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사과 한 알

오토산 2021. 7. 16. 16:05


 사과 한 알 ᆢ !! 

몹시 춥고 암울한 날이었다. 
1942년 겨울. 

유태인 강제 수용소에서는 다른 날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종잇장에 불과한 얇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추위에 떨며 서 있었다. 
내게 이런 악몽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 놀고 있을 나이였다. 
미래를 계획하고, 성장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갖는 꿈에 부풀어 있어야 할 나이였다. 

그러나 그 꿈들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자가 아니었다. 

 

집에서 붙잡혀 수만 명의 다른 유태인과 힘께 이곳에 끌려온 이후로

나는 하루하루, 순간 순간을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는 거의 죽은 상태나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철조망이 둘러쳐진 담장 곁을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있었다. 

 

추위로부터 체온을 지키기 위해 앙상하게 마른 몸을 두 팔로 감싸고서. 
나는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다.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너무도 오랫동안 배가 고팠다. 
음식은 꿈 속에나 있었다. 

날마다 사람들은 사라져갔고,

행복한 과거는 단지 꿈 속의 일에 불과했다. 
나는 점점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순간 철조망 건너편을 지나가고 있는 한 소녀가 눈에 띄었다. 
그녀도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도 슬픈 눈이었다. 
그 눈은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한다는 그런 눈이었다. 
나는 낯선 소녀가 가련한 모습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그녀가 호주머니 안에 손을 넣더니 빨간 사과 하나를 꺼냈다. 
아름답고 광택이 나는 빨간 사과였다. 

아, 저런 사과를 먹어 본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그녀는 조심스레 왼쪽 오른쪽을 살피더니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그 사과를 철조망 너머로 던졌다. 
나는 얼른 뛰어가서 그것을 집어들었다. 

추위에 얼어붙은 손가락을 떨면서......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나의 세계에 이 사과 한 알은 생명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나는 그 소녀가 멀리 사라져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 다음날,

나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똑같은 시간에 다시 철조망 근처로 나갔다. 
물론 그 소녀가 다시 나오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 갇혀 있는 나에게는

아무리 부질없는 것일지라도 한 줄기의 희망이 필요했다. 
그녀는 나에게 희망의 끈을 던져 주었고, 난 그 끈을 단단히 붙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가 나타났다. 

그리고 또다시 그녀는 나를 위해 사과를 가져왔다. 
그녀는 어제와 똑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철조망 너머로 사과를 던져주었다. 
이번에는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내가 공중에서 그 사과를 잡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볼 수 있도록 그것을 높이 쳐들었다. 
그녀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나를 동정하는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그저 행복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랫만에 처음으로

난 내 가슴 속에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싹트는 것을 느꼈다. 
일곱 달 동안 우리는 그런 식으로 만났다. 

어떤 때는 몇 마디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어떤 때는 그냥 사과만 오갔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내 허기진 배만 채워 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내 영혼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의 영혼을 채워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 다른 수용소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삶의 끝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나와 내 친구의 만남이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튿날 소녀를 만나 인사를 하면서 내 가슴은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나는 떨려서 거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단지 이렇게 말했다. 

"내일부터는 사과를 갖고 오지마. 
나는 다른 수용소로 가게 될거야. 
우린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야." 

나는 자제력을 잃기 전에 등을 돌려 철조망으로부터 달아났다. 
나는 차마 뒤돌아 볼 수가 없었다. 

 

만일 뒤돌아보았다면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보았을 것이고, 

그녀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내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여러 달이 지나고 악몽과도 같은 고통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소녀에 대한 기억은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나를 붙들어 주었다. 

언제라도 눈을 감기만 하면 마음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그 친절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제라도 그녀가 건네 주는 사과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그렇듯이 갑자기 악몽이 끝이 났다. 
전쟁이 끝난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나는 가족을 포함해 나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소녀에 대한 기억을 기슴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 기억이 나로 하녀금 삶의 의지를 갖게 했고,

나는 미국으로 건너와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시 여러 해가 흘러, 1957년이 되었다. 
그 무렵 나는 뉴욕 시에 살고 있었다. 
한 친구가 나에게 자기가 아는 어떤 여성을 소개해 주겠다고 말했다. 

몇 번을 거절하다가 나는 마지못해 그 자리에 나갔다. 
그런데 로마라는 이름의 그녀는 좋은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도 나처럼 이민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최소한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이민자들은 전쟁의 세월에 대해 물을 때

서로 상처를 주지 않지 위해 조심을 하곤 했다. 
그녀도 그것을 의식해선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쟁 동안에는 어디에 있었나요?" 
내가 대답했다. 

 

"독일에 있는 유태인 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로마는 문득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지었다. 
고통스럽지만 달콤한 어떤 기억을 또올리는 듯했다. 
내가 물었다. 

 

"왜 그러죠?" 
로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린 소녀였을 때,

나는 유태인 강제수용소 근처에 살고 있었어요. 

그 곳에 한 소년이 갇혀있었는데,

꽤 오랫동안 나는 날마다 그 소년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사과를 갖다 주었어요. 
철조망 너머로 사과를 던져 주면 그 소년은 무척 행복해했지요." 
로마는 무겁게 한숨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가를 설명하기는 무척 어려워요. 
어쨌든 우리는 그때 너무 어렸고,

몇 마디 얘기밖에 주고받을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둘 다 서로를 무척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소년이 다른 많은 유태인처럼 처형되었으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우리가 서로 사랑의 눈길을 주고받았던

그 여러 달 동안의 그의 모습만을 기억하려고 애를 쓰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말을 더듬으며 로마에게 물었다. 

"그 소년이 어느 날 당신에게 '내일부터는 사과를 가져오지마. 
난 다른 수용소로 끌려가니까' 라고 말하지 않던가요?" 
로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그것을 알죠?"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 소년이니까요,

로마." 

한참 동안 우리 둘 다 그렇게 말이 없었다. 
오직 침묵만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차츰 시간의 장막이 걷히면서

우리는 눈동자 뒤에 있는 서로의 영혼을 알아보았다. 

우리가 한때 그토록 사랑했고,

그 이후에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그 영혼을. 
마침내 내가 말했다. 

 

"로마, 난 한동안 당신과 헤어져야만 했소. 
하지만 이제 다시는 당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소. 
이제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고, 당신과 영원히 함꼐 하고 싶소. 
나와 결혼해 주겠소?" 

나는 그녀의 눈에서 한때 내가 보았던 그 반짝임을 다시 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네,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다. 
그 여러 달 동안 그토록 갈망했지만

철조망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간절한 포옹이었다. 

이제 어떤 것도 다시는 우리를 방해할 수 없었다. 
내가 로마와 다시 만난 그날로부터 40년이 흘렀다. 
운명은 그 전쟁 기간 동안 나에게 회망의 약속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만나게 했고, 

이제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를 다시 재회하게 한 것이다. 

1996년 봄,

발렌타인 데이에 나는 로마와 함께 미국 전역에 방송되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다. 
나는 수천만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날마다 내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말했다. 

"로마,

당신은 그 강제 수용소에서 내가 배가 고플 때 사과 한 알로 나를 먹여 주었소. 
그리고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오. 
아무리 받아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오. 
나에게는 매순간 당신의 사랑이 필요하오." 


헤르만, 로마 로젠발트 부부이야기 입니다.
코로나로 피페해진 오늘의 삶 속에서도 사과 한알이
맺어 준 사랑의 스토리를 읽으며,

우리도
누군가의 사랑에 목말라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습니다.

오늘도 하느님 은총속에 행복한 하루
열어 가시기 바랍니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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