을 사는
망나니가 되지 말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다음 날부터 응백작은 비파를 등에 메고,
큰길 골목길 할것 없이 더듬고 다니면서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이 고을 사람들 중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지라 비웃음을 던지며
조롱하는이가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며
그나마 자신의 죄업을 알고 회개하니 다행이라며 동정하는 이도 일부 있었다.
타령은 서문경의 엽색행각을 일삼던 대목부터 시작하는데,
특히 반금련과 처음 만나며 간통을 하다가 급기야는 그녀의 남편 무대를 독살하던 일,
그리고 그 죄값으로 비명에 저승길로 떠나간 일로 마무리를 지었다.
구미호(九尾狐) 금련이는 남자구실 시원찮다 무대랑을 구박하네,
마누라는 짙은 화장 교태떨며 뭇 남자들 호리는데,
남편은 엄동설한 가족위해 떡장사를 하는구나,
서문경이 지나가자 발을 쳐서 두건을 떨어뜨리는구나,
서문경이 쳐다보자 약속한 듯 눈웃음을 치는구나,
보기드문 미녀 터질듯한 몸매에 도발적 웃음,
서문경은 황홀하여 침을 질질 흘리는 구나!
뚜쟁이 왕파 할멈 돈 몇푼에 유부녀를 꼬셔주네,
두 년놈 벌건 대낮 홀딱 벗고 방아질에 바쁘구나,
몰래 방아 성이 안차 왕파 도움 무대랑 독살하고,
병사 가장 화장시켜 독살증거 없애 첩년이 되네,
무대 동생 무송이가 독살 의심 두 년놈 고발하나,
서문경이 뇌물공세 관가와 사람들 모두 유야무야,
에라, 이 쳐죽일 년놈! 하늘도 무심하지 않으리라!
서문경의 또 다른 첩인 이병아(李瓶兒)와 화자허에 대해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자허는 바보천치 그 많은 재산 간수도 못하고,
자허는 멍텅구리 악질 서문경을 친구로 삼고,
자허는 병신쪼다 그 예쁜 마누라도 도둑맞네,
병아는 예쁘구나 나긋나긋 교테넘친 그 자태,
병아는 발정난 암캐, 남편 친구와 흘레 붙었네,
병아는 도둑년 재산훔쳐 정부에게 건네주고.
병아는 짱구구나 악질 서문경의 첩이되었네,
병아는 서럽구나 아들마져 금련이 죽이는구나!
자허는 죽었구나 울화터져 죽었구나.
병아도 죽었구나 목매달아 죽었구나.
문경도 뒈졌구나 색밝히다 비명횡사.
반금련의 몸종이던 춘매(春梅)에 대해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춘매는 계집종, 꽃같이 싱싱한 계집종.
색기 얼굴 앵도 입술, 말잘하는 똑순이.
골패도 잘하고 노래와 고쟁도 잘뜯네.
술상에서 시원시원 술도 술술 잘따르고.
침상에선 나긋 나긋 사람 뼈를 녹이누나.
낮에는 금련이와 어울리고, 밤에는 서문경과 한몸되어 구르다가,
발 여섯개 한데 어울혀 뒹굴뒹굴 법석이니,
울고 웃는 신음소리 뉘 소린지 알 수 없다.
날씬한 허리 반달같은 하얀 전족 주체못해.
서문경이 뒈진 후엔 외간 남자 꼬시다가,
진경제 한조되어 세 년놈이 한몸돼 뒹군다.
어쩌다 애를 뱄나, 쫓겨나 수비에게 팔리고,
귀여움 받으면 됐지, 왜 설아(雪娥)질투하나,
사창굴로 팔려가서, 요분질로 황홀경에,
음탕도 유분수지, 밤낮으로 그 짓하더니,
골수인들 안마를까? 복상사로 황천직행.
또 자신의 지난 날 못된 점에 대해서도 노래를 불렀다.
또 있다네 또 있다네, 한심한 놈 또 있다네.
거짓부렁 일삼으며 남 등쳐먹고 살았다네.
아부잘해 잘 챙기고 천벌받을일 싹쓸이라,
사기꾼의 왕초 건달 유명 이름하여 응백작.
문경의 똘마니 모든일 만사형통 걱정업네.
문경이 저승가니 식구들과 안면몰수 바로,
문경 외아들 효가 마져 일천냥에 팔아 먹네.
