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무하향에서 만난 낯선 사내 백종원

오토산 2022. 2. 6. 06:39

김삿갓 98 -
[주막, 무하향에서 만난 낯선 사내 백종원]

​김삿갓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데,

문득 문이 벌컥 열리며 40세 가량 되어 보이는 사내가  들어 오더니,

대청 마루에 털썩 걸터 앉으며 푸념조의 말을 한다.

​"아주머니!  나 술 한잔 주소.

제~길헐! 계집년들 등쌀에 사람이 살 수 있어야 말이지."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주모가 얼른 술을 따라 주며 묻는다.

 

"계집년들이 뭐가 어쨌다고

혼자 화를 내시오?"

​김삿갓은 그 기회에 사나이의 용모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나이는 사십이 되었을까 넘었을까,

​몸이 우람하고 상투가 큼지막한데다가

이마에는 일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있었다.
​아울러 사내의 눈꼬리가 찢어져 올라 간 것으로 보아,

결코 순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사나이는 술 한잔을 쭈욱 들이키고

술잔을 술상위에 탁 내려 놓으며,

 

"계집년 얘기는 말도 마시오.

그 년들 때문에 이제는 내가 신물이 날 지경이라오."

​그리고 나서 김삿갓의 얼굴을 잠시나마

멀거니 바라보더니 별안간 깜짝 놀라 보이며,

​"아니 이거,

자네는 천마산에 사는 이 서방 아닌가?

여보게 이거 얼마만인가?" 하고

외치며,

김삿갓에게 다가와서 대뜸 손을 움켜잡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노형이 사람을 잘못 보셨소이다.

나는 이 서방이 아니고 김 서방이오."
그러나 상대방은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예끼 이 친구야

옛날 친분을 생각해서도 자네가 나를 모른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白鐘元일쎄, 자네가 성까지 바꿔 가면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생면 부지의 사나이가 얼토당토 않은 고집을 부리자

김삿갓은 매우 난처한 심정이었다.
​김삿갓은 백종원이라는 사내에게 빙그레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아마  이 서방이라는 친구가 나하고 어지간히 닮은 모양이구료.

그러나 나는 이 서방이 아니고 틀림 없는 김서방 입니다.
​얼굴이 비슷해서 착각을 일으킨 모양이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다른 데가 있을 것이오.

내 얼굴을 자세히 보시오."

 

그러면서 김삿갓은 얼굴을 일부러 내밀어 보였다.
​그러자 백종원이라는 사내는 김삿갓의 얼굴을 면구스러울 정도로

요모조모 살펴 보더니, 문득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말한다.

​"내가 노형에게 큰 실수를 했소이다.
내 친구는 왼쪽 뺨에 커다란 점이 있는데,

노형의 뺨에는 검은 점이 없군요.

내가 실수를 했으니 용서하시오.

​그러나 저러나 노형은 어쩌면 내 친구와 얼굴이 그렇게도 닮으셨소.

그래서 그런지, 노형은 처음 만나는 사람 같지가 않구려.

그런 뜻에서 한 잔 합시다."

​어쩐지 행실이 수상하다 싶었지만,

김삿갓은 백종원이 내민 술잔을 물리 칠 생각은 없었다.

​"좋소이다.

나는 비록 이 서방은 아니지만 친구가 별게 있겠소.
함께 어울리면 친구지..."

​"옳으신 말씀이오.

김서방이나 이서방이나 모두가 사람이기는 매일반일 것이오.

하하하."

​백종원은 호탕하게 웃고는

문득 주모를 쳐다보며 수작을 부린다.

 

"주모는 성을 뭐라고 하오?

설마 성이 주가는 아니겠지?"
​주모는 백종원에게 가볍게 나무라는 어조로,

 

"여보세요,

성을 갈면 개자식이라는 말도 모르시오?

누구를 개자식으로 만들려고 그런 농담을 하시우."

​"주가가 아니란 말이구려.

그러면 진짜 성은 뭐라고 하오?"

