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89)
조조의 큰 웃음 뒤에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
조조는 장요와 함께 겨우 백여 기를 거느리고 불길 속을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사방이 불바다여서 어디로 피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불길이 일지 않는 곳으로 피하는데
모개와 문빙이 겨우 십여기를 거느리고 뒤쫒아 온다.
"여기가 어디냐 ? 어디로 가야할꼬 ?"
장요가 대답한다.
"여기는 오림부근 입니다.
적의 추격이 심하니 빨리 피신하셔야 합니다."
그 소리가 채 끝나가도 전에,
"조조야 어디로 가느냐 ?
게 섯거라 !"하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적장 여몽이
십여 기를 거느리고 달려온다.
"승상 !
뒤는 제가 막아낼 테니 어서 피하십시오 !"
조조는 달려드는 적을 장요에게 맡기고
밤길을 십여 리쯤 정신없이 달려가니,
이번에는,
"동오의 능통이 여기 있다.
조조는 체념하고 항복하라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
조조는 기겁하며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일단의 복명이 들고 일어나
조조가 또다시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려는데,
"승상, 승상 !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서황입니다.
승상께서 이리로 오시리라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오오, 서황인가 !"
조조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지금 장요가 저 뒤에서 고전을 하고 있을 테니
빨라가서 도와 주고 오라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서황이 급히 달려가 여몽과 능통의 군사들을 물리치고,
장요를 무사히 데리고 돌아왔다.
그런 뒤,
조조는 장요와 서황의 호위를 받으며
어둠 속에서 동북방 방향으로 달아나는데
십 리도 채 못가서 또다시 적을 만났다.
"나는 동오의 감녕이다.
조조는 대장부답게 나의 칼을 받아라 !"하고,
외치기가 무섭게 마연을 한칼에 베어 버리고 조조에게 덤벼든다.
장의가 번개같이 달려나가며 싸움을 가로맡았지만,
그 역시 감녕의 날쌘 칼에 피를 뿌리며 쓰러질 뿐이었다.
그 광경을 본 조조는 간담이 서늘해 져서 적을 서황에게 맡기고
서쪽으로 말을 급히 달렸다.
밤은 어느덧 오경이었다.
한참을 달려오고 보니,뒤쫒는 적들도 없고,
사방은 어둠 속에 적막할 뿐으로
오직 도망치는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의 지친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앞서가던 군기(軍旗)를 든 병사가
조조의 눈앞에서 땅바닥에 고꾸라지는 것이 보였다.
조조를 따르는 병사들은 패주에 패주를 거듭하는 극심한 피로로 인해,
어느 누구도 군기를 든 병사가 자빠진 것을 도와주지 않았다. 고작해야,
"일어나, 일어나 !"하고, 말만 할 뿐,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조조가 땅바닥에 엎어진 병사 앞에 말을 우뚝 멈추고
쓰러져 몸을 일으키지 못 하는 병사에게,
"너, 지금 깃발을 버린 것이냐 ? "하고, 외치듯이 물었다.
그러자 군기를 들었던 병사가 두 손을 맞잡고,
"더는 들고 갈 힘이 없었습니다."하고,
아뢰는 것이 아닌가 ?
그러자 조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너는 군 생활을 몇 년 한 것이냐 ,
엉 ?"
그 바람에 도망만 치던 병사들의 발걸음이 순간,
멈추며 모두가 조조에게 눈이 쏠렸다.
"아룁니다. 대략 십년 됬습니다."
"십년 씩이나 됬는데,
목이 달아날 때 까지 군기를 손에서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나 ?"
"압니다. 용서하십시오."
군기병은 곧 목이 잘릴 것 같아 벌벌 떨며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쓰러진 군기병 보다는
함께 도망치는 병사들을 향해 말한다.
"승패는 병가의 상사다 !
싸움에 패한 것은 상관없지만,
사기마저 꺾여서는 안 된다 !"
평소같았으면 조조의 성격상,
군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린 병사는 참(斬)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적의 공격을 피하여
도망을 치는 입장인데다가,
자신을 근접하여 호위하는 병사의 죄를 평소처럼 물을 수 만은 없는 것이 아닌가 ?
그렇다고 군기를 버린 것을 모른 체 넘어갈 수도 없으니,
조조는 이 둘을 어떻게 조화롭게 봉합해야 하는지 잘 아는 처세의 달인이었다.
그리하여 일순,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며, 병사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린다.
"여기가 어디냐 ?"
"승상 ! 여기는 오림의 서쪽이고,
의도(宜都) 북방입니다."
정욱이 아뢴다.
조조는 그 말을 듣자 비로소 여유를 갖고 산천을 돌아보았다.
산은 높고 숲은 우거졌는데, 길은 좁고 험하다.
조조는 잠시 산천경계를 돌아보다가 별안간 크게 웃는다.
"으헤헤헤헤헤헤 !...."
"어찌 그러십니까 ?"
정욱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주유와 제갈양의 어리석음을 비웃은 것이다."
"어찌하여 ?..."
"보아라 !
이곳은 산세가 험하기 때문에 사지(死地)에 해당하는 곳이다.
