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창원손님들과 하회마을 북촌댁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1. 10. 6. 06:54

창원손님들과 하회마을 북촌댁을 다녀와서

 

충효당을 나온 우리는 발갛게 익은 감나무가 유혹하는

골목길을 걸어서 북촌댁으로 갔다. 

 

대문앞에는

2013년 1월 13일 디딜방앗간에 관람객의 담배꽁초로 화재가 발생되어

하회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을 보존하고자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판이 붙여져 있었고 

 

류세호 주손님(사)경북문화유산보존회 회장)이 대문앞에서

우리일행을 맞이하여 집안 곳곳을 상세히 설명하시며

안내를 하여 주었다.

 

북촌댁은

1862년(철종 13) 경상도 도사를 지낸 석호 유도성(柳道性)공이 지은 

안채와 사랑채,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전형적인 양반집으로

연화부수형 하회마을의 연꽃 가운데부분에 위치하여 명당으로 알려지고

 

조용현 칼럼리스트는 대지 1700평에 72칸한옥, 재산 3,000석, 

7대 200년간 부와 명예를 누리던 집이라 소개를 하면서

할아버지가 기거하시던 북촌에 거주한다는 북촌유거(北村幽居),

아버지가 기거하시던 충효의 뜻이 담긴 화경당(和敬堂),

손자가 기거하던 모름지기 자기를 낮추고 삼간다는 수신와(須愼窩) 등

세 군데의 사랑방을 갖추고 있는 집이며

 

1859년 홍수때 부용대쪽에서 밤에 사람을 싣고 오던 배가 뒤집혔을때

류도성공이 집을 짓기 위하여 3년전부터 건조시켜 오던 목재들을 던져

구명보트를 대신하여 사람들을 구조하고 일부는 화목으로 불을 피우면서

없애버린 뒤  그 후 3년간 다시 춘양목을 구하여 집을 짓고

소작료도 40~50% 감면시켜 주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류회장님은

건축할때 부식방지를 위해 기둥의 바닥에

소금, 재, 고추가루를 썩어서 넣었다는 설명과

흐린날은 참나무로 군불을 집히니 구둘의 막힘이 적다고 하면서

頭寒足熱(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의 구들구조에 대한 설명,

 

뒷편 잔디밭에 주춧돌만 남아있는 별당채와 400여년된 탱자나무,

300년전 예조참판을 지내신 학서 류이좌(柳台佐 1763~1837)공의

선고 류사춘공이 화산에서 옮겨심은 나무로 그 생김새가

하회마을을 감싸고 돌아가는 낙동강의 형상과 같아

'하회나무河回松)라 하는 나무 등 집안 곳곳을 상세하게 안내하였다.

 

우리일행은 대문채에 걸려진 소죽통, 부억의 소주제조도구와 맷돌,

안채 뒤편 창고에 보관된 옛날의 생활소품들을 돌아보며

평소에 관람할수 없었던 북촌댁의 여러곳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고

친절히 안내하여 주신 류세호 주손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하회마을을 출발하여 안동한지로 왔다.

 

안동한지에서 이영걸 회장님이 창원에서 오신손님들에게

한지로 만든 넥타이 선물하고 전국한지대전전시장 관람을 하였다.

 

오늘 탐방을 마치고 솔밭에서 저녁식사 계획이 있었으나

나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안동한지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창원에서 안동을 찾아주신

최무걸회장님 일행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함께 하여주신분 우리일행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