"내 성은 千氏라오.

본관은 潁陽(영양) 이구요."

​그 말을 듣자,

김삿갓이 중간에 끼어들며 말한다.

 

"천씨..라면,

임진왜란 때 많은 전공을 올린 思庵 千萬里의 후손인가 보구려?"
​주모는 그 말에 크게 기뻐하며,

 

"어머나!

손님은 우리 가문의 내력을 잘도 아시네요."

​그러나 백종원은 뭐가 못마땅한지

입을 씰룩 거리면서 대뜸 시비조로 나온다.

 

"주모는 왜 그렇게도 건방지지?"

​"성이 뭐냐 묻길래 사실대로 대답했을 뿐인데

뭐가 건방지다는 거예요?"

​"왜 건방지다는 것인지 몰라서 묻나?
내 성이 백가인데,

주모의 성은 내 성보다 더 열 갑절이나 높은 천가라고 하니,

그런 건방진 성이 어디 있어?

​오늘 부터는 "千"자의 대가리를 툭 쳐버리고
"十哥" 라고 해요.

그래야만 격에 어울릴 거야.

내 말 알아듣겠지!"

​이렇게 백종원이라는 사내가 주모의 성을 가지고 생트집을 잡는 바람에

김삿갓은 배를 움켜잡고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백종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이라는 것은 본인의 의사와는 아무 관계도 없이 피동적으로 타고나는 것인데,

남의 성을 가지고 나무라면 어떡하오?
​천가면 어떻고 백가면 어떻소?

사람은 다 마찬가지인 걸...

나는 그보다도 노형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있소이다."
​백종원은 술을 한잔 들이키고 나서 반문한다.

 

"뭐가 궁금하다는 말씀이오?"

​"노형은 아까 이 집에 들어설 때에

계집년들 등쌀에 신물이 난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소?

어떤 연유로 그런 말로 화를 냈는지, 그 이야기 좀 들어 봅시다."
그러자 백종원은 손을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 얘기 말인가요?

그 얘기 라면 창피스러워서 말도 하고 싶지 않소이다."

​"말을 할 수 없다니까 더욱 듣고 싶구려.
오가다 만난 우리 사이에 창피스러울 것이 뭐 있겠소.

이왕이면 기탄 없이 들려 주시구려."
​그러자 백종원은 문득 생각이 달라졌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허기는 사내들이란 너 나 없이 모두가 똑같은 동물이니까,

노형도 내 이야기를 들어 두면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니 잘 들어 보시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백종원은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를 한집에 데리고 살기 때문에,

두 여인들 간에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기 일쑤였다. 

​오늘도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가  서로 머리채를 움켜잡고,

이년 저년 하며 대판, 싸우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두 마누라가 서로 싸우는 꼴을 본 백종원은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느편을 나무라고 다른편을 두둔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백종원은 생각다 못해 작은 마누라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건넌 방으로 끌고 가며 이렇게 호통쳤다.

 

​"이년아 !

너 같은 계집년은 숫제 죽여 버려야겠다."

 

작은마누라를 야단치며 끌고가야만 대의 명분이 설 것 같아서 였다.
​그러나 정작 작은마누라를 건넌방으로 끌고 건너왔을 때,

젊은 계집이 탐스러운 젓통을 드러내 놓고 있는 것을 보자

백종원은 별안간 욕정이 솟구쳐 올라 견딜 수 없었다.

그런 탓에 작은마누라를 모두 벗겨 놓고 낫거리를 정신없이 하고 있는데
별안간 방문이 홱 열리더니 큰마누라가 비호같이 덤벼들어

백종원의 등덜미를 움켜잡고 끌어 당기며 다음과 같이 호통을 치더라는 것이다.

​"이 잡놈아!

저년을 이런 식으로 죽여 주려거든, 왜,

나를 먼저 죽여 주지 않고, 저년 부터 죽여 주느냐!"
(이, 오라를 칠 놈아...)