만약 이곳에 병사들을 매복시켰다면,
우린 끝장났을 것이야 !
놈들이 적벽에서 운이 좋아 승리한 것이지
실상은 별다른 재주와 작전이 없었어 !
한 마디로 가소로운 놈들이지 !"
조조는 좌우로 서황을 비롯해
장요와 정욱을 번갈아 돌아보며
자신감에 넘치는 어조로 말하였다.
그 순간, 어둠을 뚫고,
앞 쪽에서 일단의 군마가 달려오는 소리가 진동하였다.
"조자룡이 책사의 명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 !
조조는 목을 내 놓아라 !"
"승상 ! 피하십시오 !"
정욱이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빨리 피해라 !"
조조를 따르던 병사들이 제각기 흩어지며 도망쳤다.
조조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대쪽으로 말을 내달렸다.
패주, 패주 !...
조조는 여기서도 많은 군사를 잃고 정신없이 도망을 쳤다.
한참을 정신없이 도망치던 조조와 그의 장수들은
조자룡이 더이상 쫒지 아니하자
한숨 돌리며 잠시 말에서 내려 쉬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조조를 비롯한 정욱, 장요, 서황이 둘러앉아
한밤의 한기(寒氣)를 쫒고 있었다.
패주에 패주를 거듭하는 동안 장수들의 사기도 침체되어
어느 누구도 먼저 말하는 사람이 없이 그저 타는 모닥불 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일단의 병사들이 전열을 이탈해 도망치는 것이 눈에 띄였다.
정욱이 급히 장요를 부르며,
"장 장군, 어서 막으세요 !"하고, 말하자,
조조가 입을 연다.
"가게 놔둬라."
이미 칼을 뽑아든 장요가 말한다.
"그럼, 누가있어 승상을 호위하겠습니까 ?"
조조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겁을 집어먹은 병사는 어차피 무용지물이지,
제 정신이 아닌데 누굴 호위하겠나?"
장요와 서황이 조조의 말을 듣고,
도망치는 병사들을 쫒으려던 칼을 땅바닥에 꽂으며 한탄한다.
"에잇 !..."
그러고서도 몇몇 군사들이 더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눈을 감은 채로 한참을 말없이 있던 조조가,
"다 떠났느냐 ?..."하고,
물었다.
"승상, 스물 일곱 명이 남았습니다."
정욱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한다.
조조가 번쩍 눈을 뜨며 말한다.
"하늘이 도왔구나.
스물 일곱 명이나 남겨 주다니...
내가 예전에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말 한 필에 의지하여 도망칠 때에는 정말 낭패였지,
허나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백만대군을 양성했네,
그런데 오늘은 스물 일곱 명이나 되는
충성스런 장수와 병사들이 내 곁에 남아있다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도다. 하늘이 날 버리지 않았으니,
나도 결코 하늘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
조조의 독백(獨白) 과도 같은 소리를 들은 정욱, 장요, 서황은
고개만을 끄덕이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잠잠한 시간이 얼마간 흐른 뒤,
"승상, 이제 그만 일어나시지요."
정욱이 밤을 도와 몸을 피해야 함을 일깨우는 소리를 했다.
그런데 조조는 일어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느닷없이 큰 웃음을 웃어젓힌다.
"흐흐흐흣 ! 아, 하하하하 !..."
"아까...
웃으시고 난 뒤에 조자룡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
그런데... 어찌, 또 웃으십니까 ?..."
정욱은 조조의 큰 웃음 뒤에 곤경에 처한 바가 있었던 지라,
조조의 웃음이 불안하기만 하였다.
"우헤헤헤헤 !..."
한바탕 웃음을 웃고난 조조가 자신감어린 어조로
정욱과, 서황, 장요를 돌아보며 말한다.
"주유와 제갈량의 지략도 별 볼 일이 없다.
여기 지형을 보아라,
호리병 같이 생기지 않았느냐.
내가 군사를 부렸다면,
이곳에 반드시 복병을 배치해 뒀을 것이야.
그러니 그들이 철기병 오백명만 여기에 있었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전멸했을 것이야.
이제보니 주유도 제갈양도 일개, 필부(匹夫)에 지나지 않을 뿐이야.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지. 그러니 내가 웃을 수밖에 없지 !..."
그 순간,
산천을 <찌렁찌렁> 울리는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장비가 네 놈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엉 ?"
"이게 뭐야 !"
조조는 물론이고 정욱,서황,장요가
깜짝 놀라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니,
아뿔싸 !
어둠 속에서 장비가 선두에 서서
철기병을 이끌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
"에구머니나 !"
조조의 장수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조조를 부축했다.
"어서, 가시죠."
"와~ ! ..
조조는 게, 섯거라 !"
뒤를 쫒는 장비군의 소리는 어둠속에서 호로곡을 진동하였다.
조조가 혼비백산하여 다시 도망치기를 수십 리,
어느덧 동녘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장비를 따돌린 조조가 마상에서
또 다시 크게 웃는다.
"하하하하, 하하하하핫 !..."
옆에서 이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정욱이 말한다.