이러니 천벌없을까 눈도 멀고 상거렁뱅이,
각설이 타령 동냥신세 사흘에 한끼 때우네.
기력 딸려 하늘 노래지면 길가에서 황천길.
한 광주리 뼈다귀는 굶은늑대의 밥이 될까?
굶주린 개도 컹컹 대며 냄새난다 안처먹네,
보소 보소, 이 내꼴을 응백작을 닮지마소!
응백작이 이렇게 비파를 타면서 노래라고 읊조리니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배꼽잡고 웃는자, 장탄식을 금치 못하는자, 인과응보라고 말하는자등 반응도 구구각색이었다.
"저 놈이 바로 평생 건달 노릇하며 서문경에게 빈대 붙어 먹던 응백작이란 놈팽이 사기꾼이야.
왕년에 서문경의 똥구녕을 햝으면서 고기에 술에 잘도 얻어 처먹으면서,
돈을 펑펑 뿌리며 거들먹을 피우더니 인제 천벌을 받은거야.
저렇게 각설이 타령을 부르는 것두,
다 세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라는 하늘의 뜻이겠지."
그때였다.
빽빽이 둘러선 구경꾼들을 헤집고 웬 젊은 장님 거지녀석이
응백작이 타령을 하고 있는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저 놈은 또 웬 놈이지?
저 놈도 눈이 멀었잖아?"
"소문에의하면 변경에서 굴러 들어온 심(沈)가라는 장님 거지인데,
여기 온지도 몇년 되었다고 하지, 아마?"
"여기 사람들이 많이 모였으니 이곳에서 구걸을 하러 온 모양이지?"
"저기 검은 똥개가 앞장서서 길잡이 노릇을 한대.
뚱보 못난이 어미와 함께 산데. 허참 전생의 무슨 깊은 인연이 있는 모양이야!"
구경꾼들이 수군대고 있는데,
갑자기 검은 개가 응백작을 향해 쏜살같이 덤벼들어
비파를 타고 있던 그의 허벅지를 다짜고짜 물고 늘엊는 게 아닌가!
"으아악!, 으으..."
응백작은 칼에 찔린 듯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지팡이로 개를 마구 때렸지만,
개는 죽자사자 물고 늘어져 떨어질 줄 몰랐다.
그제서야 구경꾼들이 달려가 개를 떼어 놓으려 할수록 개는
더 꽉물어 뜯다가 응가놈이 까무라치고 나서야 물고 있던 허벅지를 놓고는
젊은 장님거지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너무 순삭간에 일어난 일이라 많은 구경꾼들도 제되로 손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제서야 혼돈하여 쓰러진 응백작을 깨우기에 분주하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응백작은 정신을 차렸다.
도와준 구경꾼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쑤셔오는 통증을 참으며
우선 가까이에 오도관(吳道官)이의 묘당이 있어 그곳으로 다리를 절뚝이며 가서는
헤어진 상처부위를 옷자락을 찢어서 싸멨다
"아이구, 아파라!
눈이 멀더니 이젠 개새끼까지 나를 업신여기는 구나...:
몇날이 지나고 나면 괜찮아 지갰지 하고 생각 하였던 응가는
오히려 상처가 더 도져서 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다.
응가가 묘당안에서 죽을까 염려된 오도관은 연고도 없고
득도 없는 그의 시체를 치우기 싫다고 무정하게 내 쫒아 버렸다.
동짓 섣달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상처는 호전되지 않고
기어이 곪아 터저 광견독이 전신에 퍼져 버렸다.
삼사일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어 기력까지 소진 되었는데
허기를 떼우시 위하여 기다시피 동냥길을 나섰다가
그만 추위를 피할곳을 찾지못하고 밤에 얼어 죽고 말았다.
아침이 되어서야 응가의 시신을 발견한 동내 사람들은
거적에 말아 동네 밖 조그마한 야산 중턱에 갔다 버렸다.
아마 굶주린 늑대와 까마귀 먹이가 되었으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이러하니 심부자(沈富者) 심초환(沈超环)의 외동 아들로 태어난 심금가(金哥)녀석 서문경과,
검정똥개로 환생한 왕파(王婆)와 응백작의 하나의 업보가 끝이나고 또 다른 윤회(轮回)가 시작되는데,
과연 다른 사람들의 업보는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지 궁금해진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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