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공동묘지에서 동냥밥을 머고 깜박 졸다가

오토산 2021. 6. 9. 21:04

금옥몽(속 금병매) <146>

홀로 된 장님거지 심화자는 오리원 공동묘지에서 동냥밥을 머고 깜박 졸다가 서문경 혼령을 만난다.


까악 까악 나무위에 슬피우는 까마귀,
어이 어이 청명한 한식날 통곡하는 성묘객.

바람부는 언덕에 올라 지전(纸钱) 을 불태운다.

파릇파릇 널부러진 고목 사이로 피어나는 봄 풀.
흐드러진 배꽃 옆 백양나무 늘어선 길,
아련한 그 길 끝은 생사(生死)가 갈리는 길.
저승길 아득하니 통곡해도 대답이 없다.

추적추적 저녁비 맞으며 돌아가는 사람들... 
  송(宋) 소동파(蕬东坡).한식(寒食) 삶이란 한낱 꿈이다.

죽음 또한 허무하기 이를데 없다,

그러하니 구름이 흩어지는것과 같다 하지않았던가?

제 아무리 고관대작에 권세가 드높았다 한들 죽으면 그저 묘지의 묘비만 남을 뿐,

그 또한 죽은 후의 일이거늘 제 아무리 호화스러운 묘 단장을 하여 놓았다 한들

죽은 사람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하물며 묘지를 팔아먹는 자손도 있다 하니인생의 허무함은 말로서 표현하기가 모호하다.
이런것을 돌아볼때, 인간세상 그 가치의 진위(真伪)도 다 부질없는 것이고,

오직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자세만이 달관자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심화자(沈花子)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서문경의 옛집에서 꿈을 꾼 뒤로

십년도 넘게 거지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죄값은 다 치루었다 할 수 있겠다.
동평부(东平府)지방을 오가면서 걸식을 하다 그의 생모는 병사를 하였고

길을 안내하며 다니던 검둥개는 사람들 한테 맞아 죽었다.

나이 열아홉이 되자 이제는 동냥 다니는 길이 눈을 깜아도 훤했으니,

더이상 아무에게도 묻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어느 집에 가도 '한 푼 줍쇼' 하면 알아 모시고 바로 동냥밥을 담아 주었다.

구태어 여러 집을 돌아 다닐 필요도 없었다.
먹고 사는것에 대한 큰 걱정은 없게 되었다.
옛말에 임금과 거지질 삼일만 하면 세상 부러울것 없다 했듯이,

동냥에 맛을 들이니 다른 일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재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동냥이란 인연을 맺기 위한 수행,
시주그릇 들고서 소리치며 사노라,

바가지엔 언제나 수북히 쌓인 쌀밥.
주머니속 노자돈이 무슨 필요 있으랴.

호신용의 대막대기 긴 칼차 듯 옆에 차고,
보배같은 시주그릇 정성스레 감싸드니,

똑똑하고 능력있다 뽐내는 자여!
행여라도 동냥거지 가엽다 말게.

원래 사람은 세가지 혼이 있다고 한다.

심화자(沈花子)의
첫번째 혼은, 인간세상에서 동냥하는 것이고,
두번째 혼은, 저승에서 아귀(饿鬼)가 되어 고생하는 것이고,
마지막 혼은, 서문경의 무덤 속에서 시신을 지키는 것이었다.

청명절(清明节) 날이었다.
심화자는 임청(临清)에서 청하현으로 동냥 원정을 나왔다.
성묘를 나온 많은 사람들이 교외에서 술과 음식을 마시고 지냇기에

심화자도 성밖으로 나와 야외에서  걸식을 하게 된 것이다.

성밖의 오리원(五里原) 이라는 공동묘지에는 곳곳에서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향을 피우고 재수(祭需)도 차려놓은 풍경이 보였다.
심화자는 여러 거지들과 같이 몇군데 묘지를 돌아다니며 구걸한 술과 고기를 들고,

근처 영복사(永福寺) 의 절간 복도에 쭈끄리고 앉아 배를 채웠다.

메뚜기도 오뉴월이 한철이라고,

얻어온 음식을 다 먹고 난 심화자는 또 얻어 먹기 위해 다시 오리원 공동묘지로 향했다.
그런데 숲길을 걷다가 갑자기 일어난 돌풍에 심화자는 그만 길 옆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꿈이었는지,

어디선가 한 건장한 사내 아이가 나타나더니 느닷없이 심화자의 따귀를 철썩 갈기며 말했다.

"야 이 자식!
요 몇 년 동안 어디 쳐박혀 있다가 이제 나타나는 거야?
집에도 오지않고, 새로 이사를 가야하는데,  참 신세 딱하게 됐다.

지금 사는 집은 너무 낡아 빠져서 살기두 힘들고  돈으 땡전 한푼도 없고, 쌀 한톨도 없으니...
먹을 거라곤 고작 일년에 봄 가을로 한번씩 두번 주는데,

그것도 내께 아니고 옆집 찬 밥 남은 걸 몇 숫갈 얻어 먹는거니, 내가 어쩌다 이 신세가 됐지?

낮에는 마땅하게 숨을 곳도 없고,

밤에는 썩어빠진 나무 등걸이나 풀뿌리 한테 붙어 지내야 하니,

내원 참 서러워서.
아이구, 네가 여길 떠난 지 십여년이 넘었으니,

어찌 내 고초를 짐작이나 하겠냐."

사나이가 갑자기 심화자의 목을 껴안고 통곡을 했다.
심화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자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본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지만 도통 확실한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야, 임마?
여기서 내가 사는 집이 멀지 않으니까,
같이 가 보자.
오늘은 네가 안 묵어도 돼."

사나이의 말에 심화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그를 따라갔다.
숲속에 깊이 들어가 보니, 흔히 많이 볼 수 있는  기와집이 나왔다.
심화자가 기와집의 옆에 나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서니, 어쩐지 으시시한 느낌이 들었다.
널찍한 방안에는 한 가운데 커다란 돌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침대위에 어떤 사람이 아무 말없이 누워 있었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