"맨 처음에 웃으실 때에는 조운이 나타났고,
두 번째 웃으실 때에는 장비가 나타나서 목숨을 잃을뻔 했습니다.
부탁드리오니,
제발, 이제 그만 웃으십시오. "
정욱의 부탁은 애절한 어조였다.
그런데도 조조는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헤헤헤헤 !...그런거였군 !..
이제야 모든 것을 이해했어 !"
"뭘 말입니까 ?"
정욱이 걱정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조조가 되묻는다.
"잘 생각해 보게 !
주유의 군대와 유비의 군대가 번갈아 계속해서 우릴 추격해 왔는데,
어째서 가까이 접근해서 내겐 겁만 주다가 화살하나 쏘지 않은 것인가,
엉 ? ..
그리고 어째서 북소리만 요란하게 울리고,
포위공격을 하지 않은 것일까 ?
왠지 아나 ?"
"모르겠습니다."
"주유가 일부러 우릴 유비 진영으로 몰아 넣은 후,
날 죽이게 하려는 심산이었어.
그러면 자연히 유비가 우리 북군의 철천지 원수가 될 것이고,
강동은 중간에서 편안히 어부지리를 얻을 수가 있었겠지. 허허헛 !..."
"허나...
조운과 장비도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않고,
병기와 말 만을 빼앗아가지 않았습니까 ? "
정욱이 이유를 모르겠다는 소리를 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제갈양이 주유의 속셈을 간파했기 때문이네,
그 자도 똑같이 나를 주유 진영으로 몰아넣고 ,
주유의 군사로 하여금 나를 죽이게 만들려는 것이지.
<손유 연합>, 음 !... 실로 허울 뿐이로구나 ! "하고,
말한다.
그러자 정욱이 감탄하며,
"예리한 분석이십니다 !"하고, 말하니,
조조가,
"이런 상황이니, 손유 연합도 오래 못 가고,
이 몸도 죽을 리가 없지 !...
주변에 위기가 도사리고 있지만,
내가 있는 곳은 안전할 것이야 !..
내, 장담컨데,
자네들 모두 안전하게 남군 진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네,
자네들이 보여준 충성에 대한 보답인 셈이지."하고, 말한다.
장요가 조조의 말에 호응한다.
"영명하십니다 !"
그때,
한 병사가 급히 조조 앞으로 달려오며 엎어진다.
"뭣이냐 ?"
장요가 묻자,
병사는 몸을 일으키며,
"승상 !
여몽과 능통이 도주병들을 남김없이 몰살해 버렸습니다 !"하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렇치 ! 그것 봐라 !
날 버리고 가서 그런 화를 당한 것이야 !"
조조가 <쌤통>이란 듯이 기가 동하며 소리소리 질러댔다.
그러자 이제는 장수들의 기도 조금 살아났다.
그리하여 장요가 씩씩한 어조로 조조에게 물었다.
"승상 ! 이제 어찌해야할 지,
명을 내려 주십시오 !"
그러자 조조는 평소의 어조를 되찾으며,
"정욱 ?"하고,
블렀다.
"예 ! "
"어찌할까 ?"
"승상, 앞에는 모두 세갈래 길이 있사온데,
남군으로 가는 길은 두 곳입니다.
왼쪽 길은 아주 넓찍하고 평탄한 길이오나,
오십 리를 돌아가야 하옵고, 오른 쪽은 화용도로 지름길이오나, 길이 험합니다. "
정욱이 이렇게 대답하자,
장요가 멀찍히 화용도 방향을 바라보며 말한다.
"승상, 화용도 쪽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
큰 길 쪽은 조용합니다." 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조조는,
"화용도로 가자."하고,
명하는 것이었다.
장요가 그 말을 듣고,
"승상,
화용도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아 복병이 있을 터인데..."하고,
말하자, 조조는,
"허허실실도 병법에 하나다,
그러니 잘 판단해야 한다.
화용도 쪽의 연기는 복병이 아니라 위장술인게 틀림없다.
저런 형편없는 수법에 속아 넘어 갈 내가 아니지, 가자 !"하고,
말한 뒤에 몸소 앞서서 화용도 방향으로 말을 몰아가는 것이었다.
"이랴 !...."
앞서가는 조조를 따라, 장수와 군사들은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하여 모두가 죽기살기로 말을 달리는데,
화용도 협곡을 지나는데 저 멀리 계곡 반대편에는
일단의 군사들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
조조는 놀라며 말을 멈췄다.
그 바람에 그를 뒤쫒던 장수와 병사도 일제히 조조의 뒤를 따라 멈추었다.
협곡 끝에 희미하게 보이는 일단의 군사들은 틀림없는 적군이었다.
조조는 눈을 감고 셈을 해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한다.
"그가 왔군 !...."
"누구요 ?"
정욱이 걱정스런 어조로 반문한다.
"생각해보게,
지금까지 손권과 유비의 장수중에 한 명만 빼놓고 다 나타나지 않았던가 ?"
"아 !...."
정욱이 짐작되는 바가 있어서 눈을 크게 뜨며 놀란다.
"어, 엇 ! 관우 장군 ?"
190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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