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북후 만대헌 누대정순회강좌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1. 6. 14. 09:24

북후 만대헌 누대정순회강좌를 다녀와서

 

 

2021년 6월 12일 15시 북후면 도촌리 만대헌에서

안동청년유도회가 주최하는 제77회 누대정순회강좌가 있었다.

 

안동청년유도회는 1987년 6월 25일 창립하여  명예회원 62명,

정회원 139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오늘도 100여명이 참석을 하였고

누대정강좌는 2002년 영호루를 시작으로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강일호 전국청년유도회장, 경상북도 청년유도회장.

이재업 경상북도 유교문화원장, 김종섭 전례문화보존회이사장

김형동 지역 국회의원. 이동수 안동문화원장,

권영길 전 경상북도 보건복지국장 등 내빈소개가 있었고

 

정상인 회장의 인사와 강일호 회장의 축사,

권영근 문중대표님의 문중소개와 인사에 이어

한국국학진흥원 박동일 전임연구원이

'만대헌과 권위'에 대한 연구발표가 있었다.

 

만대헌(晩對軒)은 옥봉 권위가 1587년 수학과 강학을 위하여 세운

도계서원 동재(尙懿齋) 뒤편에 있는 홑처마팔작지붕 'ㄱ'자형으로

왼쪽에 온돌방(2칸)과 오른족 우물마루를 두고 뒷편에는 빛이

들어오게 창을 두었고 현판은 權晤(옥봉의 아우)이 썼다고 하며

 

'만대'는 당나라 두보의 시 '백제성루'에서 '푸른절벽은 저물녁에

마주하기 잘 어울리고 배제성 골짝은 그윽히 노닐기에 알맞네

(醉屛宜晩對 白谷會深遊)'라 하였는데 남송의 주희가 무의정사의

정자를 '만대정'이라 한 이래로 학문의 공간 명칭으로 유행하였고

병산서원의 '만대루', 영주 송복원의 '만대정' 등 명칭이 있으나

옥봉의 만대헌은 퇴계선생이 '도산기(陶山記)'에서  취병산과

천연대, 천광운영대의 경관을 취한 것을 인식하고 명칭을 지었고

아우인 권오가 '연어정(鳶魚亭)'을 지은 것으로 유추할수 있으며

 

1476년에 발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인 '성화보(成化譜)'의

초간본이 이 곳에서 보관되어 오다가 1980년대에 발견되어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도계촌(道溪村)은 천등산 연봉인 대곡산 동쪽에 남향으로 터를 잡아

옛고개에서 발원한 광포천(廣浦川)과 대곡산서 발원한 옥계천(玉溪川)

합수지점에 광포들이 펼쳐졌고

영가지에는 도기촌(道岐村)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좌랑을 지낸 정약(鄭若)의 별서(別墅)에 1472년경 송파(松坡)에서

태어나 외조부의 재산을 관리하다가 상속받아 이곳으로 이거하여

입향조가 된 권사빈(權士彬 1449~1535)의 네 아들(檥, 橃, 예, 樯)과

그 후손들이 안동과 예천, 봉화 등지로 이거하여

16세기 퇴계학문을 계승하고 향촌 교화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옥봉 권위는 입향조 권사빈의 증손자 이다. 

 

옥봉(玉峯)권위(權暐 1552~1630)는 자는 숙회(叔晦),  본관은 안동,

부친 취규재 권심행과 신천강씨 사이에서 도계촌에서 태어나서

유일재 김언기, 월천 조목, 학봉 김성일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고

'학자는 본분(本分)이 있으니 과명(科名)은 말단일 뿐이다, 부질없이

외물에 사역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자신의 출처를 정하고

후학을 훈계하였으며

 

1579년 부친이 한동현감 서익(徐翼)의 무함으로 서울로 압송되자

따라가서 조정 관료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여 혐의를 풀었으나

부친은 전염병에 걸려 서울에서 세상을 떠나고 고향으로 반장하여

상을 치르고 3년 시묘하고 만대헌을 건립하여 강학에 힘을 쏟았다.

 

1598년 명나라 진장군(陳將軍)의 막부가 안동에 주둔할때

학림(鶴林) 주원조(朱元兆)가 옥봉을 보고 심복(心服)해 친교를 맺어

군사들도 옥봉을 경외하여 '재상(宰相)'이라 불렀다고 하며

 연로한 모친을 봉양을 위해 1601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

공조좌랑, 동도교수,  해미현감, 형조, 예조좌랑  등을 역임하였고

1909년(58세) 수성찰방에 임명되었으나 질병으로 사임하였으며

 

1613년 9월 학가산 광흥사에서 임자년(1552)과 계축년(1553)출생자

회원 11명이 도의로 교우를 맺고 친목을 다지는 계회를 가졌으며

 '任癸契會之圖'를 제작하였는데 3개문중에서 소장본이 전하고 있고  

도계서원 좌측에 '임계계회기적비(任癸契會紀跡碑)'가 세워져 있으며

회원 14명의 후손들이 400년을 계회를 이어고 있다고 한다.

1616년 동도교수로 후학양성을 하였고 1630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1687년 마을사당 도계리사에 옥봉의 위패를 모시고 도계서원으로 운영,

1868년 훼철되었다가 1928년 만대헌에 사당을 복설, 수차례 증축을 거쳐

1991년 모현사(慕賢祠)와 강당을 중수하고 동재와 홍도문(弘道門)및

주사 등을 신축하여 지금의 규모를 갖추었다.

 

박동일 전임연구원의 발표가 끝나자 정상인 회장이 꽃다발을 증정하고

참석자 전원이 도계서원앞 잔듸밭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오늘 행사 끝이 났다.

 

오늘도 만대헌에서 안동청년유도회가 주관하는 누대정순회강좌를 들으며

복야공파 도촌문중의 유래와 만대헌과 도계서원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임계계회기적비를 돌아보며 400여년을 후손들이 계회를 이어오면서

선조들의 유덕을 기리는 모습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행사를 주관하시어 유교문화를 이어가고 계시는 안동청년유도회와

만대헌에 대한 연구발표를 하신 박동일 전임연구원께도 감사를 드리며

참석회원들에게 간식과 기념타올을 전하신 안동권씨 도촌문중에도 감사드리고

우리는 장기리에 있는 옥산사를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